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값이 폭락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까, 폭등했을 때 받을까
지난 11월 기준 전국 아파트값은 전 달보다 2.02%하락했다. 잇따른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세에 유례없는 ‘거래절벽’이 이어지고 있다. “12억원 하던 집이 8억원이 됐다”는 말 역시 더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아파트값이 하락세에 접어든 것은 올해 2월부터다. 지난 2월 전국 아파트값은 전 달(0.08%)까지 이어지던 상승세를 멈추고 0.02% 하락했다. 대선이 치러진 지난 4월 한 차례 보합(0.00%)권에 머물렀으나 이후 하락세는 ‘밑바닥을 모를 정도’로 가팔랐다.
하락세 초반에는 초초급매물 위주의 간헐적 거래가 이어져 대세하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이제는 호가도 실거래가 수준으로 계속 빠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그나마 가격 방어가 가능한 강남의 하락폭은 작은 반면 강북 및 외곽지역은 “자고 일어나면 억 단위로 떨어졌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성북구에 10년된 아파트(84㎡)를 구입한 조모씨(47)는 “내가 왜 그때 굳이 집을 샀는지 계속 나 자신을 탓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2억원을 대출받았다. 월수입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지만 문제는 조씨의 아파트 가격이 불과 10개월 사이 2억2000만원 내렸다는 것이다. 조씨는 “지금 샀더라면 감당하지 않아도 됐을 이자를 매달 내고 있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집 값이 크게 떨어질 때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까, 집 값이 크게 오를 때 스트레스를 더 받을까.
이와 관련해 국내에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진 것은 없지만 분당서울대병원이 지난 2006년 11월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당시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직장인 398명을 대상으로 부동산 스트레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7.6%(309명)가 당시의 집값 광풍사태를 지켜보면서 “신경이 예민해지는 스트레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두통이나 불면증을 경험한 응답자도 37.9%(151명)이나 됐다.
2006년의 부동산 시장은 한 마디로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라있는’ 상태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값은 2005년 2월 0.53% 상승한 이후 2008년 9월까지 3년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2006년은 하반기 들어 전국 아파트값이 한 달에 3.78%(11월), 2.25%(12월)씩 상승했다. 서울은 11월 한 달만에 아파트값이 5.90% 상승한 데 이어 12월에는 3.81% 올라 말 그대로 전역이 ‘집값 광풍’으로 들썩였다.
2006년 부동산 ‘광풍’ 77.6% “스트레스 받아”
또 응답자 중 58.2%(232명)는 집값 광풍사태로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79.8%(318명)는 “열심히 일해 저축하더라도 부동산 재테크를 한 것만 못하다는 생각에 근로의욕이 떨어졌다”고 답했다.
즉 평생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도 집값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고 자고 일어나면 집 값이 수 억원씩 올라있는 것을 보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집 한 채 갖고 있는 게 더 낫다’는 등의 생각을 하면서 근로의욕을 상실하는 경향이 당시에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갭투자’를 통한 부동산 투자방식이 활발하지 않았고, ‘영끌족’도 등장하지 않아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이후 현재와 같은 금리인상과 집값 급락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분당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주택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나타났다.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74%, 무주택자의 81%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으며, 두통이나 불면증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43%(유주택), 34%(무주택)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설문조사를 담당했던 하태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당시 “비정상적인 사회 분위기가 직장인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열심히 일해서 알뜰하게 저축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미래는 직장인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요즘(2006년)과 같은 집값 폭등 사태는 급여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현재 급여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탕’을 꿈꾸도록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었다.
집값은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폭등’과 ‘폭락’이라는 극단적인 변화가 지속될 경우 집의 소유여부와 관계없이 국민들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집값이 올랐을 때는 무주택자가 상대적 박탈감과 기회 포착 실패에 따른 실망으로 고통받고, 집값이 하락할 때에는 대출을 많이 낸 유주택자들이 더 고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정부 정책은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흐르는 물처럼 가격과 거래량이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정책의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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