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축구도, 인생도…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믿음’
부상 후 오랜만에 출전한 경기서
내게 오지 않던 패스, 왜였을까
서로 향한 신뢰가 ‘팀’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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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살아있는 전설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을 거머쥐며 그의 커리어에 남은 한 조각을 완성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은 정말이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쫄깃한 경기였다. 아르헨티나가 전반에 두 골을 몰아넣으며 확실히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후반 막바지에 프랑스가 두 골을 추격해서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까지 이어진 경기에서 한 골씩 주고받으면서 결국 승부차기에서 결판을 내게 됐다. 이 레전드 경기를 라이브로 볼 수 있다니! 대한민국 16강 진출 ‘썰’과 함께 할머니가 되어서도 늘어놓을 수 있는 월드컵 이야깃거리를 갖게 되어 영광이다.
월드컵 기간만큼은 평소에 축구와 거리가 먼 친구들도 축구 이야기를 한다. 경기 때마다 여러 단톡방이 시끌시끌하다. 그렇게 축구를 보며 떠들다 보면 꼭 한 번씩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분위기 넘어왔다’, ‘흐름 탔다’와 같은 말들이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은 내내 아르헨티나가 승리의 분위기를 꽉 쥐고 있었다. 두 골을 넣고 이기고 있는데도 더 간절해 보이는 건 아르헨티나 선수들이었다.
어라, 공이 내 쪽으로 오지 않네
후반도 잘 지키던 아르헨티나의 분위기가 후반 막바지 킬리안 음바페가 페널티킥에 성공하고, 또 1분 만에 동점 골을 몰아넣는 순간 단번에 프랑스로 확 넘어갔다. 프랑스 선수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전후반 내내 경기를 쥐고 흔들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경기 막바지에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니 주춤거리는 듯 보였다.
현장도 아니고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지켜보는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무언가. 축구를 괜히 멘탈 싸움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분명 운동장 위 팀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 기세가 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실내 구장에서 공을 차볼 기회가 생겼다. 풋살은 원래 실내 스포츠다. 그런데 에프케이(FK) 리그(대한민국 풋살 리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호회 클럽 회원들은 (정식 풋살 구장도 거의 없을뿐더러) 체육관을 대관하기 어려우므로 주로 야외 인조잔디 풋살장에서 훈련과 경기를 한다. 우리 팀도 실내 구장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곳 또한 정식 풋살 피치는 아니었지만 실내 구장에서의 경험이 궁금했던 나는 아직 삐걱거리는 무릎을 끌고 일단 달려갔다.
경기장은 다행히 조금은 익숙한, 흔한 학교 체육관을 닮은 마룻바닥이었다. 그런데 몸을 풀기 시작하자 ‘어라?’ 싶었다. 인조잔디 구장과는 다르게 마찰이 적으니 공은 더 빠르게 굴러갔고, 쿠션 역할을 해주던 잔디가 없으니 달릴 때 발에 전해지는 충격의 크기와 방식도 전혀 달랐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신발을 처음 신어본 강아지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기분? 게다가 부상 때문에 거의 두 달 만에 경기를 뛰려니 숨이 트이지 않아 몇 분 만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그렇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속도감 속에서 헉헉 대면서도 실은 ‘이 맛에 풋살하지!’ 하며 짜릿해 하는 나였고, 교체 자원으로 경기에 투입될 때마다(풋살은 정해진 인원 내에서 무제한으로 교체할 수 있어서 경기 중에 수시로 교체가 이루어진다) 얼굴이 하얗게 뜨도록 뛰어다녔다.
문제는 후반전에 잠시 스쳐 간 한순간이었다. 이상하게 공이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귀신같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팀 동료가 지금 날 믿지 못하는구나!’ 내가 패스를 받을만한 공간에 있는 게 아니거나, 더 좋은 선택지가 있다면 나에게 패스를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은 좀 달랐다. 우리가 공을 소유하고 여유 있게 돌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동료가 멈칫하며 내 쪽으로 공을 보내기를 망설이는 게 보였다. ‘뭐지?’ 마치 피치 위에서 ‘없는 선택지’가 된 기분이었다.
이 상황은 콘트롤도 패스도 제대로 못 하던 왕초보 시절 가끔 경험해 본 것이었다. 아무리 입문자를 배려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경기하다 보면 결정적 순간에 초보자에게 패스하는 것을 망설일 때가 있다. 기껏 좋은 기회를 만들었는데 지금 이 공을 보내봤자 뺏길 것 같으니까 선뜻 패스가 안 나가는 거다. 짧은 순간이지만 상대방도 그 마음을 다 느낄 수 있다. 구력이 좀 됐다고 패스를 못 받는 상황부터 패스 주길 망설이는 상황까지 경험하다 보니 이제 나도 안다. 지금 이건 불신의 제스처란 걸.
오랜만의 복귀전이었고, 실제로 체력도 기본기도 많이 떨어져 있던지라 그날은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순간이 반복되면 공 차는 맛이 뚝 떨어질 것 같았다. 팀원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 동료라니? 내가 그 정도였던가?
대한민국 대 포르투갈 경기를 앞둔 어느 날, 신나게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던진 월드컵 관전 총평에 무릎을 ‘탁’ 쳤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골 결정력이 약하다고들 하잖아? 그런데 누구나 살면서 골대 앞에서 골 결정력이 약해질 때가 있어. 특히 자신을 의심하고, 주변에서도 믿어주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슈팅보다 패스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경기 보면서 ‘아 저기서 왜 공을 뒤로 돌려?!’ 하다가도 남 일 같지가 않더라고.”
나와 동료를 믿는 마음
축구뿐만 아니라 인생의 많은 결정적 순간에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믿음’이다. 자신을 믿고 마무리 슈팅까지 해내고야 마는 것. 설령 실수가 있더라도 비난이 아닌 그 결단에 박수 쳐 줄 동료가 있다고 믿는 것. 팀 동료를 믿고 패스하고, 내 빈자리를 채워줄 동료가 있다는 믿음으로 기회가 왔을 때 자신 있게 튀어 나가 골을 만들어 내는 것. 운동장 위 분위기와 기세를 만드는 건 결국 자신을 향한, 서로를 향한 신뢰인 것이다.
이번 월드컵이 남긴 유행어 중 하나인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만들어 낸 ‘꺾이지 않는 마음’ 속엔 선수와 코치진 저마다의 다양한 마음이 있었을 테다. 부상을 두려워 않고 뛰는 마음, 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포기하지 않는 마음, 결국 해내고야 마는 마음 등. 그중에서도 내 가슴 속에서 꺾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나와 동료를 믿는 마음'이다. 의심을 하기 보다 나를 믿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성장의 순간을 만들어가고, 동료를 믿는 마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곳을 향해 함께 달려보는 쪽을 택하려 한다. 중.꺾.믿!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인스타그램 @futsallog에 풋살 성장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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