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친구'부터 '귀여운 막내아들'까지 10명이…광주의 시간도 10월29일에 멈췄다
[편집자주] 새해 벽두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 단란했던 초등학생 조유나양 가족의 실종사건, 핼러윈데이 서울 이태원참사는 대한민국 사회를 온통 충격에 빠뜨렸다. 5·18 정신적 손해배상, 지속되는 극한 가뭄,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경쟁 역시 지역사회서 주목되는 주요 이슈였다. 3월 대통령선거에 이은 지방선거에서의 정치권력 교체, 누리호 발사 성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 입국 지원, 대동고 시험지 유출사건도 화제를 모았다. <뉴스1 광주전남취재본부>는 올 한 해 광주·전남을 뜨겁게 달군 주요 10대 뉴스를 선정해 5일에 걸쳐 나눠 싣는다.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0월29일 토요일의 늦은 밤. 이태원에서 158명이 압사하고 197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2022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대규모 인명 참사.
핼러윈을 앞둔 주말 이태원에 10만 명이 넘게 몰렸고, 해밀톤 호텔 옆 좁은 골목에 밀집된 인파가 뒤엉키며 벌어진 사고였다. 희생자의 약 90%가 20·30대 젊은이였다.
숨 가쁘게 전해지는 속보와 계속해서 늘어나는 사망자 수. 잔인했던 그날 밤은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고 지점과 약 300㎞ 떨어진 광주·전남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 10명의 사연으로 하염없는 슬픔에 잠겼다.
◇ 이태원에서 돌아오지 못한 딸…"못다한 삶 어찌 위로하나"
10년 지기 '단짝 친구' 딸들을 잃은 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았다.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에 어머니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사고 직후인 지난 10월31일 광주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만 23세 김씨와 오씨의 빈소는 눈물바다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잃은 부모는 서로를 위로하며 고통을 나눴다.
생전 마지막 축제 현장에서 보내온 사진을 함께 보던 가족들은 두 아이를 함께 보내주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하늘로 간 두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그곳에서도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두 부모는 "저녁 때 아이들 영정사진이라도 같이 두고 함께 밥 먹이자"며 "이따 뵙자. 마음 잘 추스르시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짝인 두 사람은 고향인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해 직장을 얻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씨는 3개월 전 취업해 최근 승진을 했고, 은행원인 오씨는 정규직 전환 채용시험을 치르고 있던 중이었다.
오씨 어머니는 "면접이 끝나고 온다고 했었다. 매일 손 꼽아 기다렸는데 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겨우 스물셋 아니냐. 시집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너무도 허망하다"고 했다.
김씨 아버지는 "얼마 전 생일이었던 딸이 용돈을 받아가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늘 밝았던 우리 딸이 다시 돌아온다면 세상 무슨 일이라도 하겠지만 방법이 없다. 너무나도 슬픈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자책했다.
2남1녀 중 막내로 부모에게 딸보다 더 살가웠던 아들 장모씨(26)도 세상을 등졌다.
올해 대학교 졸업 예정이던 장씨는 취업에 성공한 둘째 누나와 함께 코로나19로 가지 못했던 가족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터였다.
고인의 아버지(61)는 "먼저 취직한 막내가 첫째 큰형, 둘째 누나의 여행경비 500만원도 대신 부담했다"며 "이태원 가기 전 막내랑 맥주 한잔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됐다"고 울먹였다.
미용사가 되겠다며 상경, 꿈을 이루고 명절이면 아버지의 허연 머리카락을 손수 염색해 주던 박모양(19·여)도 가족의 곁을 떠났다.
박양은 가족들과 하루에도 수십차례 전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가 하면 아버지가 시간이 늦었다며 전화를 끊으려는 낌새가 보이면 응석을 부려 통화를 더 이어갔다.
박양 아버지는 "딸을 봤는데 뼈가 부러지거나 타박상도 없었다. 얼마나 예쁘고 싹싹한 우리 막내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며 눈물을 참아냈다.
광주에서는 광주 거주 시민 2명과 연고자 5명 등 7명이 숨졌다.
