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민주노총 예산에 햇빛 비춰야 [쓴소리곧은소리]
일본·독일·미국 ‘노조 회계 투명화’ 입법례 한국보다 훨씬 엄격
(시사저널=이승길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자문그룹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노동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종전엔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이 큰 줄기였는데, 솥뚜껑을 열어보니 괄목할 대목도 많았다. 파견제도 개선,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의 부당노동행위제도 등이 눈에 띈다. 진영논리 프레임처럼 민감한 노동문제까지 꺼내든 것이다. 개혁이 현실화하면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나마 노사 간 균형을 잡게 될 것이다.
시대는 변하는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 모두발언을 통해 노동개혁과 연계해, '노조의 재정 투명성 강화 방안'을 재차 밝혔다. 앞서 개혁과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개혁은 인기가 없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의지를 밝혔다. 며칠 전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국무총리도 나서서 노조 재정운용의 투명한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이제는 '깜깜이·주먹구구 회계' 상태였던 노조의 재정운용을 국민이 제대로 알게 하고, 이를 정부가 과감하게 적극 요구해야 한다.
현행 노조 회계제도, 고양이한테 생선가게 맡기는 격
그런데 왜 정부는 노동개혁의 선두로 노조의 회계장부를 보려는 것인가. 현 상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 현행 노조 회계제도의 운용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다. 노조 예산 수입(정부 지원금 포함)이 비공개 정보로 다뤄지니 노조의 지출 규모도 정확한 재정운용 정보가 전무하다. 실제로 회계감사가 투명했는지 조합원의 불신이 팽배했다. 이에 정부는 민주노총 등 주요 노조의 재정운용을 좀 더 투명하게 관리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개혁을 통해 노조 운영의 민주성을 강화해야 한다.
사실 2010년 7월부터 노조 전임자의 급여가 전면 금지되면서 노조의 재정자립 문제도 함께 논의되었다. 이를 논의하려면 전체 재정에서 조합비 비중, 수입·지출 내역 등 기초 자료를 공개해야 하나, 일방적으로 사용자의 비용 부담만을 요구하는 처지였다. 새로운 상황에 걸맞은 대안 체계를 탐구해야 한다. 완벽한 모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간간이 일부 산별노조와 대규모 기업별 노조에서는 노조 간부가 노조 재정을 사적으로 유용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또한 조합원의 해고·구속 등에 따른 변호사 비용과 소송 비용까지 지원하고, 해고자에 대한 희생자 구제기금(신분보장기금) 운용은 노동운동의 과격화와 직업 운동가 양산화를 초래한다. 정부가 아닌 민주노총이 이래라저래라 영향력을 미치는 게 더 문제다.
이러한 노조의 재정 비리는 노조도 경영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고, 도덕성은 노동운동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의 핵심 문제다. 특히, 최근 글로벌 경쟁 심화로 기업의 경영 환경도 급변해 협력적인 노사관계는 기업 성장을 위한 요소다. 이에 노조의 재정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조법을 개정할 타이밍이다. 정책의 본질은 바로 정책의 실행에 있고, 이것이 바로 논쟁의 결말이다.
외국에서는 노조 회계감시에 대해 한국보다 훨씬 투명하고 엄격하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대표되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가하는 주요 선진국의 노조 재정운용 사례가 있다.
일본을 보면 '노동조합법'에서 재원과 용도, 주요 기부자 성명과 재정 상황 등 회계보고는 직업적 자격이 있는 회계감사원이 확인해 주는 회계감사 증명서를 첨부해, 매년 1회 조합원에게 공표해야 한다. 미국도 '노사 정보 및 공개법'에서 노조 임원의 자격과 재산 공개 및 노조 재무상태 및 운영과 관련한 연차 재무보고서를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노조규약'으로 재정운용에 관한 독립적인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활동과 권한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조합비 일괄공제(Check off) 방식을 통한 조합비 징수는 법률로 금지되며, 자율적인 징수 시스템을 가동하고, '노조규약'과 회계관리수칙에 따른 노조 내부 관리를 통해 노조 재정을 감독하고 있다.
노동개혁을 논의할 때 '노조의 재정 투명성 강화'는 성역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 많은 노조 재정 관련 비리 사건들이 주로 대규모 노조에서 터졌다. 당연히 노동계 내부 자성의 목소리는 있어왔다. 그때마다 정부에 노조의 재정이 투명하게 운용되는지, 관련 노조법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감독과 지도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당시 정부는 노조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직무유기로 방치해 버렸다.
현행 노조법에선 노조는 자체적으로 회계감사를 6개월에 1회 이상 실시하고, 그 결과를 내부 조합원에게 공개한다(제25조). 노조는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공표하며 조합원이 요구하면 열람의무를 진다(제26조). 다만 노조의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은 행정관청이 요구해야만 보고 의무를 진다(제27조, 위반 시 과태료 500만원). 구체적인 요건이 없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를 활용해 좀 더 적극적인 감독과 지도가 가능하나 사실상 사문화해 버렸다.
이 대답 역시 아주 간단하다. 노동개혁의 변화는 가능하면 모든 자료를 신중하게 검토한 후 비로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큰 변화에 앞서 먼저 작은 사안부터 시험 삼아 시도해야 한다. 형식적인 구두보고 수준이나 회계감사위원도 노조 내부 절차를 거쳐 선임한다. 노동개혁의 과제로 노조 내부적으로 재정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행정관청의 요구가 없더라도 의무적으로 재정 상황의 보고 의무 등 법제도를 개선할 수도 있다.
'노조 회계 외부 감사' 법제화가 노동개혁 신호탄 돼야
어떻게 노동개혁안을 전광석화처럼 밀고 나가야 할까? 비전과 전략이 있는 노동개혁은 해명되는 순간 곧바로 인정되는 자명한 진리다. 실제 노동개혁으로 돌아가 원칙과 방법의 실현을 요청해야 한다. 정부가 민주노총 회계, '재정운용 투명 관리'를 검증하려는 것이다. 노조의 재정운용을 높이는 방안으로 완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여소야대 상황인 국회에 일명 '노조 깜깜이(부실) 회계 방지법안'이 발의되었다. 전방위적 여론전을 통해 회계감사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노조 규약을 보완하고, 회계감사원의 자격 요건이나 독립성, '외부 공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모든 노조의 수입·지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재정 자립 및 교섭력이 센 일정 규모 이상(300인 이상 대기업, 공기업)의 노조는 '외부 감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노동개혁책을 찾으려면 민생문제의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노동개혁이라는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선택했다. 대국민 합의를 바탕으로 기존 질서에 변화를 주려는 결단을 했다.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노조의 회계 투명성 확보가 노동개혁의 첫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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