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년에서 근엄한 중년까지…천의 얼굴 예수 그리스도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2. 12.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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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史)에 색(色)을 더하는 콘텐츠입니다. 가끔은 역사 속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명랑히 넘나듭니다. 매주 토요일 찾아뵙겠습니다.

[사색-1]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존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인류의 구원을 설파한 그의 메시지만이 아닙니다. 인류는 아직 예수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합니다. 갈색 장발, 긴 수염, 30대 백인 남성은 무엇이냐고요. 그 모습은 서구 문화가 창조한 하나의 이미지일 뿐입니다. 정작 성경에선 예수의 생김새를 묘사하지 않습니다. 요한묵시록에서 재림을 앞둔 예수의 모습을 일부 기록했지만, ‘머리털이 눈같이 희었고, 얼굴은 태양처럼 빛났다’ (1장 13~16절) 등 추상적인 내용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것일까요. ‘사색’ 첫 화는 예수 이미지의 변천사입니다. 마침 내일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입니다.

엘 그레코의 작품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1600~1605년). 중세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30대 수염 난 백인 남성으로 그려졌다.
예수께서 본래 美소년이셨다
지난해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서 발굴된 로마 시대 금반지. 가운데 형상은 양을 어깨에 둘러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어린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유럽 지중해 연안 난파선에서 3세기 로마 시대 금반지 하나가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3세기 보석에 예수의 모습이 각인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금가락지 속 예수의 모습이 수상쩍습니다. 양을 어깨에 둘러멘 앳된 소년의 모습만 보였기 때문인데요. 이 기사를 본 누리꾼들은 “예수가 도대체 어디있냐”, “일반 그림을 가지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예수라고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중후한 모습의 예수와 괴리가 너무 컸기에 나온 자연스러운 의견이었겠지요.

313년 로마로 떠납니다. 콘스타틴누스가 마침내 기독교를 공인합니다(밀라노 칙령). 박해받던 기독교는 이제 당당히 공식 종교로서 위상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전까지 고대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지하 공동묘지에 숨어서 지냈습니다. 예수의 용안을 묘사하지 못했고 대신 물고기를 그리며 예수를 기리곤 했지요.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뜻하는 ‘ΙΧΘΥΣ’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문장의 초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는 또 오병이어의 기적의 상징물이기도 했습니다. 박해받는 종교인의 은어였던 셈이죠.

바티칸 비오 크리스티아노 박물관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소년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3세기 로마 금반지 내 형상과 같은 모습이다. 로마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로서 포교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종교, 신화를 가지고 있는 로마인을 설득하기엔 쉽지 않았죠. 초기 기독교 미술이 이교 문화를 형태로 수용하고, 그 형태 안에 기독교적 내용을 채우는 방식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신화 속 신들에 빗대어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로마 관리 유니우스 바수스는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신의 묘 석관에 앳된 소년 모습의 예수 그리스도를 조각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잘 맞는 후보군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 술의 신 디오니소스, 태양의 신 아폴론이었습니다. 헤르메스는 인간과 신 사이를 오가는 전령의 신이어서 예수와 접점이 있었습니다. 또 그는 목동의 후원자이기도 했는데, 예수의 또 다른 이름 역시 ’선한목자‘였죠. 고대 로마에서 머리를 길게 풀어 헤치고 뽀얀 얼굴에 터럭 한올 없는 얼굴의 예수를 그린 이유는 바로 헤르메스의 젊은 얼굴에서 차용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께서 포도주로 기적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디오니소스로 묘사되기도 했고요, 예수를 “세상의 가장 큰 빛”(마태복음) 이라고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아폴론 신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미소년 예수님의 정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소년은 가고 근엄한 예수의 등장
이탈리아 라벤나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위 작품으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는 모습의 예수. 수염이 없는 모습이지만, 로마 군대에 잡혀갈 때는 수염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그려 극적인 효과를 줬다.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예수의 모습이 본격 등장한 건 6세기부터입니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장식된 모자이크가 처음으로 수염 난 예수를 묘사한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모습과, 재판과 죽음을 앞둔 모습이 함께 그려진 그림인데요. 흥미로운 건 기적을 행하실 때는 영원히 젊을 거 같은 수염이 없는 멀끔한 모습이지만, 반대로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서는 수염이 무성하게 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대조적인 상징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이 맞이한 상황의 비극을 더하려고 한 시도였다고 미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같은 성당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 군대에 의해 연행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 기적을 행할 때와 달리 수염이 가득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소년에서 수염 난 예수로 이미지가 변한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고대 로마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로마신화 속 인물을 빌릴 필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습니다. 고대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가 막을 내리던 시대적 배경도 근엄하고 존엄한 예수의 이미지를 탄생시킨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6세기 이후부터 예수의 그림은 수염이 있는 모습이 대세로 자리를 잡습니다.
갓 쓴 선비의 모습을 한 예수까지
운보 김기창은 예수의 생애를 조선을 배경으로 재해석하는 탁월한 작품을 선보였다. 갓 쓴 예수 그리스도가 한옥에서 열두 제자와 함께 조선 밥상을 즐기는 모습.
예수의 모습이 문화적 맥락에서 재현되고 변용된다는 건 로마 시대 얘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수를 우리 것으로 색다르게 그려낸 화가가 있었습니다. 지난 2001년 작고한 운보 김기창입니다. 그는 1952년부터 1년 동안 예수의 시리즈를 30점 연작으로 발표했는데요, 특이한 건 화풍뿐만 아니라 외모 복장 배경을 모두 조선시대로 바꿨다는 겁니다. 한옥에서 녹색 한복을 입은 예수가 열두 제자들과 잔칫상을 받는 이 작품은 ’최후의 만찬‘입니다. 열두 제자 역시 양반집 자제들처럼 갓과 한복을 갖춰 입었죠. 아기 예수의 잉태를 마리아에게 알리는 여인은 선녀로 그려지고, 예수를 시험하는 사탄은 도깨비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운보의 작품이 예수를 가장 토착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이유입니다. (운보는 탁월한 그림 실력에도 불구하고 친일 행적이 공개되면서 비판받기도 합니다)
과학, 예수의 얼굴을 빚다
현대 과학은 예수의 ’진짜 얼굴‘을 찾아내기 위한 작업에 나섭니다. 2000년 전 중동 지역에서 산 예수가 서유럽 백인의 얼굴과는 다를 것이라는 추론에서 시작됐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 리처드 니브 교수는 법의학 기술을 동원해 1세기에 살았던 30대 유대인 남성의 모습을 재현합니다. 사막생활과 고된 노동에 시달린 평균적인 남성의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당시 예수의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겠다는 시도였죠. 니브 교수는 이 모습이 정확히 예수님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당시 남성들의 평균얼굴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보다는 더 정확하다고 연구진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그 당시 그 지역을 살았던 남성의 평균 모습일 뿐, 예수의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대한민국 표준 얼굴이 내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연구진이 구현한 1세기 중동 지역 유대인의 평균적 모습. 이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과 유사할 것이라고 연구진은 주장한다.
우리는 아마도 영원히 예수의 얼굴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씀은 영원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여러분 주변에서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건 어떤지요. 하 수상한 시절이지만, 어쨌든 성탄절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와 성탄절
<참고자료>

ㅇ미술사의 신학(2021년), 신사빈 지음, W 미디어 펴냄

ㅇ수염과 남자에 관하여(2019년), 크리스토퍼 올드스톤 모어 지음, 사일런스 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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