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설명서] 같은 감기약인데 이알? 서방정? 이거 뭔지 아시나요
이알도 약효 오래간다는 의미 똑같아
아세트아미노펜 하루 최대 용량 4g 주의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코로나19에 독감까지 유행하며 감기약 주성분 아세트아미노펜이 엄청 귀해졌습니다. 조제용 해열·진통·소염제로 사용되는 아세트아미노펜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보건복지부는 이달 1일부터 생산량을 늘리는 조건으로 18개 제약사의 아세트아미노펜 650㎎ 18개 품목의 건강보험 상한금액을 한시적으로 올렸습니다. 동시에 의료제품 생산에 대한 첫 긴급명령도 발동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밝힌 18개 품목의 이름은 죄다 '이알서방정' '서방정' '8시간서방정' 이런 식입니다. 아마 감기약 포장지에서 이런 표현을 봤을 겁니다. 약국에서도 "서방정으로 드릴까요?" 같은 질문을 들었을 테고요.
'심심(甚深)한 사과'처럼 요새 한자로 인한 문해력 논란이 간간이 생기는데 서방정(徐放錠)도 한자입니다. 풀이하면 약효를 천천히 방출하는 알약이란 뜻이죠. 쉽게 말해서 삼키면 배 속에서 천천히 녹는다는 겁니다.
굳이 서방정의 반대를 꼽자면 빠를 속(速)자를 써서 속방정입니다. 한데 시중에서 구입하는 일반의약품 중 속방정이라 적힌 건 못봤을 겁니다. 서방정이 아닌 이상 모두 속방정이고 이게 일반적인 제형이라 굳이 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알과 서방정, 영어와 한자일 뿐 같은 말
의약품 이름은 제약사가 마음대로 붙일 수 없습니다. '약전(pharmacopeia)'을 따라야 합니다. 미국약전, 유럽약전, 일본약전을 세계 3대 약전이라 부르고, 우리나라에는 '대한민국약전'이 있습니다. 현행 약사법(제51조 제1항)에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의약품 등의 성질과 상태, 품질 및 저장 방법 등을 적정하게 하기 위해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한민국약전을 정하여 공고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법적 지위를 따지자면 대한민국약전은 식약처 고시입니다. 1958년 제정 이후 5년마다 전면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서방정은 현 약전의 경구투여(먹는) 고형제제 중 하나입니다. 서방정 외에 장용정(腸溶錠·위를 통과해 장내에서 붕괴되도록 제피를 씌운 것)도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당의정(糖衣錠·표면을 당분으로 코팅한 것), 다층정(多層錠·서로 다른 성분을 층으로 쌓아 압축성형한 것) 등 한둘이 아닙니다.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런 용어들이 약전에 수두룩한 건 해외 약전에서 가져온 게 많은 탓입니다. 특히 일본약전이 그렇죠. 식약처 관계자도 "아무래도 그런 이유로 의약품 제형에 한자어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알은 뭘까요. 네, 이건 영어 Extended-Release의 이니셜을 한글로 적은 겁니다. 이러니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이알을 단어만 보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알은 천천히 방출하는 서방과 사실상 같은 뜻입니다. 서방정이 영어로 'Extended-Release Tablets'이라 '이알서방정'은 결과적으로 중복 표현이죠.
오래가는 서방정 대세, 하루 최대 복용량 주의 필요
건보 상한액이 인상된 18개 아세트아미노펜 품목이 모두 서방정으로 용량이 650㎎이란 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300㎎, 500㎎도 있는데, 650㎎만 품귀가 생길 정도로 요즘 대세라는 거겠죠.
500㎎은 최대 6시간 약효가 지속됩니다. 하루가 24시간이니 성인의 경우 한 번에 두 알씩 먹는다면 총 여덟 알이 필요합니다. 650㎎은 천천히 녹는 서방정으로 8시간이 갑니다. 24시간 동안 세 번 먹으면 돼 복용량이 총 여섯 알로 두 알 줄어듭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먹는 횟수가 줄고 알약 개수도 적으니 한결 나을 겁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하루 최대 복용량이 4,000㎎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 초과하면 심각한 간 손상이 생기고 췌장과 신장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500㎎ 여덟 알이면 하루 최대 용량입니다. 650㎎ 여섯 알도 3,900㎎으로 4,000㎎을 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상의 감기약을 같이 먹는다면 최대 용량을 잘 계산해야 합니다. 감기약으로 판매되는 일반의약품에는 양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 있습니다. 동화약품의 스테디셀러 '판콜에이' 1병(30㎖)에도 아세트아미노펜 300㎎이 녹아 있습니다.
서방정은 씹어 먹거나 쪼개서 먹으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물과 함께 삼키는 게 정석입니다. 나눠 먹어도 되는 알약은 보통 쪼개기 쉽도록 중간에 금이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 단일 제제 중 세계 점유율 1위인 타이레놀의 '8시간이알서방정'의 경우 325㎎은 빨리 녹는 속방층, 나머지 325㎎은 천천히 녹아 8시간 지속되는 서방층으로 이뤄졌습니다. 이걸 씹어 먹으면 당연히 서방층이 제 역할을 못합니다.
같은 성분인데, 건보 상한액은 천차만별...이유는 생산량
아세트아미노펜의 건보 상한액, 즉 원가는 지난달까지 51원이었습니다. 이게 이달부터 제약사별로 70~90원으로 인상됐습니다. 한국얀센의 타이레놀 8시간이알서방정이 90원으로 가장 높습니다. 종근당 '펜잘이알서방정'(88원), 코오롱제약 '트라몰서방정650㎎'(85원)도 높은 편이고요.
성분은 똑같은데 건보 상한액이 각기 다른 이유는 생산량의 차이 때문입니다. 공급이 중요하기에 1년간 증산하는 조건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제약사의 상한액을 한시적으로 높여 준 겁니다. 소비자도 조금 부담이 늘지만 그 폭이 크지는 않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1회 처방 시 품목별로 약값이 103~211원 오릅니다. 하루 6정씩 3일간 복용, 본인부담금 30% 적용 기준입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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