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의 몰락은 FTX 탓? '수호대' 자처하는 암호화폐 투자자들
공격받는 바이낸스 지지자들은 "FTX 쪽 헛소문"
"코인 투자자 공동체, 코인에 감정적으로 연결돼"
"이 소식, 혹시 루나 클래식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될까요?"
지난 7일, '테라·루나 사태' 이후 사실상 '죽은 코인(암호화폐)'으로 취급되던 옛 루나, 일명 '루나 클래식(LUNC)'의 지지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테라와 루나의 발행인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소식'이란, 최근 파산한 코인 거래소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약칭 SBF) 창업자가 지난 5월 테라와 루나가 폭락하게 된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를 말한다.
아직도 남은 '루나 클래식 군단'의 꿈
사실 '루나 클래식'은 권도형 대표가 테라·루나 사태 이후 '테라 2.0'을 론칭하면서 기존의 폭락한 루나를 이름만 바꿔 놓고 사실상 방치한 코인이다. 그런데 일부 이용자들이 끝끝내 루나 클래식을 지키겠다면서 남았다. 루나 클래식은 현재 코인당 0.0001달러(약 0.1원)를 전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LUNC 군단'은 아직까지도 폭락 당시 시장에 잔뜩 뿌려진 루나 클래식을 소각(폐기)하면 코인의 가치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LUNC 버너(소각로)'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들이 수립한 목표치인 100억 개의 루나 클래식을 없애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55년 정도다.
그런 그들에게, 현재 사실상 시장조작과 횡령 등의 혐의로 범죄자 취급되는 SBF가 루나 폭락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소식은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질 법하다. 테라-루나 클래식이 '위법한 작전 세력'의 공세에 '공포, 불확실성, 의심(FUD)'이 더해져서 부당하게 폭락했으니, 루나 클래식도 잘만 하면 신뢰를 회복하고 가치도 되살릴 수 있다는 기대다.
FTX가 테라를 노렸나?
현재 SBF가 받는 주요한 혐의는 FTX와 본인이 기존에 운영하던 암호화폐 전문 투자사인 '알라메다 리서치'와 FTX의 돈주머니를 사실상 하나로 운영해 부실을 키우고 FTX의 투자금을 유용한 혐의 등이다.
여기에 더해 NYT 보도를 보면, 연방검찰과 증권거래위원회(SEC)는 FTX에서 '테라-루나 사태' 당시 테라와 루나의 대규모 매도를 개시하면서 이익을 챙겼는지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다만 이 혐의엔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SEC의 FTX에 대한 고발장에도 테라·루나 관련 의혹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에도 "SBF가 테라를 흔들었다"는 주장은 코인 세계에서 돌던 다양한 음모론 중 하나였다. 코인 데이터 분석업체 카이코는 테라 붕괴의 시발점이 된 대량 매도가 소수의 거래자에 의해 주도됐다고 분석했다. 이 거래의 주체가 알라메다(즉 사실상 FTX)라는 것이 제기된 주장이다.
NYT 기사가 나온 후 권도형 대표는 "초기에 루나·테라를 집중 매도한 주체를 찾으면 된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켈빈 로 싱가포르국립대 법과대학 교수는 "설령 알라메다가 테라에 하락 베팅을 했다고 하더라도, 테라가 무너진 것은 테라 자체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권 대표를 비판하는 논평을 했다.
NYT 보도 전에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지난달 트위터에서 암호화폐 관련 스페이스(음성 대화방)를 정기적으로 열어 진행하는 마리오 노우팔의 스페이스에 출연한 유명 코인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FTX가 알라메다 리서치를 활용해 루나 클래식에 대한 매도 거래를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은 극심한 논란이 됐다. 발언자가 이 주장의 출처를 FTX를 무너트리는 계기가 된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의 최측근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자오창펑이 FTX를 저격한 것이 코인 시장을 지키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주장하며 자오를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이런 주장 중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우팔은 이를 '자오창펑-SBF 음모론'이라고 칭하면서 해당 스페이스 및 관련 트위터 포스트를 비공개 처리했다. "발언 당사자가 온라인에서 너무 많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유였다.
투자자 사이의 암구호 "FUD"
역설적이게도, 현재 바이낸스는 가치 증명의 진실성이 의심된다는 이유 등으로 꾸준히 공격을 받으며 예치 자금이 조금씩 유출되고 있다. 그렇잖아도 FTX 붕괴 때문에 시장에 "예치금은 네 코인이 아니다(Not your keys, not your coins)" 같은 구호가 떠돌 정도로 코인 거래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터라, 유사 업종인 바이낸스 역시 비슷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오창펑은 자신만만하게 'FUD'를 외치고 있다. 자금 유출은 '스트레스 테스트(금융기관의 잠재적 취약지점을 시험해 안정성을 평가하는 것)'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바이낸스를 이용하는 그의 지지자들 역시 FUD를 외친다. 이들은 "FTX 지지자들이 바이낸스에 복수하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코인 시장에서 'FUD(공포, 불확실성, 의심)'는 있는 그대로의 뜻보다는 사실상 비판자들에 대한 비하어로 쓰인다. 자기가 투자한 자산에 대한 의혹 제기나 공격은 근거가 없고, 모든 것은 작전세력의 음모라는 신호다. 자기가 보유한 코인의 '떡상(To the Moon)'을 꿈꾸는 투자자들 입장에서 모든 '악재'는 눈엣가시고 거짓에 불과하다.
투자자가 자기가 투자한 자산의 '수호대'가 되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행동은 아니다. FUD는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공황매도 혹은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을 불러, 규모가 작은 코인이나 업체에는 진위를 다툴 여지도 없이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증빙된 정보도, 제대로 된 투자자 보호도 없는 코인 시장이라 더더욱 방어적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발행인도 투자자들의 대열을 활용한다. 위믹스를 발행한 한국 게임사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한국 주요 코인 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를 당하며 위기에 몰리자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를 겨냥해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비판의 초점을 자기에서 업비트로 돌리려는 지능적 행보"라고 평했다. 위믹스를 둘러싼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투자자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불안 심리의 급격한 확산은 일단 막았다는 얘기다.
반면 테라 사태나 FTX 파산에서 보듯, 암호화폐 업계에서 정당한 비판마저 FUD로 치부하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태도가 오히려 코인의 취약점을 예방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 테라나 FTX가 취약점에 대한 지적을 "거짓 소문"으로 일축하거나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붕괴와 파산이라는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인데스크의 최고콘텐츠책임자인 마이클 케이시는 지난 6월 '테라-루나 사태' 직후 남긴 칼럼에서 "코인 보유자 공동체는 코인에 감정적으로 연결돼 정당한 질문에도 FUD란 외침을 남용한다"고 비판하면서 "사실을 확인하고 결함을 노출하는 것이야말로 코인의 지속적인 개선과 발전, 진보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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