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냥거리기, 빈정대기[고양이 눈썹 No.50]

신원건 기자 2022. 12. 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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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Sarcasm? Is that sarcasm? (비아냥? 그거 비아냥에요?)”
“No, that‘s not sarcasm. I don’t use sarcasm. It‘s irritation.(비아냥 아니에요. 나는 비아냥거리지 않아요. 그건 짜증이에요.)”

영화 ‘어카운턴트’(2016년)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대사입니다. 탈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남주인공이 무뚝뚝하게 답하자 여주인공이 “그거 ‘Sarcasm’이냐”며 거칠게 항의합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남주인공의 화법을 이해 못 해 벌어진 상황이죠.

불성실한 답변 태도에 ‘Sarcasm’이라며 화를 내는 장면을 보니 빈정대거나 비아냥거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생활에선 이런 말투가 너무 많으니 한국영화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요.

영화 스틸컷

▽“모멸감을 주기 딱 좋은 한국어의 특성이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다”
- 소설가 장강명의 경향신문 2017년 2월10일자 인터뷰

권력자를 돌려서 비꼬는 말투나 행위, 예술을 ‘풍자(諷刺)’라고 합니다. 부드럽게 찌른다는 뜻인데요,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무기입니다. 풍자는 재미있고 통쾌합니다. 반대로 강자가 약자를 풍자할 수는 없죠. 강자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요? 강자가 약자를 비아냥대면 우리는 그것을 ‘약자혐오’나 ‘협박’, 또는 ‘갑질’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는 빈정대는 대사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정겹고 친한 사이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예의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놀려대며 ‘팩폭’ 직언을 하는데, 이는 동등한 관계이니 가능한 말투죠. 사회적인 갑을 관계, 수직 관계에서 이러면 곤란하죠. 빈정거리는 사람은 바로 꼰대가 되고요.

어쨌든 소설가 장강명이 지적한대로 한국어의 특성 중 하나는 모멸감을 주기 쉽다는 것입니다. 빈정대고 비아냥거리며 비꼬기 좋은 언어라는 것이지요. 모멸감으로 연결됩니다.

2021년 6월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리는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다. ‘올드 보이’나 ‘디스커넥트’ 같은 영화에서 잘 묘사했듯이,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은 세상에 대한 증오 또는 자기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억울하게 수모를 당했다는 피해의식은 다른 집단에 대한 맹렬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 개인의 내면 그리고 사회에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두운 심연이 있다.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규모와 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이유 없는 저주와 맹목적인 폭행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많은 경우 그 씨앗은 모멸감으로 밝혀진다.”
-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책 ‘모멸감(굴욕과 존중의 감정사회학)’(2014년) 중에서

비아냥과 빈정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모멸감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 김교수의 추론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장난을 넘어선 비아냥은 가랑비에 속옷 젖듯 모멸감을 마음에 켜켜이 쌓이게 합니다. 명절 때 모인 가족들끼리 싸우고 폭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평생에 걸쳐 들어온 비아냥 말투에도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면서 말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 쓰기’ 운동을 한다. 사람들 간에 대등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상호존중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데는 존대-반말 체계의 탓이 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은 위 인터뷰에서 존댓말을 제안합니다. 갑을관계, 지위고하, 나이서열 관계없이 존댓말을 쓰는 것이지요. 이미 대다수 회사들의 단체 업무 톡방에선 거의 모두 존댓말을 씁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니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농담 삼아 “어차피 우리는 아무도 존중해 주지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서로 존중해주자”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비꼬지 않는 유머도 좋습니다. 비꼬고 싶어서 정 입이 근질거린다면 스스로를 비꼬면 됩니다. 이른바 자학개그인데 잘만 하면 비웃음 본능을 해소하면서도 겸손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반말과 비아냥에는 상대방을 깎아내려 비교우위를 확보하려는 속내도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만을 깎아내릴 뿐입니다.

2022년 4월
▽책 ‘모멸감’ 후반부 문단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비아냥-빈정-모멸감-자존감 등은 모두 연결돼 있으며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친밀한 사람에게 더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합니다.

“소통에는 정성이 중요하다. 정성이란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몸으로 함께 있는 사람이 내게 온 마음을 기울여줄 때 자신의 존귀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경청하고, 하나 마나 한 말들만 늘어놓으면 자존감이 상한다. 그렇게 겉도는 만남과 대화 속에서 심성은 자꾸만 건조해지고 냉랭해진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소한 부주의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져 섭섭한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0년 1월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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