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무슨 뜻?… 문해력 위기 영상세대, 책을 들어라 [이슈 속으로]

김용출 2022. 12. 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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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어휘력 기르는 교육서적 출판 붐
‘무운을 빈다’가 無運? 사흘이 4일?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도 헷갈려 해
스마트폰·유튜브 중독… 글 멀리해
성인 5명 중 1명 ‘일상 문해력 미달’
문해력 관련 신간 132종… 2년새 5배↑
학생 학습서 넘어 성인 타깃 출간도
세대 간 문해력 격차 소통 단절 야기
“독서 습관 복원이 근본 해법” 지적
핀란드 등 독서 중심 교육 본받을 만
“사인회 예약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예약 과정 중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지난 8월20일, 웹툰 작가 사인회를 준비하던 한 카페는 시스템 오류로 예약 혼란이 야기된 것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은 사과 안내문을 게시했다. 하지만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심심(甚深)’이라는 표현을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한 네티즌들이 사과 안내문에 냉소적 반응을 쏟아냈다. “심심한 사과?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해 지금…”, “진짜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는 거야!”….
 
‘심심한 사과’를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다시 이를 설명하는 댓글이 붙으면서 ‘심심한 사과’ 표현은 순식간에 트위터의 트렌드 실시간 상위권에 랭크됐다. 문해력(文解力·literacy) 논란이 재점화한 순간이었다.
사진=EBS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 영상 캡처.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단어나 글의 뜻을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력 위기론’이 퍼지고 있다. 처음에는 어린이와 학생 등 교육 현장을 중심으로 일었지만, 유튜브와 영상문화 전환이 가속하면서 점차 성인들에게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에 문해력이나 어휘력, 개념력을 제고하기 위한 출판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문해력이나 어휘력 관련 도서의 출간이 크게 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관련 도서 판매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올해 ‘심심한 사과’ 논란 등을 거치면서 문해력이 단순히 학교 시험을 치르는 데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관련 콘텐츠의 생산 및 유통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동 청소년에서 이젠 어른까지… 커져가는 문해력 위기론

올해 ‘심심한 사과’로 불거진 문해력 논란은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해 11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안철수 대선 후보에게 건넨 “무운을 빈다”는 말을 한 방송사 기자가 운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2020년 8월 광복절 당시에는 월요일인 1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사흘 연휴’라는 표현에 대해 ‘4일’로 오해한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단어나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우려에서 시작된 문해력 논란은 방치할 경우 세대간 단절은 물론 공동체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더해지면서 점차 문해력 위기론으로 강화됐다.

실제 문해력 위기는 결코 아동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휴대전화 보급 및 유튜브 이용 확대로 성인들마저 책을 읽지 않게 되면서 문해력 저하는 전 사회적으로 퍼졌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만429명을 대상으로 한 ‘성인 문해능력조사’ 결과, 초등 또는 중학교 수준의 학습이 필요한 성인은 20.2%, 약 89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려 성인 5명 중 1명꼴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해력 출판 붐, 지난해부터… ‘심심한 사과’ 논란 거치며 가속

문해력 위기론이 고조될수록 문해력이나 어휘력과 관련한 도서의 출간 및 유통 역시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문해력 출판 붐은 올해 ‘심심한 사과’ 논란을 거치면서 불이 붙는 양상이다. 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인 예스24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출판 및 판매 동향을 분석한 결과, ‘문해력’ 또는 ‘어휘력’ 키워드를 포함하는 신간 도서는 132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58종보다 무려 2배 이상(128%) 늘어난 수치다. 2020년은 24종에 불과했다.

문해력 관련 도서의 판매 성장률 역시 지난해 60.16%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도 작년 대비 18.65%를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큰 폭으로 판매량이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성장세가 가파른 것으로 분석된다.

문해력 관련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EBS 당신의 문해력’과 ‘문해력 유치원’ 등 가정 살림 분야 자녀 교육서가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EBS 당신의 문해력’은 아동뿐 아니라 성인도 문제라고 제기한 EBS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을 펴낸 것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문해력 돌풍의 진원지로 꼽혔다.

이와 함께 문해력 교육법을 전반적으로 가이드하는 ‘문해력 유치원’과 ‘문해력 수업’, 실제로 학습 커리큘럼을 제시하는 ‘1일 1페이지로 완성하는 초등 국·영·수 문해력’, ‘초등 맞춤법 50일 완주 따라쓰기 기초 편’ 등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해력 책자도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일주일에 5권 이상 책을 읽는 다독가로 알려진 유선경씨가 성인들의 어휘 사용 가이드로 쓴 ‘어른의 어휘력’과 10년 넘게 방송작가로 활동해온 김선영씨의 문해력 업그레이드 훈련서 ‘어른의 문해력’도 상위권에 랭크됐다.

박숙경 예스24 과장은 세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존 ‘어휘력’ ‘문해력’ 키워드 도서는 유아, 아동 학습 영역으로 다뤄졌는데, 현재까지도 공급과 수요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교사거나 입시·학습 전문가인 저자의 저서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에는 단어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정규 교육과정 학습 영역으로만 여겨졌는데, 올해 ‘심심한 사과’ 논란을 거치면서 성인층에서도 문해력 저하로 인한 세대 간 소통 단절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붐 더 이어질 듯”… 일각 “독서의 복원 필요”

문해력 출판 붐에 대한 전망에 대해선 전문가 간 의견이 조금씩 갈렸다. 대체로 문해력 위기론이 계속되는 한 상당 기간 붐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 과장은 “스마트폰의 보편화로 소비하는 콘텐츠가 이미지나 영상 위주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읽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며 “다양한 줄임말, 신조어 등장으로 세대 간 소통이 되지 않는 현상 역시 사회적 이슈를 야기하므로, 꾸준하게 관련 도서가 출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문해력 붐이 당분간 유효하겠지만, 근원적으로 독서의 복원을 통해 문해력 위기론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문해력 위기론에 맞서 문해력이나 어휘력을 제고하는 책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다양한 독서 활동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의 복원이나 부활로 승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각국 다양한 문해력 제고 정책… 핀란드는 도서관 연계 책으로만 수업

미국이나 프랑스, 핀란드 등 해외 여러 나라도 문해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독서를 통한 문해력 제고는 물론 종합 사고력 증진을 기획하는 핀란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먼저, 핀란드는 학교 교과 과정 전 과목에 걸쳐 교과서가 아닌 책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독서’라는 과목을 통해 협소하게 독서하는 게 아니라, 전 교과에서 교과서를 없애고 다양한 ‘책’을 교재로 채택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독서하도록 한다.

아울러 학교에 도서관을 설치하지 않고 학교 인근이나 시내 공공 도서관을 이용하도록 한다. 정규 교과 과정도 독서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학교와 공공 도서관은 각종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교육부와 문화부를 통합, ‘교육문화부’를 두고 있다. 단순히 성적 관리나 학습 능력 관리만이 아니라 독서와 문화를 통한 교육을 수행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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