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착취물 3000여건 수집한 도내 육군장교 강력처벌 촉구
수년간 청소년 100여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착취물 수집·유포한 혐의를 받는 강원지역 현역 군인의 1심 재판이 23일 열린 가운데 시민사회에서 엄중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강원도여성권익증진상담소시설협의회, 피해자 지원 법률전문가, 시민 활동가 등 40여명은 이날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성착취 범죄 피해자와 국민에게 엄정한 판결로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뒤 공판도 직접 방청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더는 이 같은 성착취 범죄를 용인할 수 없다. 재판부는 성폭력 가해자의 행위에 디지털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 조주빈(박사)과 문형욱(갓갓)보다 더 높은 형량으로 디지털성범죄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재판과정에서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판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와 권리를 보장하라”도 요구했다.
공판에 앞서 피해자 공동 변호인단도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조은영 변호사는 “피해자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엄마가 알게 되나요’였다”며 “미성년자들은 성착취 피해자인데도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으로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알게 될까 두려워하는 심리를 악용한 피고인은 3년 이상 범죄를 지속했다”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알리고 피고인을 엄벌할 수 있도록 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도 시사했다.
전성휘 춘천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장은 “이번 가해자가 범행을 저지른 시기는 공분을 샀던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범죄 주도자 박사 조주빈과 갓갓 문형욱의 재판이 진행되던 시기였다”며 “가해자의 외장하드에서 박사방의 폴더가 발견돼 실상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이 가해를 멈추지 않은 것임을 알려주며, 아직 잡히지 않은 수만 명의 가해자 중 하나인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희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는 “청소년들이 정서적 교류와 도움을 받는데 가장 안전한 수단으로 채팅앱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동 청소년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디지털 성범죄가 너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라며 “피해를 본 청소년만 아니라 모든 청소년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영 하남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피해자들은 ‘내 사진이 어딘가에 유포되고 있지 않을까’, ‘가해자가 언젠가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누군가 내 사진을 보고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등의 불안을 크게 호소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왜 카톡방을 나가지 않았느냐’, ‘왜 싫다고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며 “디지털 성착취는 그루밍 성범죄(호감을 얻어 범죄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심리적 지배해 저지르는 성범죄)수법을 활용하고 재유포가 쉬운 범죄라는 점을 고려해 가해자 범죄의 중대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인 신분으로 저지른 디지털 성범죄라는 점에서 심각성도 강조됐다.
최근화 도여성권익증진상담소시설협의회 상임대표는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의 신분으로 일으킨 범죄라는 점에서 국방부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고위 간부 중심으로 참여식 교육 등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엄정한 재판을 통한 범죄 예방을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 예방의 실효적 정책 마련과 피해자 회복 지원, 2차 피해 방지 피해자 보호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피고인 A(24)씨는 도내 현역 육군 중위로 복무하던 중 10대 청소년 73명을 대상으로 대가성 금품을 제공하며 디지털 성착취물을 요구, 유포 협박한 혐의로 지난 12월 검찰에 기소됐다.
이날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3년간 카카오톡 등 SNS의 오픈채팅방 등에서 ‘플렉스’라는 아이디를 사용해 온라인상 소정의 금품 등으로 청소년 73명을 유인했다. 이후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일부 혹은 유사성행위가 담긴 사진과 영상을 찍도록 해 총 3000여 장에 달하는 성착취물을 수집했다. 또 피해청소년에 조건만남을 권유하거나 직접 만나 성추행 및 유사성행위까지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아동·청소년 디지털성착취 범죄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추세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의 지난해 무료법률지원 사업 현황 중 디지털 피해 법적 지원율은 2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윤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2019년 이전 4~7%이었던 것보다 심각하게 증가한 수치로 더욱 심각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권리구제를 위한 대안 및 관련 인식 교육 강화도 촉구했다.
박 소장은 “특히 미성년자 법률지원 시 보호자 동의뿐만 아니라 피해자 지원기관에 의한 ‘동의’ 권리를 인정해 아동·청소년의 법적 대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대응책을 제시했다. 그 밖에도 수사 기간에 디지털 성착취물 선제적 삭제지원과 유포경로 차단, 신속 삭제 등의 대책 마련 필요성도 역설했다.
디지털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사후 삭제지원보다 선제적 유통·소비 차단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승희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는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조차 범죄를 인식하기 어렵고 자발적으로 응했다는 죄책감으로 권리구제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쉽다”며 “아동 청소년을 위한 안전한 디지털 환경 조성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미성년자는 특히 온전한 자기 결정권이나 착취행위 방어 등이 어렵다. 하지만 현재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성착취물 제작 등의 행위 처벌만 할 뿐 아동·청소년의 촬영 동의 여부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 법 개정의 필요성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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