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의 동거… 바로사밸리 ‘꼬뜨로띠’ 그리녹과 모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최현태 2022. 12. 2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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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쉬라즈와 우아한 비오니에 만남/프랑스 북부론 꼬뜨 로띠 유명/호주 바로사밸리 ‘꼬뜨 로띠’ 그리녹과 모파에서도 우아한 쉬라즈 생산/펜폴즈 그랜지용 포도 재배한 170년 역사 칼레스케 

칼레스케 올드바인
비강을 파고드는 우아한 퍼퓸. 신선한 과일향과 생기 넘치는 산도. 그리고 목젖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실크같은 탄닌. 호주 바로사밸리(Barossa Valley) 쉬라즈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당도가 높아 잼 같으면서 울퉁불퉁한 근육질 남자 같은 강렬한 와인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반전 매력이 놀라울 따름이네요. 강렬함에 우아함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쉬라즈와 비오니에의 환상적인 만남, 미녀를 품은 야수같은 와인을 만나러 호주 바로사밸리의 ‘꼬뜨로띠’ 그리녹의 모파로 떠납니다.
칼레스케 포도밭
◆우아한 시라의 대명사 꼬뜨 로띠

론(Rhone)은 보르도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와인 산지입니다. 북론은 비엔느(Vienne)∼발렁스(Valence), 남론은 몽텔리마(Montelimar)~님스(Nimes)로 론강을 따라 양쪽으로 와인산지들이 펼쳐집니다. 그중 가장 북쪽 산지가 세계 최고의 시라 산지로 유명한 마을 꼬뜨 로띠(Cote Rotie)입니다. 시라로 레드와인만 생산하는데 아주 우아한 시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화강암(그라니트) 베이스에 편암(쉬스트)가 얹어진 토양 덕분입니다. 여기 포도밭이 대부분 론강 주변의 매우 가파른 경사지에  만들어져 배수가 잘되고 햇살과 반사광을 잘 받아 포도가 천천히 잘 익어갑니다. 

칼레스케 와이너리
꼬뜨 로띠는 시라 100% 와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화이트 품종이 살짝 섞여있답니다. 바로 청초하면서 우아한 하얀 꽃을 닮은 비오니에 품종입니다. 왜 화이트 품종이 들어갈까요. 바로 남쪽에 붙어있는 꽁드리유(Condrieu) 마을때문입니다. 이곳에선 화이트 와인만 생산하며 주로 비오니에(Viognier)를 재배한답니다. 이 비오니에가 옆 마을 꼬뜨 로띠로 날아와 시라 포도밭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섞여 자랍니다. 그런데 비오니에만 따로 수확해 화이트 와인을 만들자니 포도 양이 너무 적네요. 그래서 생산자들은 시라와 비오니에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한꺼번에 수확해 레드 와인을 만듭니다. 이를 ‘코 퍼먼테이션(co-fermentation)’이라고 합니다. 포도밭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자라기에 ‘필드 블렌딩(Field Blending)’으로도 부릅니다. 꼬뜨 로티는 20%까지 화이트 품종 블렌딩이 허용되지만 생산자들은 보통 비오니에를 5∼10% 정도 넣습니다.
칼레스케 포도밭
론을 상징하는 시라 품종은 프랑스 부르고뉴 인근 쥐라와 사부아 지역에서 자라는 고대 화이트 품종인 몬데스 블랑(Mondeuse Blanche)과 고대 레드 품종 크로스 두레자(Cross Dureza)를 교배해서 탄생했습니다. 숙성 잠재력이 매우 뛰어난 품종으로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산도는 낮고 탄닌은 부드러우며 오크와 잘 어우러져 묵직한 풀바디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향과 매콤한 허브향이 특징입니다. 숙성되면 블랙 페퍼와 가죽향, 애니멀 노트가 느껴집니다. 

비오니에는 잘 익은 복숭아, 살구, 배, 달콤한 열대 과일향, 베르가못 같은 허브와 생강향이 주를 이루고 특히 강한 머스크(사향)이 특징입니다. 입에서는 리치하고 라운드하면서 미끌미끌한 유질감과 크리미함이 도드라집니다. 꽁드리유는 비오니에 100%로 빚는데 마셔본 이들은 향수라고 얘기할 정도로 아로마가 뛰어난 풀바디 와인입니다. 강렬한 시라에 우아한 비오니에를 섞으면 아로마가 훨씬 풍부해지고 탄닌도 부드러워집니다. 마치가 야수가 미녀를 품은 것 처럼 말이죠. 꼬뜨 로띠가 가장 우아한 시라를 생산하는 마을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입니다. 

