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푸틴, 강경 참모들만 의지해 전장 이해 제한적"

최서윤 기자 2022. 12. 2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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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전 러 고위 관료 포함 전현직 미·유럽 당국자 취재해 보도
애초부터 푸틴이 듣고 싶은 정보만 전달되게 설계된 권력 구조…우크라 전쟁 오판에 영향 미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청년 정책 국가 위원회에 참석하기 전에 마네지 전시 홀의 청년 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러시아가 올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키이우 후퇴', '하르키우 후퇴'에 이은 '헤르손 후퇴' 등 패퇴와 굴욕적 철수를 거듭하는 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판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애초부터 지난 22년간 러시아의 권력 구조가 푸틴이 듣고 싶은 정보만 전달되도록 설계돼온 데다, 점점 고립과 불신이 짙어진 푸틴이 강경한 참모들 말에만 의지하다보니 전장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직 러시아 고위 정보관을 포함한 전·현직 미·유럽 당국자들을 취재한 결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열악한 장비만 갖춘 러시아 최선전 부대가 서방이 제공한 포병 지원을 받고 진격한 우크라이나군에 포위됐는데도, 푸틴 대통령은 장군들의 조언을 거부하고 군대에게 계속 버티라고 지시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알렉산드르 라핀 러시아군 중장이 시리아 동부의 한 지역에서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2017.09.15/뉴스1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가장 최근 사례를 예로 들면 러시아군은 지난 9월 말 우크라이나 동부 작은 도시 라이만 전투에서 이미 패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스크바에서 암호화된 회선을 통해 최전선 지휘관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전달된 건 후퇴하지 말라는 푸틴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결국 우크라이나군의 매복이 계속되면서 10월 1일 러시아군은 전우의 시신 수십 구와 포병 보급품을 남겨둔 채 줄행랑 치듯 급히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신속하게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몇 달간 손실만 큰 수렁에 빠지자,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립과 불신을 통해 자신의 호전적인 세계관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매체는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여름 내내 군사전문가와 방산업체 대표단이 대통령 주재 회의에 등장해 푸틴 대통령이 전장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건 그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이길 수 있다'고 사탕발림하는 일부 참모진 때문이라고 매체는 진단했다. 한 소식통은 WSJ에 "푸틴 주변 인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대통령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러시아는 전장에서 비참한 결과를 보고 있다. WSJ는 "시간이 지나면서 군 복무 경험도 없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 당국자들은 푸틴에게 직언할 수 있는 크렘린궁 내부자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매체는 전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외교·안보·정보 채널을 통해 거의 매일 접촉하지만 대화 자체도 제한적이라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 오른쪽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모든 전장 정보, 침공 설득했던 파트루셰프 '편집' 거쳐 푸틴에게 보고

푸틴 대통령은 매일 오전 7시쯤 일어나자마자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서면 브리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보에는 전장의 성공을 강조하고 좌절은 줄이기 위해 신중하게 조정된 정보가 포함돼 있다고 전현직 러시아 관리들은 전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도 인터넷 사용을 오랫동안 거부하다 보니, 이데올로기적 견해가 일치하는 참모들이 '편집'한 브리핑 문서에 더 의존하게 된 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때로는 전장의 최신 현황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최전방 지휘관들의 보고는 연방보안국(FSB)에 우선 모이는데, 이 보고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장을 거쳐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된다.

파트루셰프는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을 설득한 대표적 인사 중 하나다.

러시아 인권위원회 의장을 지낸 언론인 발레리 파데예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과 참모진과의 TV 회의를 앞두고 용병 사용 등 일부 주제는 꺼내면 안 된다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한다.

파데예프는 "행정부와 사전에 질문을 논의한답시고 국가 기관이 대통령을 위해 정보를 필터링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넌센스"라고 말했다.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파괴된 러시아 군 무기 전시회에서 어린이들이 탱크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러시아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스위스 제네바 주재 주 국제기구 대표부에서도 근무했던 보리스 본다레프에 따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푸틴 대통령의 20년 통치 기간 그가 듣고 싶어하는 정보를 본부에 제공하는 법을 익힌다고 한다.

한때 이들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 푸틴의 별명은 '파파'로, "파파를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좋은 소식은 과장하고 나쁜 소식은 대수롭지 않게 전달해야 칭찬과 승진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전했다.

WSJ는 이 같은 정보들과 관련해 러시아 외교부 및 대외정보국(SRV), 연방보안국(FSB) 등 관련 당국에 각 논평을 요청했지만 어디서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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