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직접 보기만 했는데도 황홀…붉게 달아오른 페라리의 세계
전설의 레이싱카 F2004 직접 보고
599대 한정판·올해 신차 구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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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Ferrari), 자동차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귀에 박히도록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렇다면 페라리란 무엇인가? 값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럭셔리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카? 포뮬러1(F1) 역사상 가장 많이 우승한 레이싱팀? 아니면 심미적이고 고풍스러운 클래식카? 페라리를 단 하나의 단어로 형용하기는 쉽지 않다. 페라리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볼 수 있는 행사가 있다. 그 이름은 우니베르소 페라리, 우리말로 ‘페라리의 세계’를 다루는 전시회다.
미하엘 슈마허가 탔던 그 차
1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우니베르소 페라리에 참석했다. 그동안 우니베르소 페라리는 오직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페라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마라넬로에서만 열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시회에 필요한 레이싱카나 페라리 클래식카들을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보험은 물론 차를 관리하는 담당자까지 함께 따라가야 한다. 그만큼 페라리에서 큰 결단을 했다는 이야기다. 왜 페라리는 시드니를 선택했을까? 공식적으로 페라리는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 들어온 지 70주년을 기념해 현지 팬과 좋은 기회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판매량이 높아지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속한다는 점과 페라리 F1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가 참가하는 F1의 매년 첫 경기가 열리는 나라인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우니베르소 페라리는 레이싱, 클래식, 라이프스타일, 경쟁, 테일러 메이드 퍼스널라이제이션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브랜드의 시발점인 레이싱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 눈을 사로잡은 전시차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F1 레이싱카 에프(F)2004다. 2004년 시즌 첫 경기인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에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미하엘 슈마허가 F2004를 타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를 시작으로 페라리 팀은 F2004으로 18경기에서 15승을 거두며 컨스트럭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게다가 팀의 간판 스타였던 슈마허가 15승 중 12승을 따내며 7번째 드라이버 챔피언에 올랐다. 7이라는 숫자는 F1 챔피언십 최다 우승을 의미하며, 이 기록은 슈마허와 루이스 헤밀턴만 갖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좋은 기억이 농축된 레이싱카다.
전시회를 안내해주는 페라리 담당자가 긴 설명을 늘어놨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F2004를 영상과 사진 자료로 수천, 수만 번을 봤지만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트 위에 슈마허가 앉았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레전드가 주는 아우라는 대단했다. 전시차 뒤편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에서 획득한 우승 트로피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 번째 전시관으로 이동 중 사람들의 말소리가 많아졌다. 관람객들의 말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대단한 모델들이 전시됐다는 의미일 거다. 예상은 정확했다. 페라리 창업 4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모델이자 창업주 엔초 페라리의 마지막 작품인 F40(1987년)과 데이토나 레이스에서 우승한 365 GTB(1967년)가 전시된 것. 두 모델 모두 페라리의 역사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남겼다. 페라리만큼 클래식카에 관심을 쏟는 브랜드도 드물다. 2006년도에는 고객들의 차가 페라리 유산의 한 부분이기를 바라며 클래식 리페어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단순히 전시된 예술품으로서의 페라리가 아니라 직접 운전하고 모델로부터 깊은 이해와 지식을 얻길 원하는 고객들의 진짜 욕구를 간파한 것이다. 그곳에 있는 클래식카 모두 클래식 리페어의 손을 거쳤다.
이후부턴 라이프스타일과 경쟁의 정신을 담는다고 해서 페라리 챌린지 레이스에 참가하는 488 챌린지 에보와 488 GT3를 전시하며 고객 레이싱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 다음엔 페라리의 특별 제작 프로그램인 ‘테일러 메이드 퍼스널라이제이션’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고객의 아이디어와 돈만 있다면 어떠한 요청에도 응답하며 하나뿐인 페라리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뭐니뭐니해도 우니베르소 페라리의 백미는 최초로 공개되는 한정판 모델과 신모델 공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초로 공개된 한정판 모델은 데이토나 SP3다. 1967년 데이토나 레이스에서 페라리가 포디움 세 자리를 모두 차지한 330 P3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330 P3가 가지고 있던 대조, 조각적 아름다움, 날카로운 선 등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데이토나 SP3 모델은 페라리뿐 아니라 세상 어떤 차보다 미학적인 가치가 높다. 그렇다고 유려하고 멋진 생김새만이 이 차의 전부는 아니다. 최고출력 840마력을 발휘하는 12기통 엔진이 들어갔으며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2.85초, 0시속 200km 가속시간은 7.4초다. 심미적인 생김새와 폭발적인 성능을 갖추고 있는 SP3는 오직 599명의 고객에게만 구매가 허락된다.
자동차 팬들 가슴 뭉클하게 한 전시
마지막 피날레는 페라리의 신모델인 푸로산게다. 쿠페형 스포츠실용차(SUV)의 형태를 하곤 있지만 페라리는 푸로산게는 SUV라는 명칭 대신 4도어 4시트 GT(그란투리스모)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헤드램프에서 시작해 루프라인을 거쳐 테일램프로 떨어지는 라인이 페라리의 대표적 GT 모델인 로마를 닮기도 했다. 페라리는 푸로산게에서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도치 도어다. 뒷좌석 탑승자가 편리하게 타고 내릴 수 있게끔 배려한 것인데 도어도 버튼 하나로 닫을 수 있다. 더욱 어마어마한 것은 보닛 아래다. 8기통(V8) 엔진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붙을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12기통(V12) 자연흡기 엔진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페라리의 시이오(CEO) 베네데토 비냐는 “12기통 엔진이 출력, 주행성능 등 모든 면에서 적합하다”며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시승했을 때 과연 어떤 느낌을 전달할지 꽤나 궁금하다.
고작 몇 대의 페라리 모델 전시 관람만으로 페라리 브랜드의 가치와 세계를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기엔 브랜드의 역사나 자동차, 세계가 너무나 깊고 방대하다. 하지만 페라리가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함께 걸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속도와 감성, 예술성을 살펴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당시를 살진 않았지만, 레이싱을 즐기진 않지만, 페라리를 소유하진 않지만 페라리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오직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 대부분 페라리를 상징하는 붉은색, ‘로소 코르사’ 색마냥 달아오르며 쉽게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김선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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