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끝없는 호기심… 시같은 풍경 펼치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2022. 12. 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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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끝 안목의 성장
노동집약적 작업 고집하는 허수영
우연히 마주한 일상 사진으로 남겨
캔버스에 물감으로 한겹 한겹 쌓듯
10년에 걸쳐 포개고 응집하며 기록
한 번도 보여지지 않은 세계 표현
최근에는 우주를 주제로 연작 시작
관람객 발길 붙잡아 빠져들게 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안목이란
습득하기보다는 성장하며 자라나
꾸준히 작품 접하면 고귀함 알 것

#허수영이라는 우주

함박눈이 이틀을 연이어 펑펑 내렸다. 겨울은 분명 차가운 계절인데 눈에 덮인 포근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이 마음을 함께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음을 문득 깨달았다. 바쁜 일상에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겨우 가늠하며 지내는 사이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주를 남겨두게 된 것이다.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되새기는 것을 해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올해 기억에 남았던 일을 떠올려봤다. 인상 깊게 본 전시도 몇몇 떠올랐는데 그 가운데는 지난가을 소격동에서 만난 허수영의 개인전도 있었다.
허수영 ‘양산동 05’(2013∼2022) 임장활 촬영. 학고재 제공
허수영은 ‘그림 아로새기기’ 24화를 비롯해 다수 시간과 장소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작가다. 그는 일상 속 소재를 물감으로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듯 그리는 노동집약적 작업을 한다. 예를 들면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새 도감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화면 위에 겹쳐 그리는 식이다. 눈앞의 풍경이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도 마찬가지로 그린 ‘일 년’ 연작은 작가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일 년’ 연작에 집중하던 2016년 30대 중반 이러한 작업을 두고 자기가 다다르고자 하는 바를 작가 노트에서 다음 같이 밝힌 바 있다.

“그리다 보면 흔적은 대상이 된다. 그리다 보면 대상은 재현이 된다. 그리다 보면 재현은 표현이 된다. 그리다 보면 표현은 다시 흔적이 된다. 그리다 보면 그림은 계속 변한다. 그리다 보면 이미지를 상태를 변화시키며 어디론가 간다. 그렇게 그림이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떤 모호한 상태로 한 번 더 끌고 가고 싶다. 더 이상 언어화되지 않는 지점에 보다 그림다운 그림이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래서 “대상들 사이로, 그려진 것들 위로 더는 개입이 불가능할 때까지 계속 침투하듯이 무언가를 그려” 넣었다.

이렇게 계속 침투하듯 그려 넣은 이 시절 작가의 작품에는 대부분 정경이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들판, 눈송이 날리는 초원에서는 지난 시간의 공기와 흔적이 만든 분위기가 전해졌다. 서정적 화면은 보는 이의 발을 붙잡아 한참 그 앞에 머물게 했다. 허수영의 그림은 이번 전시에서도 보는 이의 발을 붙잡았는데 ‘머문다’기 보다 ‘빠져든다’는 맥락에서였다. 그는 최근 과거 다루었던 소재에서 벗어나 우주를 주제로 ‘우주’ 연작을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존재하는 우주의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아 직접 캔버스 위에 그리게 되었다. 세상을 향한 작가의 끝없는 호기심과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양산동 05’

올해 열렸던 허수영의 개인전 전시장은 그래서 우주의 풍경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수많은 우주 사이에서 떠올라 눈과 마음에 남은 작품은 ‘양산동 05’(2013∼2022)였다. ‘양산동 05’는 ‘일 년’ 연작의 일환으로 2012년 입주한 광주 시립미술관 양산동 레지던시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2013년에 처음 그리기 시작해 거기서 마주하게 된 풍경과 일상을 10년에 걸쳐서 기록한 결과다. 작가는 이 그림을 위해 레지던시를 떠난 후로도 광주 근처를 지날 때면 양산동에 들러 사진을 남겼다. 사진 속 풍경을 캔버스 위에 쌓아 시간에 따라 바뀌는 장소를 한 화면에 포개고 응집했다.

