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 성탄절 편지…"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304명 삶 기억 이름 불러주는 시간 가져
이태원참사 유가족에 편지…"악성 댓글 쳐다보지 마세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위한 성탄카드 작성…"이태원참사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할 것"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며 연대하는 20여개 교회·단체 2백여 명 참석
오늘은 104월 3174일.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달력이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8년 여 전 세월호 참사 직후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선 날이 벌써 3천 일을 훌쩍 넘어섰다.
"자식 팔아 돈 번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과 고통,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가식적 위로 에도 사랑하는 내 자녀, 내 가족이 어떻게 희생됐는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버틴 세월이다.
8년 8개월의 외로운 걸음은 죽음과 어둠, 거짓과 불의를 물리친 예수그리스도를 붙잡고 버틴 세월이기도 하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23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성탄예배를 드렸다.
예배 사회를 맡은 안산희망교회 김은호 목사는 "4.16참사 이후는 달라야한다는 간절함으로 8년이 지났지만 2022년 우리는 4.16참사와 같은 10.29 이태원 참사를 겪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오늘 우리는 4.16가족과함께하는 성탄예배를 통해 여전히 거짓이 진실을, 어둠이 빛을, 절망이 희망을, 여전함이 변화를 이긴 듯 보이지만, 이 땅에 빛과 희망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 결국 빛이 어둠을, 진실이 거짓을, 희망이 절망을 이기는 주님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16가족과 함께하는 성탄예배 주제 '그의 이름, 우리와 함께'.
성서 묵상에 나선 최순화 씨(이창현 군 어머니)는 "억울하게 죽임당한 그들을 잊어버린다면 내가, 우리가 있는 이곳이 언제든지 세월호가 될 수 있고, 이태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순화 씨는 이어 "(성경은) 생명이 계속 이어져야 하고 인류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며, "이처럼 이름은 세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여결해주고 아울러 오늘을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웃으면 초승달이 되고 직접 만든 빵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천인호"
"엄마의 친구이자 분신, 연극무대에서 조명받는 것이 좋다고 말하던 오경미"
"모든 생명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수의학과에 가고 싶어 했던 장혜원"
…..
성탄예배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 304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줄로 표현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배에서는 159명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운데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은 79명의 이름이 불렸다.
유예은 양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성탄 편지를 보냈다.
박은희 전도사는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란 편지에서 "(아이가 없는)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 덕분이었다"며, "함께있는 유가족들을 가까이 하시고 위로하기위해 찾아오는 시민들과 함께 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또, "세월호 유가족들도 참사 초기부터 보상금 프레임으로 정부가 가족들을 돈에 눈먼 사람처럼 만들고, 온갖 악성 댓글에는 자식을 잃고 돈 잔치하는 글이 난무했다"며, "악성 댓글을 눈 여겨 보지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유가족을 자식의 목숨을 이용한 파렴치범으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하는 경제사범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은 가해자의 자리에서 은글 슬쩍 도망 가버리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며, "매번 참사 때마다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저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걸고 계속 나아가라는 당부도 전했다.
박은희 전도사는 "저도 자식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 안다고 감히 말하진 못하겠다"며, "그저 잊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먼저 시작한 저희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8년 8개월이 지나고 보니 저희가 뱉어낸 말은 저희의 말이 아니었고, 내 아이의 절규였다"며, "아이가 마음껏 말하도록 아이의 이름을 걸고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박은희 전도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대신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 뜻도 전했다.
4.16가족과 함께하는 성탄예배에는 안산희망교회, 화정감리교회, 고기교회, 기독여민회, 수원성교회,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새길교회, 향린교회, 한백교회, 새맘교회, 일산은혜교회, 청암교회, 시온성교회, 나루교회, 배동교회, 길가는밴드 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연대하는 그리스도인 2백 여 명이 함께 했다.
나루교회는 예배 참석자들에게 떡을 제공했고, 경기도 일산의 '달려라 커피' 안준호 목사가 따뜻한 커피를 제공했다. 예배 참석자들은 예배 후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성탄카드를 작성했다.
성탄예배 헌금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협의회와 416가족협의회 지원, 416생명안전공원 예배팀을 위해 사용된다.
임마누엘의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이 23일 저녁 안산 4.16생명안전공원을 따스하게 감쌌다.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 부치는 성탄 편지 전문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엄마입니다. 저의 딸은 쌍둥이 중 작은 아이로 노래 부르는 거를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늘 입에 노래를 달고 살았습니다. 또 과일을 좋아해서 별명이 과일나라였어요. 그리고 저 멀리서도 용케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 부르며 달려오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적막한 방에 혼자 있을 때, 먹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상한 과일을 잔뜩 버려야할 때, 늘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던 아파트 입구를 지날 때, 순간 시간은 멈추고 저는 우주 한 가운데 서있는 듯 길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어머님도 그러시지요. 어머님도 아이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아이를 위해서 살아남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십니까.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분들 앞에서는 웃을 수도 있었고 마음껏 울 수도 있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밥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 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함께 있는 유가족들을 가까이하시고 위로하러 오는 시민들과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참사초기부터 보상금 프레임으로 정부는 유가족을 돈에 눈먼 사람으로 만들었고, 온갖 악성댓글에는 자식 잃고 돈 잔치하는 부모들이라는 조롱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겨울 오랫동안 사용했던 세탁기가 망가졌지만 저는 차마 그것을 바꾸지를 못했습니다. 다 그 악성 댓글들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산처럼 쌓인 젖은 빨래더미를 끌어않고 머리를 묻은 채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악성 댓글 따위는 쳐다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사람도 아닌 것들의 글들입니다. 눈여겨 보지마세요.
지금도 정부는 당연히 줘야하는 배상금을 보상금으로 포장하고 새빨간 글씨로 속보를 내보내며 유가족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에게 당연히 줘야하는 것인데, 정부는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행동을 통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자식의 목숨을 이용한 파렴치범으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하는 경제사범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은 가해자의 자리에서 은근슬쩍 도망갑니다.
기가 막히시지요. 한 번도 아니고 매번 참사 때마다 이 짓을 하고 있고 있는 저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보수단체들이 혐오의 나팔을 불 도록 부추기고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금의 모습은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틀 뒤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그 휘황찬란한 왕궁이 아닌 누추한 마구간에 태어나신 것은 교회 다니지도 않는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거리에 나와 있는 자들의 손은 잡아주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에게 피눈물이 나게 한 대통령을 찾아가 그의 손을 잡고 기도회를 하고 왔습니다. 그들은 참 종교인이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저도 자식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여러분의 마음 다 안다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잊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먼저 시작한 저희가 절대 포기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싶은 일은 정부나 정치인 심지어 시민의 눈치도 보지 말고 마음껏 하시기 바랍니다.
8년 8개월 지나고 보니 저희가 뱉어낸 말은 저희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 아이의 절규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마음껏 말하도록 아이의 이름을 걸고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러다보면 보면 힘들 때 아이들은 찾아와주고 슬플 때 함께 울어주며 늘 그 길을 함께 할 겁니다. 그런데 이 길이 생각보다 참 깁니다. 잘 챙겨 드시고 때로는 쉬시고 때로는 도움을 받아가면서 긴 호흡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세월호유가족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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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송주열 기자 jyso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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