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연말 두 차례 대중음악 시상식, 거대하지만 빈곤한 한국 대중음악

성상민 문화평론가 2022. 12.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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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품'으로서의 한국 대중음악
대중음악 성장세 뒷면, 소속사와 아티스트 불공정 사건들

[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에서 가까스로 회복하기 시작한 2022년 연말, 두 개의 대중음악 시상식이 각각 개최되었다. 하나는 지난 11월 29일부터 30일까지 CJ ENM 차원에서 개최한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이하 MAMA), 다른 하나는 12월13일 스타뉴스에서 주최한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이하 AAA)이다. 특히 MAMA에 대한 주목이 컸다. 영화, 방송은 물론 음악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CJ ENM 차원에서 개최하는 시상식이자, 골든디스크나 서울가요대상과 같이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대중음악 시상식을 제외하면 1999년부터 시작된 가장 역사가 긴 대중음악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내외 팬들의 기대대로 두 시상식은 무수한 화제를 낳으며 마무리되었다. 'LE SSERAFIM'(르 세라핌), 'Kep1er'(케플러), 'NewJeans'(뉴진스), 'IVE'(아이브) 등 최근 데뷔한 아이돌의 무대를 제공하는 한편 ITZY(있지) 등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아이돌들도 총출동하였다. 임영웅, 자우림, 정재일을 비롯해 아이돌 이외에도 최소한의 '다양성'을 챙기려는 시도도, 두 시상식의 풀네임에 삽입된 '아시아'라는 호칭에 최소한으로 부합하게 BE:FIRST(비퍼스트)나 NiziU(니쥬) 등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을 초청하는 시도도 있었다. 여러 가수와 연예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많은 이들이 눈과 귀를 즐거워했다.

한편으로는 시상식이 종료된 후 몇몇 팬들의 비판 또한 함께 제기되었다. 뛰어난 2022년 한 해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왜 이 가수는 본상을 받지 못했는지, 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음향이나 가수들의 퍼포먼스를 담는 연출이나 카메라 워킹에 진정이 없는지 같은 비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특히 시상식이 열리기도 전부터 일었던 논란이 있었다. 어째서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한다는 시상식이 한국이 아니라 해외, 그것도 일본에서만 열리냐는 이야기였다. 올해 MAMA는 일본 오사카에서, AAA는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되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전파를 이후로 입국의 장벽을 높이던 일본이 최근 몇 달 사이 입국 조건을 대폭 완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팬들이 타국에서 열리는 공연의 입장권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오랜 기간 해외 여행에 목말라 하던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폭발적으로 항공권을 구하는 바람에, 저가 항공권의 대명사였던 일본행 티켓의 비용이 급등한 것도 팬들로 하여금 두 시상식의 참석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차라리 코로나가 퍼지는 동안 모든 대중음악 시상식이 한국에서 열릴 때가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2022 MAMA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의 대중음악 시상식이 해외에서 열리는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10년 MAMA가 마카오에서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시상식들이 해외 개최를 당연시했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 문화를 암묵적, 직간접적으로 배제하는 '한한령'이 발생하자 수많은 시상식들이 이전부터 한국 아이돌 팬덤이 형성된 일본을 향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한국 아이돌 팬덤이 형성되어 있으나, 상대적으로 공연 시장이 작은 점은 세계 2-3위권의 음악 및 공연 시장이 정착된 일본으로의 집중을 가속화시켰다.

2000년대 이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공연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나, 연예 기획사들이 각 아이돌들에게 투자한 금액을 빠른 속도로 회수하기에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규모다. 특히 10대 시절부터 빠르게 '연습생'을 양성하며, 최소 4-5명 이상의 그룹으로 아이돌을 육성하는 시스템의 반복은 각 기획사들로 하여금 막대한 투자금을 소모하도록 만든다. 자연스럽게 이미 한국 아이돌 팬덤에 대한 강한 팬덤층이 형성되어 있고, 시장이 훨씬 큰 일본으로의 집중은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집중 현상이 한동안은 각각의 아이돌이 한국 활동보다 일본 등 해외 활동 기간이 더 긴 상황으로 드러났다면, 2010년대 이후부터는 대중음악 시상식의 해외 개최로 전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2년간은 시상식의 해외 진출을 강제적으로 중단시켰지만, 코로나의 위협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동시에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정작 한국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팬들의 원성도 같이 등장할 수 밖에도 없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최근 끝난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축구선수 손흥민의 소속팀 영국 토트넘 홋스퍼가 한국에 방문하여 K리그 올스타와 친선 경기를 가진 것 같이,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의 계속되는 일본 중심의 해외 개최도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 인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로 해석하는 것이다. 근래 '트와이스'나 '르 세라핌' 등 한국 아이돌 그룹에 소속된 해외 국적의 멤버가 증가하는 것 같이,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이 상승하였기에 미국 팝 가수들이 정기적으로 해외 투어를 열 듯 자연스럽게 이를 매출과 수익으로 연결시키려 더욱 활발하게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라 예측하는 반응들도 있다.

