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전투복’ vs 푸틴 ‘로로피아나’, 옷차림의 메시지

2022. 12.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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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첫 방미에서 전투복 차림…“우크라는 전쟁 중”
러 공격에 '함께 고통받고 맞서는' 국민 중 한 명 강조
푸틴, 크림대교 방문서도 1600만원 로로피아나 패딩 고수
SCMP “더 강하고, 더 용감하다는 메시지 전달”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모습 [AP]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옷차림은 통상 정상회담에서 봐왔던 다른 지도자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장만이 허락되는 줄 알았던 그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은 국방색 티셔츠와 카고 바지, 투박한 부츠는 정상회담이 아닌 ‘전장(戰場)’을 연상케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국제 회의 화상 연설 등에도 줄곧 이와 같은 전투복을 연상케하는 옷차림을 고수했던 그다.

‘전투복’을 입고 미 백악관과 의회를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일부 비난도 이는 가운데, 명품 일색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옷차림도 덩달아 다시 주목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의 옷차림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분명 상반되는데, 그는 전쟁 최전선에서도 명품을 걸치고 공식 석상에서는 주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정장을 입는다. 덕분에 푸틴 대통령이 자주 입은 명품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경우 블레임룩(blame look)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젤렌스키 옷장에는 정장도 없는 것인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21일(현지시간)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마무리하자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오른쪽)이 그의 뒤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AFP]

방미 당시 젤렌스키의 옷차림은 ‘약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미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못마땅한 기분을 드러내면서다.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인 피터 쉬프 유로퍼시픽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힘든 상황인 건 알지만,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정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가?”라고 반문하며 “내가 의회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티셔츠를 입고 연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젤렌스키의 옷차림을 인정했다. 격식을 논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드레스코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떄문이다. 하물며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시 상황이다.

정치분석가 올가 로트먼원은 쉬프의 트윗에 대해 “우크라이나에서 시민들이 잔인한 공격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젤렌스키가 정장에 대해서 걱정할때냐”라고 비판했다. 또한 퇴역 공군인 모 데이비스는 “그의 옷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정작 무례한 것은 ‘미국’이다”고 말했다.

격식 논란과는 별개로 바이든과의 정상회담과 의회 연설에서 보여준 젤렌스키의 옷차림은 분명 울림이 있었다. 그가 입은 전투복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라는 메시지 그 자체였고, 젤렌스키는 여러말을 하기보다 미 정상과 의원들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긴박함과 간절함을 전달했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최격전지인 동부 바흐무트를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 [AP]

뉴욕타임스(NYT)는 젤렌스키가 자신의 옷차림이 어떻게 해석되고 소비되는지 잘 알고,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정상회담 당시 장면에 대해 “(군복과 같은) 젤렌스키의 옷은 우크라이나 국기색에 남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에 남색 정장을 입은 바이든 대통령과 대조되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듯 보였다”면서 “젤렌스키는 전쟁 중인 국가의 지도자로서,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명확히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젤렌스키가 패션이 갖는 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SCMP는 지난 3월 한 기사를 통해 “전직 코미디언으로서 그는 옷차림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접근하기 쉬운 아이템을 선택함으로서 그가 다른 이들과 똑같이 전쟁의 고통을 받으며 맞서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여행 관련 사이트인 비지트 우크라이나(visit Ukraine)는 전쟁 발발 후 젤렌스키가 자주 입은 국방색 티셔츠의 평균 가격은 약 1만7000원 정도이고, 평소 그가 입는 자켓은 25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악마는 프라다를, 푸틴은 로로피아나를 입는다
지난 5일(현지시간) 크림대교를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난 3월에 열린 크림반도 합병 8주년 행사에서 입었던 것과 같은 1600만원짜리 로로피아나 자켓을 입고 있다. [TASS]

지난 5일 푸틴은 지난 10월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손상된 크림대교를 방문했다. 직접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을 몰고 현장에 도착한 그는 어김없이 로로피아나 패딩 재킷을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푸틴이 지난 3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지 8주년을 기념해 열린 행사에서 입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푸틴의 로로피아나 자켓은 3월 행사 당시에도 1600만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유독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그가 재킷 안에 입은 터틀넥은 역시나 고가 브랜드인 키튼의 제품으로, 가격은 약 380만원으로 알려졌다. 나라가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하고, 각종 재제로 경제가 침체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푸틴이 고가의 명품을 걸치고, 남성적인 옷차림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최고 권력자로서의 이미지 강화를 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SCMP는 “(푸틴의 옷은) 나는 너보다 더 용감하고, 더 좋고, 더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안됐다”면서 “심지어 푸틴은 자신이 얼마나 애국자인지 강조하지만 정장이든 평상복이든 상관없이 러시아산 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정장은 대부분 주문제작되며, 가격은 한 벌에 약 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ASS]

국민들이 처한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고 침략 전쟁과 자신의 옷에 세금을 ‘낭비’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비지트 우크라이나는 “정치인들이 비싼 옷을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모든 이들이 푸틴처럼 공개적으로 명품을 과시하지 않는다”면서 “젤렌스키는 국민이 실업에 허덕이고 가난하게 사는 과정에서 전쟁에 돈을 쓰는 대통령처럼 뇌물과 부패에 연루돼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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