바로사밸리 그리녹과 모파 위치와 해발고도
 
◆바로사밸리의 ‘꼬뜨 로띠’ 그리녹과 모파

프랑스 북부론 시라(Syrah)와 호주 바로사밸리 쉬라즈(Shiraz). 같은 품종이지만 마셔보면 전혀 다른 품종으로 여겨집니다. 북부론 시라는 우아함이 돋보이고 바로사밸리 쉬라즈는 매우 파워풀하고 강렬합니다. 멋진 수트를 차려입은 이정재와 단단한 근육질의 짐승남 제이슨 모모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는 기후  때문입니다. 더운 지역에서 자란 쉬라즈는 시라의 특성에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이 더해지고 시라의 매콤한 향신료는 스위트한 향신료로 바뀝니다. 호주 쉬라즈하면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짐승남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853년에 세워진 칼레스케 로고
 
하지만 바로사밸리의 쉬라즈가 다 이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꼬뜨 로띠와 거의 흡사한 우아한 쉬라즈도 만날 수 있답니다. 바로 바로사밸리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그리녹(Greenock)과 그리녹에서도 더 작은 세부 산지 모파(Moppa)에서 생산된 쉬라즈로 빚는 와인이 꼬뜨 로띠와 흡사한 우아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이곳은 해발고도 약 300m로 바로사밸리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일조량이 좋고 일교차가 커 포도는 천천히 완숙되면서 신선한 산도를 움켜쥡니다. 덕분에 집중도 높고 우아한 쉬라즈가 생산된답니다. 바로사밸리는 포도나무 뿌리를 섞게 만드는 필록세라를 피한 덕분에 올드바인이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는데 그리녹과 모파에는 수령 150년에 가까운 포도나무가 즐비합니다. 
한국을 찾은 딜런 칼레스케 부부
◆그랜지 포도 100년 책임 생산 칼레스케

호주 국가대표 와이너리 펜폴즈의 시그니처 와인 그랜지(Grange)가 바로 그리녹과 모파의 포도로 만듭니다. 그랜지를 만드는 포도를 100년 책임 생산해 펜폴즈에 공급한 와이너리가 8대째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리녹과 모파의 터줏대감 칼레스케(Kalleske)랍니다. 결혼한 지 두달만에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은 8세대 딜런 칼레스케(Dylan Kalleske)와 함께 강렬한 쉬라즈에 우아한 비오니에 한방울 떨어뜨린 매력적인 쉬라즈의 세계로 떠납니다. 그는 현재 와인메인킹과 해외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칼레스케 와인은 동원와인플러스에서 수입합니다.

1950년대 칼레스케 포도 수확 모습
2019 올해의 오가닉 와인 인증 트로피
칼레스케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나믹 인증
 
칼레스케의 역사는 1853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로이센 공국의 상인 출신인 요한 게오르그 칼레스케(Johann Georg Kalleske)가  호주로 이주해 바로사밸리 그리녹(Greenock) 지역의 모파(Moppa) 정착해 포도 재배를 시작합니다. 요한 게오르그가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한 덕분에 딜런의 조부인 존 칼레스케가 와이너리를 운영하던 1988년 모든 포도밭은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나믹 인증을 받았답니다.
펜폴즈 그랜지
와인메이커 트로이 칼레스케
 
바로사밸리에서 최초입니다. 특히 펜폴즈 그랜지에 사용한 포도를 100년 동안 책임지고 생산합니다. 이처럼 와인 생산전부터 완벽한 준비를 갖춘 칼레스케는 펜폴즈와 계약이 끝난 2002년부터 직접 와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와이너리는 딜런의 부친 토니 칼레스케(Tony Kalleske)가 이끌고 있으며 와인메이킹은 그의 형제 트로이 칼레스케(Troy Kalleske)가총괄합니다. 애들레이드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트로이는 펜폴즈, 베리타스, 미란다, 린데만, 캔달잭슨 등 유명 와이너리에서 와인메이커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2008년 바로사 올해의 와인메이커에 올라 칼레스케를 호주 최고의 와인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로버트 파커도 “칼레스케는 바로사 밸리 쉬라즈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극찬을 합니다.
토니 칼레스케(오른쪽)와 형제들
칼레스케 모파
◆강렬한 쉬라즈에 우아한 비오니에 한방울 

