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예대상 아직도 필요할까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2. 12. 2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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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 예능의 초라한 성적표
달라진 환경에 대상 찾기 어려워진 연예대상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연말 연예대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은 과거만큼 관심도 기대도 떨어진 상태다. 심지어 대상 후보를 찾기조차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방송 후 무수한 논란들이 터지는 연예대상, 과연 지금도 효용가치는 있을까. 

2022년도 《SBS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번 연예대상도 유재석? 

올해도 《SBS 연예대상》의 대상은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올해도'라는 표현을 쓰게 된 건, 사실상 유재석이 지상파 방송 3사 《연예대상》의 대상을 셀 수 없이 휩쓸어간 전적들 때문이다. 올해 《SBS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에게 대상을 안긴 프로그램은 《런닝맨》.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으로 2011년, 2012년, 2015년, 2019년, 2022년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대상을 받았다. 

《런닝맨》은 분명 해외 팬들까지 끌어모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캐릭터쇼와 연계된 '게임 예능'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열었던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는 분명 인정된다. 특히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됐던 2010년부터 약 2년간은 놀라울 정도의 게임 예능 실험들이 이뤄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수차례 나왔다. 더 이상 성장동력이 없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시청률도 현재 겨우 4%대(닐슨코리아)를 유지하고 있다. 일요 예능으로서 시청률이 낮은 편이고 전성기를 훌쩍 지나 논란이 아니면 화제성도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런닝맨》과 그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유재석이 이렇게 올해까지도 《SBS 연예대상》의 대상을 받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대상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느낌이 올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전혀 아니었다." 올해 《SBS 연예대상》 대상 수상소감에는 유재석의 난감함이 담겼다. 실제로 《SBS 연예대상》 방송 중에는 《미운우리새끼》의 탁재훈과 《런닝맨》의 지석진이 대상이 아닌가 하는 추측들로 채워졌다. 대상 후보였던 신동엽은 진행자인 자신이 아니라 "《미운우리새끼》 아들들이 후보에 올라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내놨고, 유재석 역시 탁재훈이나 지석진이 되는 것에 박수를 칠 준비가 돼있었다. 수상 소감에서 먼저 탁재훈과 지석진에 대한 미안한 마음부터 이야기한 건 그래서다. 

유재석의 난감함엔 이번 대상 수상이 프로그램의 성취 때문이 아니라는 게 간접적으로 담겨 있다. 어찌 보면 새로운 시도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시즌제나 스핀오프로 채워진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대상을 받는 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유재석이 지목된 건 '안전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프로그램은 고만고만했어도 유재석이라는 인지도와 신뢰에 기댈 수 있으니 말이다. 

《SBS 연예대상》이 올해 제일 먼저 방영됐고, 그래서 제일 먼저 매(?)를 맞았다. 유재석 대상 수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시상식 진행 과정에서 지석진이 일종의 희생양이 된 모양새는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KBS 연예대상》(12월24일 방영), 《MBC 연예대상》(12월29일 방영)은 비켜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 해의 성과를 포상하는 연예대상이지만 지상파 3사가 최근 내놓은 예능의 성적표가 그리 두드러져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청률이나 화제성에서 주목됐던 몇 개 프로그램을 지목하면, SBS는 《미운우리새끼》 《골 때리는 그녀들》 정도이고, MBC는 《놀면 뭐하니?》 《나 혼자 산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정도이며, KBS는 《1박2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전국노래자랑》 정도다. 여기서 비교적 새로운 프로그램은 방송 3사를 통틀어 《골 때리는 그녀들》과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정도다. 나머지는 오래도록 방영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들이다. 이러니 그해의 성취를 포상하는 《연예대상》 시상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같은 프로그램이 여러 해 계속 상을 받는 일이 반복되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상함이 《연예대상》에서도 펼쳐진다. 유재석이 그토록 상을 많이 받은 건 그래서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새로움이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 

최근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지상파 3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더욱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지상파 3사에서는 다룰 수 없는 수위나 소재들이 다뤄지는 데다, 물량 투입도 다르고 시즌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완성도도 월등히 높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지상파 3사의 예능을 위협하는 건 새로운 얼굴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지상파 3사가 예능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는 개그 프로그램 같은 '신인 발굴' 무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 폐지로 이제 지상파 3사에 이러한 신인 등용문은 사라졌고, 개그맨들은 대부분 유튜브로 이동한 상태다. 이제 예능의 새 얼굴은 유튜브를 통해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지상파 3사는 이제 스타가 된 유튜버들을 오히려 캐스팅해 방송을 내는 실정인데, 이렇게 되다보니 이들을 내세운 방송 프로그램들에서도 오리지널리티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오리지널리티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유튜브에 있기 때문이다. 

관찰카메라의 시대가 만든 변화들 

게다가 지금은 출연자들이 중심이 되던 캐릭터쇼 혹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시대가 아니다. 《무한도전》 《1박2일》 등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에는 누가 출연하느냐가 관건이 될 정도로 중요했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신동엽, 김구라 같은 스타 예능인들이 방송 3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쥐락펴락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은 그 예능인(최근 들어서는 프로그램에 주기도 하지만)에게 주로 포상한다는 점에서 이 시절에 딱 어울리는 연말 시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연자보다는 어떤 기획자와 제작자가 붙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좌우되는 관찰카메라의 시대다. 똑같은 프로그램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그 성취는 완전히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놀면 뭐하니?》 같은 프로그램을 보자. 물론 이 프로그램이 관찰카메라 형식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초창기 유재석의 부캐 도전기로 채워졌던 방송들에서는 1인 크리에이터의 연예인 버전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이 도입됐던 게 사실이다. 김태호 PD 퇴사 후 《놀면 뭐하니?》는 과거 《무한도전》 시절로 퇴행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캐릭터쇼로 돌아간 것. 시청자들은 이 변화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기획과 제작의 변화가 프로그램의 향방을 이토록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관찰카메라의 시대로 들어오면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혹은 연반인)들이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제작자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느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오래된 관성 때문인지 혹은 그래서 만들어진 네트워크 때문인지 지상파 3사의 예능들은 여전히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동력을 잃고 있지만, 그저 관성적으로 채워지고 있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 돼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니 트렌드에서 벗어난 옛 프로그램(장수 프로그램이라 포장되지만)에 포상하는 《연예대상》이 시큰둥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지상파 3사 《연예대상》이 갈수록 대중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건 그 프로그램들이 현재와 호흡하지 못하고 자꾸 과거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고, 달라진 프로그램들의 성취에 맞게 《연예대상》도 출연자 중심이 아닌 제작자, 기획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갈수록 《연예대상》은 효용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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