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어 ‘여성’… 낙태권 운동부터 히잡시위까지

조성민 2022. 12. 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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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셔너리닷컴 올해의 단어 ‘여성’…검색량 14배 치솟기도
바이든 중간선거 승리 요인…낙태권 지키기 나선 여성들
이란 히잡시위, 43년 역사상 최장기 반정부 운동으로 기록
‘여성파워’ 1위는 EU 집행위원장…ECB 총재, 美 부통령 순

2022년은 ‘여성’이 눈에 띈 한 해였다. 미국 중간선거를 휩쓸었던 낙태권 운동부터 이란 히잡시위까지 여성 스스로 제기한 이슈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국 온라인 사전 사이트 ‘딕셔너리닷컴’은 올해의 단어로 ‘여성’을 선정한 뒤, “‘여성’은 가장 오래된 단어 중 하나이지만, 사회적 논쟁의 원천이 되는 단어”라며 “올해 주목받은 개별 사건들과 관련해 이 단어의 검색량이 여러 차례 크게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이 사이트에서 ‘여성’이란 단어 검색량은 올해 3월 마지막 주에 전년 대비 1417% 증가했고, 연간 전체 검색량은 지난해보다 갑절로 늘었다.

지난 7월 29일(현지시간) 미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에서 낙태 권리 지지자들이 낙태 합법화 요구의 상징인 옷걸이 등을 들고 미연방대법원의 낙태 권리 폐지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수폴스=AP뉴시스
◆올 한해 여성들을 일으킨 사건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중간선거 후 첫 대중연설에서 “낙태권 박탈을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에서 여성의 힘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이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 여성들은 목소리를 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초 여당인 민주당은 치솟는 물가로 인한 경제 악화로 선거 패배가 예견됐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밀어붙인 ‘민주주의 대 반(反)민주주의’ 구도와 낙태 이슈가 어느 정도 먹혀들면서 민주당 지지층과 여성 결집을 끌어내며 우세승을 거뒀다.

중간선거가 치러진 후 CNN 등 방송사들의 합동 출구조사에서 유권자들은 표심에 영향을 준 핵심 주제로 인플레이션(31%)을 꼽는 이들이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임신중절권(29%)이 이었다.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판결을 뒤집은 데 대해 유권자의 약 60%가 불만 혹은 분노를 표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여성들의 선거 참여를 이끈 낙태권 운동은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의 낙태 금지 판결로 시작됐다. 미 대법원은 당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던 판례,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 보장됐던 낙태권은 각 주 정부 몫이 됐고, 이에 13개 주에서 낙태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규제하는 주 법이 통과됐다. 이에 여성들은 전국적인 시위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세 여성이 마흐사 아미니가 도덕경찰에 구타 당해 숨진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다. AFP뉴스1
이란에서는 3개월째 히잡시위가 이어지며 43년 이란 역사상 최장기 시위로 기록됐다. 지난 9월 중순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복장 규정 위반을 이유로 붙잡힌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22)의 의문사에 항의하며 여성 중심으로 시작된 시위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이란 인권단체는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어린이 63명을 포함해 최소 458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7일(현지시간) “이란에서 변화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열망이 ‘여성, 생명, 자유’라는 구호 속에 휘몰아치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의 다양한 고충을 짊어진 여성의 반란”이라며 이란 여성들을 ‘올해의 영웅들’로 선정했다.

전 타임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아자데흐 모아베니는 히잡시위의 특이점으로 시위자 평균 연령 15세 정도로 매우 낮다고 점을 꼽았다. 그는 “지금 거리로 나온 젊은 여성들이 이끄는 이 운동은 교육받고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이며 더 높은 기대치를 갖고 성장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한다”며 “이들은 대학, 외국 여행, 괜찮은 직업, 법치주의, 애플 스토어에 가는 것, 의미 있는 정치적 역할, 무엇이든 말하고 입을 자유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AFP연합뉴스
◆포브스 “자유를 위해 헌신한 여성의 해”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100인’을 선정하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로 꼽았다. 그러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 헌신하는 여성은 폰데어라이엔만이 아니다”라며 “자유를 위해 충직하게 행동한 여성들이 2022년 가장 큰 이야기”라고 올해를 총평했다.

포브스는 64세 벨기에인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을 가리켜 “그의 영향력은 독특하다”라며 “명단에 오른 누구도 4억5000만명을 대표해 정책을 세우지 못한다”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도전적인 순간을 맞은 올해 대러 제재와 유럽 단결을 주도하며 리더십을 과시했다.

선정된 여성 100명 가운데는 최고경영자(CEO)가 39명, 국가수반이 10명이다. 억만장자는 11명으로, 이들의 자산 가치를 합치면 모두 1150억달러(약 152조원)에 달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뒤를 이은 2∼5위는 크리스틴 라가르드(66·독일)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커멀라 해리스(58·미국) 미국 부통령, 메리 배라(60·미국) 제너럴모터스(GM) CEO, 애비게일 존슨(60·미국)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CEO다.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 총리는 7위에, 차이잉원(66) 대만 총통은 17위에, 산나 마린(37) 핀란드 총리는 83위에, 시오마라 카스트로(63) 온두라스 대통령은 94위에 올랐다. 한국인으로는 이부진(52) 호텔신라 사장이 85위에 올랐다. 이란 히잡시위를 촉발한 마흐사 아미니는 이번 100인 명단 중 마지막에 이름을 올렸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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