칼레스케 모파는 쉬라즈 90%를 베이스로 쁘띠베르도 7%, 비오니에 3%를 섞었습니다. 코에 갖다 대자 은은한 향수를 뿌린 여인이 스치고 지나간 듯, 우아한 향이 비강을 부드럽게 어루만집니다. 자두, 블랙베리 등 붉고 검은 베리류의 과일향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고 작은 제비꽃에 이어 크고 하얀 모란과 작약 느낌의 우아함이 따라 옵니다. 프렌치 새 오크를 25%만 사용해 오크향을 잘 다스렸고  아메리칸 오크, 헝가리안 오크 등을 다양하게 사용해 복합미를 얻었습니다. “모파는 바로사밸리에서 해발고도가 높은 산지라 쉬라즈의 산도가 뛰어나죠. 덕분에 우아한 쉬라즈가 생산되는데 여기에 비오니에를 조금 넣어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극대화 시켰답니다.” 모파는 이처럼 쁘띠베르도와 비오니에를 섞었지만 레이블에는 ‘Shiraz’로 표기됩니다. 규정에 따라 특정 품종이 10% 이상일때만 품종 이름을 표기하기 때문입니다. 비오니에와 쁘띠베르도 역시 모파에서 생산된 포도인데 일부는 꼬띠 로띠처럼 쉬라즈에 섞여 자랍니다.   

딜런 칼레스케
칼레스케 그리녹
칼레스케 그리녹은 쉬라즈 100%입니다. 빈야드 2곳의 포도를 사용하는데 한곳은 포도나무가 1999년에 심어졌습니다. 쉬라즈로만 빚었지만 역시 일반적인 바로사밸리 쉬라즈와는 달리 멋진 슈트를 차려입은 세련된 도시남자 스타일입니다. 모파보다 좀 더 파워풀하지만 당도와 오크향은 아주 절제됐고 산도가 잘 뒷받침돼 뛰어난 밸런스를 보입니다. 바로사밸리의 특징인 블루베리향에 블랙체리, 블랙베리향이 더해지고 다양한 허브향과 꽃향이 따라옵니다. 피니시는 은은한 코코아향으로 이어져 기분 좋은 복합미를 선사합니다. “그리녹과 모파 포도 모두 그랜지에 쓰였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듭니다. 다른 와이너리들의 쉬라즈는 아주 묵직하고 볼드한데 그리녹과 모파는 이런 전통적인 바로사밸리 쉬라즈에 우아함을 한 스픈 넣었답니다. 와인메이커의 솜씨죠.”  
칼리스케 에두아르드 올드바인 쉬라즈
딜런 칼레스케
칼리스케 에두아르드 올드바인 쉬라즈(Eduard Old Vine Shiraz)와 요한 게오르그는 올드바인 싱글빈야드 쉬라즈는(Johann Georg Old Vine Single Vinyard Shiraz)  칼레스케의 아이콘 와인입니다. 에두아르드는 모파의 쉬라즈 100% 와인으로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향이 지배적입니다. 체리코크와 과일 케이크의 아로마가 피어오르고 깊고 그윽한 머스크, 초콜릿, 건포도의 향이 길게 이어집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탄닌 덕분에 목넘김도 아주 부드럽네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닷가에 서 있는 듯, 입에서 느껴지는 미네랄입니다. 이유가 있네요. “에두아르드는 모파 3곳의 포도를 블렌딩하는데 1905년에 식재돼 100년이 넘은 올드바인입니다. 뿌리가 땅속 깊이 6m까지 파고 들어가 엄청난 영양분과 미네랄 끌어 올린답니다. 올드바인이라 생산량은 다른 포도나무의 절반 정도여서 포도의 집중력도 매우 뛰어납니다. 쉬라즈는 묵직하고 무겁고 힘이 센 품종이라 프렌치 오크와 미국 오크를 모두 사용해 둥글둥글하게 만들었습니다.”  
요한 게오르그 올드바인 싱글빈야드 쉬라즈
칼레스케 와인들
 
요한 게오르그 올드바인 싱글빈야드 쉬라즈는 칼레스케 창업자에게 헌정하는 와인입니다. 그리녹의 포도로 빚는데 1875년 심어진 포도로 수령이 무려 15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만큼 포도 열매는 아주 적게 열리고 집중도는 더욱 극대화됩니다. “바로사밸리에는 이곳보다 더 오랜 수령의 포도나무가 있지만 그리녹이 훨씬 선선한 기후를 보여 산도가 우아하고 집중력이 뛰어난 포도를 얻을 수 있어요. 다른 쉬라즈와 비교할때 엘레강스한 느낌은 바로 좋은 산도에 온답니다.”

마치 여러가지 맛과 향을 촘촘하게 겹겹으로 쌓아 올린 듯, 복합미를 보여줍니다. 다크체리의 검은 과일향에서 시작해 말린 무화과, 감초의 허브향이 어우러지고 숙성된 와인에서 느껴지는 3차향인 애니멀 노트와 가죽향, 젖은 숲속향 등이 다가옵니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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