분명 그 말대로 한국 대중음악은 2000년대 초반의 상황과 비교하면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를 키우는 것에 성공했다. IMF 경제 위기로 인한 타격, 음반에 집중되었던 대중들의 음악 감상 경로가 매우 급속도로 MP3를 비롯한 음원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한동안 침체를 면치 못하던 2000년대 초의 한국 음악은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양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걸그룹 르세라핌.

이렇게 한국 음악 시장이 성공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분석하더라도 한국 대중음악이 적극적으로 '수출품'으로의 정착을 시도했다는 점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해외의 음반 시장이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는 상황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해외 정착을 시도한 것은 그 대표적인 일례이다. 지금도 때때로 회자되는 SM엔터테인먼트의 2000년대 중후반 아이돌을 상징하는 '동방신기'의 힘겨웠던 초창기 일본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당시의 음악 기획사들에게 있어 해외 진출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대목이다. 아이돌 등 '팬덤'이 강하게 확립되어 있는 가수들이 '효율적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증명되기 시작하자, 본래 아이돌과 거리가 멀었던 음악 기획사들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아이돌 육성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만큼 한국 음악 기획사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절실히 원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 대중음악은 지난 20여년 동안 무수한 변신과 도전을 통해 덩치를 무지막지하게 키우는 것은 한편, 해외에서도 존재감을 늘리는 것에 성공했다. 동시에 그러한 성장세에 민족주의적인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1960-80년대 압축적인 고도 성장기를 보낸 장노년층이 63빌딩이나 한강대교의 모습에 이따금씩 희열을 드러내듯, 근래의 사람들은 BTS(방탄소년단)이나 레드벨벳 같이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는 아이돌의 활약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이를 다시 SNS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또는 '언론'이나 학술매체를 통해서 이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여년 전 한국 대중 음악의 생존의 기로를 달리고 있던 상황까지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묘한 감정을 느끼기 쉬울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달의소녀 소속이었으나 소속사와의 갈등 중인 '츄'.

한국 대중음악 성장세 뒷면, 소속사와 아티스트 불공정 사건들

이러한 성장세의 뒷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최근 아이돌 그룹 '이달의 소녀'의 멤버였던 '츄'와 전 소속사인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사이의 갈등에서도 드러나듯, 아이돌 멤버 개개인이 겪는 불합리하며 정당하지 않은 처우와 불공정 계약, 권리 침해의 문제는 매년 반복하여 발생하고 있다. CJ ENM, SBS 같은 민영 방송사는 물론 KBS, MBC 등의 공영방송까지 아이돌 등 지금 가장 화제가 되는 대중음악 아이콘에 집중하는 사이, 그와 거리가 먼 이들은 매체에 등장하는 것은커녕 새롭게 발표한 음악을 알리기도 어려운 문제도 점점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KBS가 여러 논란과 사정으로 인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종영한 이후, 여전히 해당 프로그램의 뒤를 이을 프로그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시장 크기'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국 음악이 이전과 비하면 급속도로 커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며, 아이돌 산업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오버그라운드나 언더그라운드, 인디펜던트의 영역에 놓인 장르나 뮤지션에게도 비슷한 수준의 주목을 바라는 것은 어렵다는 식의 주장이다. 동시에 CJ ENM 등의 거대 사업자에 대해서도 CJ문화재단의 '아지트 라이브' 같이, 음악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들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근래 해외 대중 음악에 보이는 어떤 모습들은 한국 대중 음악이 빠르게 키워나간 덩치와 별개로 다시 빠르게 경직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하게 만든다. 바로 소속사를 통한 육성도, 오디션 등을 통한 데뷔도 아니라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서 이름을 알린 아티스트의 등장이다. 미국 '유튜브', 일본 '니코니코 동화' 등 2000년대 중후반부터 빠르게 성장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은 자신만의 음악을 시도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Joji(조지), 일본의 YOASOBI(요아소비)나 요네즈 켄시, Ado 등은 이러한 온라인 활동을 통해 먼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음악 산업에 진입해 이전의 주류적인 음악과는 또 다른 음악적 면모를 펼치는 동시에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설사 데뷔한 곳이 온라인이 아니더라도, 유투브나 틱톡 등을 통해 퍼지는 인기는 발표된지 시간이 많이 지난 노래나 한동안 묻혀 있던 노래를 새롭게 발굴하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애플 뮤직'의 '2022년 글로벌 TOP 100' 순위 중 일부. BTS를 비롯해 인터넷으로 음악을 알리며 선순환한 다양한 뮤지션들의 노래가 등재되었다.

