규제 완화에 무덤덤한 대출 시장…“금리 워낙 많이 올랐고 하락장이다 보니∼”
정부가 주택시장 침체를 막기 위해 규제지역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이어 다주택자에 대한 주담대 금지 규제마저 풀었지만, 아직 대출시장에선 큰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최고금리가 연 7% 중후반에 육박하는 등 이자부담이 커진데다, 집값 하방압력도 거세 규제 완화에도 차주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소득기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여전해 고소득자나 현금부자가 아니면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
25일 뉴스1과 은행권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주 다주택자 주담대 규제 해제 소식을 발표한 뒤, 은행 대출창구와 주요 대출·부동산 커뮤니티엔 규제 변화에 대한 문의만 간혹 있을 뿐, 적극적인 대출 문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지난 22일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부터 다주택자도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집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은 30%로 적용된다. 지난 2018년 9·13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주담대를 전면 금지한 것을 5년 만에 복원하는 것이다.
또한 지난 1일부턴 규제지역 내 무주택자와 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조건부)의 LTV 규제 상한을 완화해 주택가격과 무관하게 50%로 단일화했다. 또 서울 등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에 주담대 규제도 풀었다.
정부는 이로써 꽁꽁 얼어붙은 주택·가계대출 시장이 일부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대출·부동산 커뮤니티엔 "대출 최고금리가 연 8%를 향해 가는데, 고금리에 대출받아 집 사라는 얘기냐", "집값이 더 떨어지면 누가 책임지나"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7% 중후반(연 7.668%, 23일 기준)에 육박한다.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 역시 금리 상단이 연 7%를 넘어선 지 오래다.
예를 들어 16억원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 LTV 50% 상한에 맞춰 8억원 대출(40년만기, 원리금균등분할상환, 연 금리 5% 기준)을 받으면, 매월 은행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386만원(연간 4629만원)에 달한다. 대출금리가 6%로 오르면 원리금은 440만원(연간 5280만원), 7%일 땐 497만원(연간 5964만원)으로 불어난다.
금융 당국이 최근 급격한 대출금리 상승을 막기 위해 금융권에 수신경쟁 자제를 당부하고 대출금리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금리상승 속도가 다소 둔화됐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까지 금리인상을 예고한 만큼 은행 대출금리 상단은 조만간 연 8%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설상가상 집값 낙폭도 계속 확대되고 있어 차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72% 하락했다. 2012년 5월 부동산원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 낙폭이다. 수도권(-0.91%)과 지방(-0.55%)도 최근 규제지역 해제에도 불구하고 낙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집값 하방압력이 커지면서 지난해 고점 대비 수억원 하락한 단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LTV 규제는 풀렸으나, 소득기준 대출규제인 차주별 DSR 규제가 여전히 유지된 것도 대출 신청을 막는 요인이다. 올해 7월부터 총대출액이 1억원을 넘으면 은행권 기준으로 DSR 40% 제한을 받는다. DSR은 총소득에서 전체 대출의 원리금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총소득의 40%를 넘으면 추가 대출이 막히게 된다. LTV를 아무리 풀어줘도 소득이 적으면 완화된 대출한도를 다 받기 어렵고, 또한 대출금리가 오르면 이자부담이 커짐과 동시에 대출한도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금융 당국은 DSR 규제만큼은 당분간 계속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강했던 LTV 규제는 정상화하고, DSR 규제는 차주가 상환할 수 있는 소득 범위 내에서 빌릴 수 있는 대출 관행을 정착시킨다는 의미에서 당분간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DSR 규제와 고금리 상황을 볼 때 대출규제가 풀리더라도 혜택을 보는 사람은 부유층이나 일부 갈아타기 수요에 국한될 것"이라며 "대출이자가 워낙 비싸고, 집값 하방압력도 거센 상황이라 지난해처럼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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