새롭고 신선한 작품들 사이에서 ‘양산동 05’를 오래 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만났던 순간의 모습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처음 보았던 ‘양산동 05’는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숲, 나무 위로 눈이 덮인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앞에는 오래되어 덩굴에 뒤덮인 낡은 문이 그 누구도 열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모습으로 그 안의 풍경을 비밀스럽게 만들었다. 작품을 감싼 포장재를 벗기는 순간 이 모습을 보고 소리 없는 감탄을 내뱉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겨울 그림과 1950년대 뉴욕의 겨울이 담긴 영화 ‘캐롤(Carol)’이 동시에 떠올랐다. 섬세하고 잘 다듬어진 그림이지만 그것은 비평보다 시에 가까운 방식으로 와서 닿았다.
작가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작업한 ‘양산동 05’의 2016년 겨울 모습. 필자 제공
시 같은 풍경이었던 ‘양산동 05’는 이번 전시에서 우주가 되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형광으로 빛나는 풀과 꽃 그리고 단풍잎이 가득 찬 화면으로였다. 작가는 그간 양산동을 방문하며 아마 반딧불이도 눈송이도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도달한 적 없는 미지다. 그림이 무엇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림을 그려 만든 아직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세계. 그는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붓질의 노동을 예술의 의미로 밝힌다. “미래에도 인간의 수공예적이고 노동집약적인 행위들이 예술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무한한 그리기를 향한 유한한 노동으로 대답하고자 한다”고. 그래서 허수영의 세계는, 예술은 급속한 과학, 기술 발달 속에도 우리가 영영 다다르지 못할 우주와 같다.

#안목의 성장

예술 또는 미술은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배우기도 어려운 세계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의 구상에서 비롯한 인공지능 페인팅의 시대가 왔음에도 그렇다. 거기에는 항상 완벽한 계산과 예상을 한 치 벗어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피천득은 ‘수필’에서 수필을 논하며 파격이라는 단어를 다음 같이 썼는데 그 파격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 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파격이 담긴 예술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꾸준히, 오래, 많이 보며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이내옥이 쓴 ‘안목의 성장’이라는 책이 있다. 30년 이상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자라난 자기 안목에 관해 회상하는 내용이다. 안목은 사물 또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분명 배워서 습득하기보다는 성장하여 자라나는 것이다. 10여년간 어딘가에 소속되어 전시를 기획하며 매번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전시가 있는 반면 주어져서 해내야 하는 전시도 있었다. 처음에는 주어져서 읽어내야 하는 작품이 버겁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개인적 취향에서 벗어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거기서 비롯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연재가 99회이자 마지막 회를 맞았다. 그간 다뤘던 100여명의 작가, 작품들은 시대, 국가, 장르를 넘나들었다. 강세황(1713∼1791), 고람(古藍) 전기(田琦·1825∼1854), 나혜석(1896∼1948), 알렉스 카츠(Alex Katz, 1927∼), 윤형근(1928∼2007), 카우스(Kaws, 1974∼), 이우성(1983∼)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 작품 소개의 기준이 궁금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이야기한 많은 작가와 작품이 그간 독자 안목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보태고 더했기를 하고 바라본다. 스무살이 훌쩍 넘어 한국에 돌아왔지만 낯설었던 고미술을 꾸준히 접하며 그 귀함을 알게 된 필자처럼 말이다. 그 과정이 만약 없어 추사가 죽기 사흘 전에 썼다고 알려진 봉은사 현판 글씨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다고 생각하면 아득하다.
허수영 ‘우주 01’(2022) 임장활 촬영. 학고재 제공
좋아하는 작가만큼 좋아하는 비평가도 있는데 존 버거는 그 중심이다. ‘존 버거의 사계(The Seasons in Quincy: Four Portraits of John Berger)’(2016)는 존 버거 살아생전 모습을 틸다 스윈튼, 크리스토퍼 로스 등이 5년에 걸쳐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농민을 지지하며 그들이 생활하는 알프스 마을에서 오래 산 그의 생활 여러 면을 담아 보여준다. 영화 중간 존 버거는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 주며 말한다.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눈으로 해결책을 찾아. 그럼 문제 없을 거야.” 미술이 낯선 날이 더 많겠지만 독자분들이 시각 예술을 꾸준히 봐주시면 좋겠다. 삶의 그리고 세상의 해결책이 어쩌면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안에 있어 왔다고 믿으니까.

그동안 연재를 읽어 주신 독자분들 도움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김한들 미술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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