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지식 수다는 어째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걸까('알쓸인잡')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2. 2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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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지식의 향연, ‘알쓸인잡’이 완성한 tvN표 교양예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니 둘이 녹화 전에 뭐 짜고 왔어요?" tvN <알쓸인잡>에서 장항준은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하면서 툭 튀어나온 '광대버섯' 유래설에 대해 김상욱 교수와 김영하 소설가가 주고받는 대화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 이야기 같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인류 최대 규모의 사기극(?)'을 모두가 대대로 믿을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내놨다며 그 중 하나로 '광대버섯' 유래설을 소개하면서였다.

빨간 색깔의 광대버섯은 그 모습이 산타클로스를 연상케 한다는 김상욱의 이야기에, 김영하는 광대버섯이 마약으로 환각제 원료로 사용하는 버섯이라고 덧붙였고 그걸 먹으면 하늘을 날고 영웅이 되는 환각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상욱은 "그래서 산타클로스가 하늘을 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고, 김영하가 제사장이 먼저 그걸 먹고 혼자 환상을 보고 미래를 점지했다고 하자, 김상욱은 그 미래가 조상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상욱의 광대버섯 유래설에 대해 김영하는 자신이 가진 가설로서 '가족 로망스'를 소개했다. 즉 산타클로스를 자신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대안적 아버지'로 여기는데서 이 '사기극(?)'이 밈처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친부모 말고도 이런 의미에서의 '대안적 가족'이 많을수록 좋다고 짚어줬다.

그저 툭툭 던져놓은 이야기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오고가며 과학과 소설 같은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고 그래서 그 접점을 보게 된 이들은 "아-"하고 어떤 기적 같은 감탄을 하게 되는 순간을 <알쓸인잡>은 보여준다. 크리스마스에 맞춰진 기획으로 '기적을 만든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져왔지만, 거기에 맞춰 김상욱은 그 유명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대치하고 있던 전선에서 벌어진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을 들려줬다.

치열한 전선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독일 진영 누군가 불렀던 캐럴이 적진에까지 퍼져나가고 그 곳에서 답가처럼 캐럴이 울리면서 결국 모두가 무기를 내려놓고 참호에서 나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 주로 '공감'이 가진 힘에 대해 자주 언급되곤 하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김상욱은 그러나 당시 각국의 지휘자들은 이 사건에 너무 놀라 적과 소통하는 자를 최고형에 처한다는 엄포를 내렸다는 점을 꼬집으며, "전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적개심을 커진다"는 말처럼 대면 소통의 중요함 역시 짚어줬다.

김영하는 남극탐험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섀클턴의 기적 같은 리더십과 생존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차례나 실패하고도 또 다시 남극 횡단을 하기 위해 28명의 대원들과 함께 떠나지만 부빙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채 약 10개월을 부유하다 결국 좌초한 배에서 섀클턴이 횡단이 아닌 생존으로 목표를 바꿔 약 2년 간을 버텨내며 결국 28명 전원이 무사 귀환하는 기적을 만든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섀클턴이 대원들과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희망을 갖게 해주고 놀게 해주는 예술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호 교수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지만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된다는 걸 들려줬고, 심채경 교수는 19세기 중반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대를 이어 세웠던 로블링 가족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통해 특히 에밀리라는 여성의 앞서간 리더십이 보여준 '미래를 앞당긴 기적'을 들려줬다.

<알쓸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인간잡학사전)>은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으로 특정 분야로 스핀오프된 프로그램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그 분야는 '인간'에 집중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알쓸신잡>이 시도했던 '인문학' 전반과 유사한 지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탐구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알쓸인잡>을 보면 이제 <알쓸> 시리즈가 하나의 tvN표 교양 예능의 브랜드로 정착했다는 느낌을 준다. 굳이 특정 지역을 여행하고 저녁에 모여 지식 수다를 풀어놓는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아도, 모여서 특정 주제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여기 출연하는 김영하, 김상욱, 이호, 심채경은 물론이고 재치 있는 리액션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장항준, RM의 합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조합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이러한 시도를 여러 스핀오프를 통해 지속해오며 그 틀을 완성시킨 양정우 PD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본래 오락 채널로 자리한 tvN이 굳이 교양을 소재로 가져온 건 최근 교양 역시 또 하나의 예능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알쓸>시리즈와 더불어 <벌거벗은 세계사>는 tvN이 완성한 교양 예능의 성취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게다. 그 중에서도 <알쓸> 시리즈가 흥미로운 건 이제 어떤 분야를 갖고 오든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내고 이 브랜드를 더해 넣기만 하면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알쓸인잡>이 보여주는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지식 수다의 향연은 그런 의미에서 tvN에는 중요한 한 영역을 개척했다고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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