전남에서는 장성 거주 1명, 목포 거주 1명 등 2명과 인천에 거주하지만 부모 연고지가 목포인 1명 등 총 3명이 숨져 광주·전남 참사 희생자는 총 10명으로 집계됐다.
◇ '국가애도기간' 대부분 행사 취소…강행 비난받기도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이 정해지면서 광주·전남도 예정됐던 행사를 취소 또는 잠정연기했다.
광주에서는 남구 효덕동 동민한마음 축제와 양림동 민간 핼러윈 축제, 전남대·조선대 축제 등을 취소했다.
전남은 함평 국향대전, 화순 국화대전, 무안 YD페스티벌, 영암 월출산 국화축제 등을 취소 또는 미뤘다.
국가 애도기간 중 불요불급한 행사는 원칙적으로 취소 또는 연기하고, 애도기간 이후 행사를 추진할 경우에도 현장 안전관리를 강화해 안전사고 방지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곳곳 '외유성 공직자 연수', '지방의원들 술자리', '대규모 골프대회' 등 시기에 맞지 않는 행태가 쏟아지기도 했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운영하는 GIST기술경영아카데미(GTMBA) 총동문회가 11월1일 전남 무안의 한 골프장에서 단체 골프행사를 열었다.
행사 개최 전 일부 동문회 회원들은 '국가애도기간인데 골프행사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GTMBA 원장이 강행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날 광주 광산구 주민자치과 직원과 주민자치위원 84명이 1박2일 일정으로 충북 단양과 제천 일대로 관광성 워크숍을 떠나기도 했다.
구는 주민자치위원의 사기 진작과 마을리더로서의 역량강화,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워크숍이라고 설명했지만 워크숍 일정에 단양 고수동굴, 청풍호 유람선 체험, 관광 모노레일 등이 포함돼 '관광성 워크숍'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가 애도기간 중 관광성 워크숍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광산구는 공식 사과했다.
광산구는 공식 입장문을 내고 "국가 애도기간 중 진행된 워크숍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며 "대다수 행사를 취소했음에도 미처 세세하게 살피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일부 전남도의원들이 국가애도기간 중 술자리를 가진 사실도 드러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엄중 주의'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전남도당은 "도민들께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며 "도민의 시각에서 행동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 세월호 상주들 이태원 위로…추모객 1000여명 다녀가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과 청소년촛불모임은 광주 충장로 시내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다.
애도기간동안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은 10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상주모임 관계자는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 입장에 참사를 대하며 고통을 함께 애통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수습과 지원, 치유,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는 데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향소를 찾은 광주시민들은 눈물로 희생자를 위로했다.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은 김민지(73·여), 임순재(46·여) 모녀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다 내 새끼들 같다. 짠해서 어떡해"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전부 우리 애들, 내 새끼 같은 젊은 애기들이 피해를 봤다"며 "못다한 삶을 어찌 위로하겠냐. 부디 다음 생엔 안전하고 좋은 데서 태어나서 고통없이 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딸 임씨는 "내 자식이 그랬으면 어찌 살 수 있었을까 싶다"며 "세월호 후 몇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세월호를 기도한다. 부디 다시는 애꿎은 청년들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시민 양모씨(33)는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매년 있었던 행사였는데 정부와 행정기관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참사를 낳았다. 너무나 무능하다"며 "월드컵 때는 더 많은 인파가 나와도 통제가 됐었다. 한창 나이에 놀고 싶었던 젊은이들 책임으로 돌리는 정부 태도가 답답하다.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구 주민 이상재씨(61)도 "사고 전날에도 이태원은 핼러윈 인파가 많이 몰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참사 당일 인파 통제를 위한 경찰 배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용산에 대통령실이 있음에도 국민을 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통령이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씨는 또 "이제 와서 죄 없는 하위직들 처벌하는 모양새로 꼬리 자르지 말고 책임 있는 고위층이 전부 물러나야 한다"며 "더 이상 국민 눈을 속이려고 하면 국민들도 더는 참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연극 작업을 위해 광주를 찾은 배우 오재성(34)씨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더 좋은 방안들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에서 그것을 제재한다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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