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한파]①날씨보다 더 꽁꽁 언 지갑…"가전제품 안 팔린다" 아우성
삼성·SK하이닉스 재고 급증…4분기 실적 전망 암울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글로벌 경기가 빠르게 침체되면서 소비도 꽁꽁 얼어붙었다. 이른바 '집콕' 현상에 가전제품 교체가 잇따르던 코로나19 팬데믹 때와 달리 안 팔린 물건이 창고에 빼곡히 쌓이고 있다.
1년 사이 급변한 상황에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중소 가전업체, 부품사는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마저 실적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IT·가전 수요 급감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에 SK하이닉스는 올해 4분기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비용절감과 인력감축에 나섰다. 예정된 투자를 줄이고 희망퇴직 등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이다.
◇ TV·스마트폰 판매 감소…"경기 침체에 지갑 안 연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를 통해 "한국 경제의 내수회복 속도가 점차 완만해지고 수출·경제심리 부진이 이어지는 등 경기둔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경기둔화 우려를 언급한 뒤 7개월째 유사한 진단이다.
경기 둔화 우려에 소비심리도 빠르게 위축됐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86.5로 10월(88.8)보다 2.3포인트 하락했다. 이 지수가 100 아래면 장기평균(2003~2021년)과 비교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란 의미다.
한국은행은 BOK이슈노트에서 "민간 소비는 소비심리가 악화된 가운데 고물가에 따른 실질구매력 저하, 금리 상승 등으로 증가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가전제품 소비는 급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TV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3.8% 줄어든 2억200만대로,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내년 TV 출하량도 1억9900만대로 역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TV가 안 팔리면서 LG디스플레이는 올해 3분기(7~9월) 759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적자다.
스마트폰 시장의 상황도 좋지 않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11% 감소한 12억40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PC 판매도 급감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3분기 세계 PC 출하량이 1년 전보다 19.5% 줄었다고 추산했다. 최근 20년 새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모바일·컴퓨터·TV 등 전자제품 소비가 급감하면서 제품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 주문도 줄었다. '경기 침체→모바일·가전제품 등 소비 위축→반도체 주문 감소 및 재고 증가→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4분기 D램 가격이 직전 분기 대비 13~18% 떨어질 것으로 봤다. 컨슈머 제품 탑재 비율이 높은 낸드플래시의 하락 폭은 평균 15~20%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소비 시장은 고물가 및 고금리에 따른 가계 구매력 감소와 미래 불확실성 확대로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 안 팔린 물건은 창고로…삼성·LG, 공장 가동 줄였다
소비가 멈추면서 기업 창고에는 안 팔린 물건들이 쌓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말 기준 재고자산은 57조3198억원으로, 1년 전(37조8017억원)보다 19조5181억원(51.6%) 늘었다. 지난 2분기 말(52조922억원)와 비교해도 5조2276억원(10%) 증가한 수치다.
가전 판매가 줄면서 삼성전자 매출처 순위도 바뀌었다. 5대 매출처에 이름을 꾸준히 올리던 '베스트바이'가 빠지고 반도체 업체인 '퀄컴'이 다시 순위에 등장했다.
LG전자의 상황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3분기 말 재고 자산이 총 11조2071억원으로 2분기 말(9조6844억원)보다 15.7% 증가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재고자산도 8조9166억원에서 14조6650억원으로 64.5% 늘었다.
기업들은 재고를 줄이기 위해 공장가동 조정에 나섰다. 삼성전자의 TV와 모니터 등 영상기기 공장가동률은 올해 1분기 84.3%에서 3분기 75.4%로 9%포인트(p)가량 낮아졌다. 모바일 기기(HHP) 공장 가동률도 81%에서 72.2%로 떨어졌다.
LG전자의 냉장고와 에어컨 가동률도 지난 2분기에 각각 9.4%p, 15.4%p 하락했다.
◇ 4분기 실적 '빨간불'…투자 줄이고, 희망퇴직 본격화
소비 한파에 기업 실적도 내리막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4분기(10~12월)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매출 74조9155억원, 영업이익 7조612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16%, 영업이익은 45.1%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심지어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올해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을 5조8000억원으로, 기존(7조8000억원) 대비 25.6% 하향 조정했다.
SK하이닉스 상황은 더 심각하다. 4분기 매출 컨센서스는 8조78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05%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영업손실은 6430억원으로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SK매직, 신일전자, 쿠쿠홈시스 등 중소가전업체들도 버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형가전 업체들 중에서는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급한 대로 비용절감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비상경영에 나서며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부 소속 직원들에 대한 하반기 성과급을 기본급 50%로 상반기보다 절반 줄였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액을 올해의 10조원 후반대 대비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생산 증가를 위한 웨이퍼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전환투자도 일부 미루기로 했다.
인력 감축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창사 이후 첫 희망퇴직을 받았고, 롯데하이마트도 희망퇴직 대상자를 모집 중이다. LG전자 베스트샵을 운영하는 하이프라자와 국내 1위 해운사인 HMM도 인력 감축에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제 위기에 준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최대한 보수적으로 경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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