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윤보다 안전을, 안전운임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2022. 12. 2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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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과 죽음 사이, 화물 투쟁 연속 기고 ②

[미디어오늘 윤애림 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빗댔다.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는 국민이 아니라고 선언한 대표적 방증이다. 정부는 화물 노동자의 안전과 생계의 불안을 먹잇감 삼아 노조혐오 여론전과 공안 몰이에 나섰다. 국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시장 원리에 전적으로 맡겨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겠단다. 여기, 국가 책임은 실종됐다.

안전운임 제도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총공세는 '법과 원칙'에 입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검사 출신 대통령이 '무법천지'의 구현자가 됐다. 두 차례에 걸친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공정위원회를 동원한 신종 노동탄압 수법,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손배소 추진과 파업에 대한 '사회 재난' 규정, 노동 후진국을 감추기 위한 국제노동기준의 폄훼 등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끝나지 않는 화물연대 투쟁을 통해 모두가 안전한 사회, 노동자 파업을 존중하는 보편타당한 가치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기고한다. - 편집자 주

지난 9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이 종료되자,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안전운임제 폐기 방침을 밝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은 11월22일 정부·여당이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제안한 것인데, 화물연대가 이를 거부하고 11월24일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하여 엄청난 국가적 피해를 초래하였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말바꾸기에 불과하다. 지난 6월 화물연대의 파업 중단 후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안전운임제를 연장 등 지속 추진하고, 안전운임제의 품목확대 등과 관련해서 논의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국토교통부 6월14일자 보도참고자료).

화물연대의 십수 년 투쟁 끝에 202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안전운임제는, 실제 화물운송을 수행하는 화물차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적정 운임을 보장함으로써 과속과적장시간 운송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여, 화물차 노동자는 물론 도로 위의 모든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이다. 다단계 하도급이 구조화된 화물운송업에서 특수고용으로서 차량 운행에 따른 제반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며 운송 건당 보수를 받는 화물차 노동자들은, 부족한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또는 화주나 운송사의 강요로 과속과속장시간노동에 내몰려왔다. 고속도로 통행량의 27%에 불과한 화물차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전체의 51%를 넘는 현실은, 화물차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조건 보장이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과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 12월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중공동행동, 참여연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 등이 화물 노동자에 대한 안전운임제 확대를 촉구하며 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이미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에 합의하고도 화물연대의 파업을 이유로 이를 파기하겠다는 것은, 화물연대를 비롯한 노조운동에 대한 탄압의 여세를 몰아 대자본의 눈엣가시를 없애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현행 안전운임제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BCT(벌크 시멘트 트레일러)를 운송하는 화물차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이는 전체 영업용 화물차 41만대 중 약 2.6만대에 불과하지만, 운임을 결정하는 화주가 대자본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재벌대기업 및 그의 물류자회사, 건설 원청사가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 화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출입 컨테이너와 BCT는 화물차의 특성상 아무 화물이나 실을 수 없고, 특정 화주와 장기적 계약관계를 가지며 그로부터 다양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안전운임제에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집단도 이들 대기업 화주들이었다. 국토교통부의 용역으로 교통연구원이 지난해 수행한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연구에서도, BCT 화주의 80%가 안전운임제 폐지 의견인데 비하여 운수업체의 80%와 화물차 기사의 98%는 안전운임제 지속 의견을 밝혀 극과 극의 입장차를 보여주었다. 즉, 다단계 구조에서 운임을 결정하는 '갑'인 화주는 반대하고, '을' 영세운수업체, '병'인 화물차 노동자는 안전운임제를 통해 최저운임을 보장받길 원하는 것이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역시 1차로 시멘트, 2차로 철강, 석유화학 분야 화물운송기사에게 발동되었는데 여기서도 화주가 재벌대기업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화물차 노동자들이 과로과적에 내몰려 생명을 잃는 지경에 이르게 된 근본적 원인은, 화물운송업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있다. 화물자동차법상 화주가 운송사에게 직접 위탁하거나, 주선사를 통해 운송사에게 재위탁하는 것만 합법적이다. 그럼에도 현재 화물운송업에는 2단계 이상의 다단계 하도급이 전체의 98.6%를 차지할 정도로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해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재벌대기업들이 불법 경영권 승계, 일감 몰아주기 등 수단으로 너도나도 물류자회사를 만들면서 이 다단계 구조가 더욱 복잡해졌다.

▲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한 11월24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열린 긴급현장상황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재검토하면서 물류시장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물류산업 발전 협의체'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정부는 유사한 협의체를 꾸리면서도 다단계 하도급 구조 문제에는 어떠한 실질적 개선책도 시행하지 못했다. 화물운송업의 구조적 문제의 피해자인 화물차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유일하게 법제도화된 것이 안전운임제이고, 안전운임제의 적용을 받은 시멘트, 수출입 컨네이너 운송에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개선되었다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결과도 국회에 보고된 바 있다. 화물차 노동자가 받는 운임의 최저선이 확보되어야 중간착취의 소지가 줄어들고, 운임을 결정하는 화주 및 대형운수업체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귀족 노동자들의 불법적 투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매도했지만, 화물연대가 요구한 안전운임제의 성과는 안전운임제를 적용받게 되는 모든 화물차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안전운임제 폐기의 성과는 소수의 재벌 대기업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안전운임제 폐기로 인한 생명안전상의 피해는 화물차 노동자를 비롯한 도로 위의 모든 국민에게 떠넘겨지게 된다.

정부의 역대급 탄압으로 화물연대 파업은 중단되었지만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물연대본부는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국회 국토교통위는 현행 안전운임제를 3년 더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0% 재벌 대기업의 이윤 극대화인가 90% 국민의 안전인가.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건강안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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