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부부 넘어 ‘한 아이 두 엄마’ 인정나선 독일

노지원 2022. 12. 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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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EU) 있는 유럽]차별금지법·동성혼 합법화 이어
지난달 ‘퀴어레벤’ 행동계획 통해
성전환법→자기결정법 대체하고
레즈비언 커플 모두 ‘엄마’ 허용

[한겨레S] 노지원의 이유 있는 유럽 / 새 연재

‘소수자 지키기’ 국가행동계획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으로 물든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베를린/AP 연합뉴스

두 여성이 합법적으로 결혼했다. 한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 출산한 여성은 자동으로 법적 ‘엄마’의 지위를 얻는다. 그렇다면 배우자인 다른 여성은 아이에게 ‘무엇’이 될까. 앞으로 독일에서는 결혼을 한 두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아이를 낳은 경우, 두 사람 모두 자동으로 법적 ‘엄마’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각) 독일 연방 정부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퀴어 레벤(Queer Leben) 국가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엘지비티아이큐’(LGBTIQ,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인터섹스·퀴어)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금지하고, 성과 젠더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연방 정부 차원의 대책이다. 지난해 출범한 신호등 연정(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당)은 1월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LGBTIQ+ 위원회’를 만들고 약 1년 만에 이번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은 이미 2006년 일반평등대우법(AGG)이라는 이름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2017년엔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이성애자’에 대한 괴롭힘과 모욕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한 경우 일상과 온라인에서 물리적인 공격을 받기도 한다. 스벤 레만 독일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정무차관(녹색당)이 밝힌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공격은 지금도 매일 3∼4건씩 발생한다.

성전환법 아니고 ‘자기결정법’

‘퀴어 레벤’ 행동계획에는 크게 6개 분야에서 정부가 취할 조처와 권고가 담겼다. 첫째, 성소수자에 대한 ‘법적 인정’이다. 기존 성전환법을 자기결정법으로 대체하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성전환’이라는 것은 기존에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을 본인 의지에 따라 바꾸는 행위이고, 성전환법은 이를 허용하는 제도다. 독일 정부가 추진하는 자기결정법은 아예 처음부터 개인이 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좀 더 진일보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법 초안이 거의 완성된 상태이고 내년 시행될 예정이다.

가족법도 개혁한다. 현재는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 두 사람이 법적으로 결혼을 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실제 출산한 여성만 법적으로 엄마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출산을 하지 않은 배우자는 아이를 입양하는 방식으로 법적 엄마 지위를 얻어야 했다. 남성이 자동으로 ‘법적 아빠’의 지위를 얻는 것과 차별적인 대목이다. 무지개(성소수자) 가족들도 결국 ‘핏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법적 권리를 인정받아야 했던 현실을 바로잡는 셈이다.

연방 정부는 한국으로 치면 헌법에 해당하는 독일 기본법도 고칠 계획이다. 기본법 3조 3항에는 “누구든지 자신의 성별, 가문, 인종, 언어, 고향과 출신, 신앙, 종교적 또는 정치적 견해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우대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부는 여기에 ‘성 정체성’을 포함시킬 방침이다. 성소수자 난민의 망명 절차도 다시 들여다볼 계획이다.

연방 정부는 성소수자의 건강 상태는 물론, 이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차별, 생활 실태를 파악해 ‘가이드라인’을 만들 작정이다. 예컨대 △트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이들) △인터섹스(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규범에서 벗어난 성별 특징을 지닌 이들) △논바이너리(이분법적인 남녀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 등에 속하는 이들이 마주하는 서로 다른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가이드라인과 교육이 필수적이다.

일단 연방 정부는 사회 어느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과 배제, 편견이 만연해 있는지 지식 기반을 넓히기 위해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이를 기초로 향후 연방 정부가 차별을 막기 위해 개입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분야에서 조처를 한다. 직장에서 성소수자인 직원이나 입사 지원자가 있을 수 있으니 고용인이나 교육 담당자가 훈련과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연방 정부도 자체적으로도 성소수자, 젠더 다양성 등 주제를 내부 직업 훈련·교육 때 포함시킬 계획이다.

폭력에서 그들을 구하라!

독일 연방 정부에 따르면, 2021년 전국에서 발생한 성소수자에 대한 범죄는 1051건이다. 성소수자가 사회적 낙인 등을 우려해 신고하지 않은 사건까지 고려하면 실제 범죄 건수는 더 많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연방 정부는 형사법 범죄 목록에 “한쪽 성에 국한”되거나 “성적 지향에 반대”하는 범죄 동기들을 비인도적인 것으로 구체적으로 밝혀 적자고 제안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범죄의 신고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특히 독일의 소셜네트워크시행법(이른바 ‘가짜뉴스 퇴치법’)이 있지만, 광활한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 혐오 범죄를 막기에 현존하는 제도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또 부모가 자녀의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발생하는 가정 폭력이나 배우자 폭력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젊은 성소수자들이 스포츠팀이나 교회 등 사회 집단에서 겪는 성폭력이 ‘평균 이상’인 것으로 보고되는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담 및 신고 체계를 강화하고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을 검토 중이다.

또 독일에는 성소수자들을 ‘전환 치료’(개인의 성적 지향을 동성애나 양성애에서 이성애로 전환한다고 주장하는 치료법)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 또한 불필요하다는 판단에 기반한 법이다. 독일은 18살 이하에 대해서는 전환 치료를 아예 금지하고, 18살 이상의 경우라도 당사자의 동의, 의지 없이는 치료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연방 정부는 전환치료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현재 독일은 이성애자 부부가 인공수정을 시도할 때 난자와 정자가 각 배우자의 것이어야 비용 지원을 해준다. 동성 결혼 커플이나 결혼하지 않고 법적 파트너로 등록한 커플은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부는 이러한 규정이 배제적이라고 판단했다. 신호등 연정은 인공 수정이 혼인 여부, 젠더,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가능해야 한다고 보고 대책을 검토할 계획이다.

연정은 남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 그리고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의 헌혈 금지를 폐지하기로 했고, 건강보험이 성전환 수술에 드는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밖에 연방 정부는 성 다양성을 위한 교육과 상담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적인 시민사회 상담소 네트워크를 확장할 계획이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독일 베를린 특파원으로 현지에서 발로 뛰며 취재하고 있다.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뼘 더 깊이 전하고자 한다. 4주 간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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