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정치는 ‘멜팅팟’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장박원 기자(jangbak@mk.co.kr) 2022. 12. 24. 1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밤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123]팬덤 정치는 ‘멜팅팟’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이 ‘팬덤 정치’의 수렁에 빠졌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일부 당원의 맹목적 지지가 도를 넘었다는 것입니다. 민주당 안에서도 팬덤 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팬덤 정치’라는 말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민주당이 극성 지지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보이며 대중의 입에 자주 오르게 됐습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민심과 동떨어진 입법을 강행하는 것도 팬덤 정치 탓으로 볼 있습니다. 팬덤 정치는 정당을 사당화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는데 장애물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당을 포함한 조직의 힘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대중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선거에서 이기려면 팬덤 정치가 아닌 다양한 주장을 녹여 순도를 높이는‘멜팅팟’ 정치를 해야 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기여한 이사의 간축객서(諫逐客書)는 멜팅팟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한 명분(名文)입니다. 이 글이 나온 배경은 여불위에 대한 진시황의 배신감과 분노에서 비롯됐습니다. 진시황이 어른이 돼 친정(親政)에 나서기 전 여불위는 진나라를 호령했던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일개 상인에서 진나라 최고 관직에 오른 그는 권력과 돈을 모두 가진 행운아였습니다. 여불위는 엄청난 재물과 영향력을 인재 양성에 쏟아부었습니다. 전국에서 그의 문하로 모여든 빈객이 3000명이 넘었습니다. 이들 중에 한비자와 더불어 당대 최고 법률가였던 이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순자의 제자였지만 유가가 아닌 법가에 심취했습니다. 순자가 말한 ‘예(禮)’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어 법치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법가의 경전인 ‘한비자’를 남긴 한비자는 이사의 친구이자 동문이었고 양립할 수 없는 경쟁자였습니다. 이사는 명석하면서도 강력한 추진력을 지닌 개혁가이기도 했습니다. 여불위는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진시황에게 추천해 객경에 임명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노애의 반란 이후 여불위가 몰락하며 이사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진시황은 여불위가 지원했던 타국 출신 빈객들을 추방하려고 했습니다. 축객령을 선포한 것입니다. 초나라가 고향인 이사도 진나라 수도 함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는 법치가 가장 잘 지켜지고 있고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국가라고 확신했습니다. 더욱이 젊은 황제인 진시황은 야망이 크고 능력도 출중했습니다. 더 많은 인재를 발탁해 통일 과업에 참여시켜도 모자랄 판에 여불위가 육성한 빈객을 내치는 것은 치명적 실책이었습니다. 이사는 상소문을 써서 역졸을 통해 은밀하게 진시황에게 전달했습니다. 진시황을 감동시킨 간축객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사는 먼저 진나라가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객관적인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진목공은 백리해와 비표, 공손지를, 진효공은 상앙을, 진혜왕은 장의를, 진소양왕은 범수를 각각 중용해 국력을 키웠는데 발탁된 인재들의 공통점은 외국에서 들어온 객경이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멜팅팟’ 인재 활용의 장점을 이런 비유로 설명합니다. “지금 폐하는 곤륜산의 옥과 화씨의 옥새로 치장하시고 섬리말을 타시며 취봉의 깃발을 세우고 악어의 가죽으로 만든 북까지 지녔습니다. 이런 보물들은 모두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이를 좋아하시니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와야 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야광구슬로 조정을 꾸밀 수 없고 코뿔소의 뿔이나 상아로 만든 그릇을 쓸 수 없습니다. 정나라와 위나라의 미녀들로 후궁을 채울 수 없고 강남의 금과 주석도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면서 이들 보물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은 인재인데 진나라 출신만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문하며 진시황의 잘못된 판단을 일깨웁니다.

간축객서의 유려한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맵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도 설득되지 않는다면 문해력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태산은 작은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황하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깊은 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왕은 여러 무리를 버리지 않아 그의 덕행을 밝힐 수 있습니다. 천하의 선비들을 물러나게 하면 이는 외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행동입니다.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건 중에도 보배라 할 만한 것이 많고 진나라 출신이 아닌 인재들도 충성하려는 이가 많습니다. 지금 객경을 축출하는 것은 적국을 돕는 것입니다. 나라를 구하고 위태로움을 없애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은 진시황은 축객령을 즉시 철회하고 함양을 떠나려고 했던 이사를 급히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이사는 범수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에 따라 진나라와 가까운 한나라부터 공격할 것을 제안합니다. 울요 등 숨은 인재들을 천거하고 법치에 입각해 각종 제도를 개혁합니다. 이와 함께 다른 나라에 첩자를 보내 고위 관리들을 매수하는 계략을 꾸밉니다. 이사를 비롯해 다양한 인재가 참여한 진나라의 멜팅팟 정치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이사의 간축객서는 이런 역사가 쓰여지는 시발점이 된 셈입니다. 민주당도 하루빨리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 건전한 토론과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