최근 발표된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애플 뮤직'의 '2022년 글로벌 TOP 100'은 이러한 대중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이다. 해당 지표에는 BTS의 'Butter'나 'Dynamite' 같이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를 뒤흔든 아이돌의 음악도 포함되어 있지만, 일찌감치 음원 공유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두각을 드러낸 미국 뮤지션 ad Bunny의 'Me Porto Bonito'나 일본 뮤지션 Saucy Dog의 '신데렐라 보이'(シンデレラボイ)나 Tani Yuuki(타니 유우키)의 'W / X / Y'처럼 '틱톡'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은 노래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이미 뉴스, 드라마나 영화를 향유하는 축이 온라인으로 변화하는 마당에 음악 역시도 비슷한 흐름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모습이다.

한국 음악은 분명 빠르게 몸집을 키웠지만, 다양한 향유의 가능성을 스스로 고사시키고 '효율적인 수출과 수익'에 목숨을 거는 방향으로서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독특한 발상의 음악이 등장하고, 다시 그렇게 자신을 알린 뮤지션이 인기를 얻어나가는 순환의 고리를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나마 2020년 초에 유튜브에서 일약 화제가 된 인터넷 기반 2인조 뮤지션 그룹 '달의하루'의 '염라'(Karma)가 새로운 경로를 만들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해당 그룹에서 작곡을 맡는 핵심 멤버였던 'ampstyle'(본명 예은수)가 그 해 9월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달의하루'의 활동은 무기한 중단된지 오래이다. 이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뮤지션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 가수, 팬, 공연. 사진=gettyimagesbank

BTS를 비롯한 여러 아이돌이 '온라인의 시대에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 채널을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는 분석이 등장하고, 그에 어떤 자부심을 느끼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에서는 아이돌을 제외하면 온라인 채널이 다양한 음악의 영역이 등장할 수 있는 통로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일까. 비단 음악만이 아니더라도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 곳곳이 시장을 빠르게 키우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렇게 증가한 크기만큼 종 다양성을 넓히거나 다양한 경로로 창작을 하고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는 쉽게 연결되지 않고 있다.

마치 한국의 제조업이 오랜 시간 수출에 집중하며 그에 걸맞게 시장의 전체 크기는 키웠지만, 정작 내수나 판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다양성이나 권리의 정착에는 원활하게 연결이 되지 못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어떠한 의미로든 한국 대중음악,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은 한국의 압축성장과 같은 길을 걸은 셈이다. 분명 '시장 전체의 크기'가 지니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크기 이상으로 생태계의 유기적인 흐름이나 종 다양성을 간과한다면 급격하게 늘린 크기는 다시 그대로 하나의 장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의 정부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현재의 정부에서도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한국의 문화정책은 가시적이며 양적으로 기록되는 성과 이상으로 질적인 흐름을 파악하며, 자율적 창발을 촉진하는 흐름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근래의 한국 조선업이 수주 성과와 발맞추지 못하는 대우와 권리 문제로 서서히 기울고 있듯이, 한국 대중문화 역시 불균형한 상황이 계속 된다면 이 곳에서 그러한 문제가 반복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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