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왜 학교는 '쓸데 있는 지식'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1. 10년 만에 수능을 다시 본 30대를 만났습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했는데 3년이 지나도 취직이 잘 안돼서, 결국 새로 한의대를 가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수능을 다시 보니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수학에서 느낀 게 많았다더군요. 10년 전 쌩쌩할 때는 전국 99%, 98% 안에 드는 게 별 일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공부를 해보니까 거의 싹 다 잊어버려서 고생깨나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됐다고 했습니다.
"대학부터 취업 준비까지, 10년 동안 한 번도 쓸 일 없었던 이 공부를, 대체 초중고 12년 동안 왜 죽도록 한 거지?"
2. 유튜브에 '영국남자'란 채널이 있습니다. 주로 떡볶이, 치킨 같은 한국음식을 영어권 사람들에게 먹이고 반응을 보는데 스쳐도 4,5백만 뷰, 천만 뷰 이상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채널에서 먹방 말고도 주목해서 볼 만한 영상이 있습니다.
영국 학생들과 영어 교사들에게 수능 영어 문제를 풀게 해본 영상입니다. 학생 편은 무려 1,200만 뷰가 넘었습니다. 한 번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_uGV2L5q3s&t=105s ]
Actual English: I can't go to school today because i am sick, sorry.
(실제 영어 : 아파서 오늘 학교에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Korean-test English: I have been made to abstain one's presence from the academy in which an education is given; for my bodily functions have ceased in health thus leaving me poorly afflicted. With great regards and excuses do i ask you to be in understanding during these times.
(한국 시험 영어 : 저는 교육이 행해지는 학교에서 저의 존재를 불참시키게 됐습니다. : 저의 신체 기능이 건강에 있어서 작동을 멈췄기 때문에 저는 심각하게 고통받는 상태에 놓여졌습니다. 큰 관심과 용서로 이 기간 동안 이해받는 것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외국인들까지 "아 이제 한국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겠다"면서 영어로 조롱인지 위로인지 모를 댓글을 릴레이로 달아놨습니다. 영국 고등학생들과 교사들은 문제를 풀면서, 왜 한국 영어시험은 이렇게 내는 건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답을 내놓습니다.
"이게 왜 필요하죠? 어떤 능력을 증명하는 거죠?"
"이건 누가 얼마나 똑똑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주어진 제도에 잘 맞는지를 보는거죠.
"이게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걸까요? 시험 문제는 풀 수 있겠죠. 1년 뒤에 물어봐도 답을 알고 있을까요? 아니면 단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배운 걸까요?"
우리는 '선착순 뺑뺑이'에 걸린 것처럼 무작정 뛰기만 하다 보니까 잊어버린 질문을, 외국인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말 잘 듣는 사람'을 골라내는 것 이외에, 이런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거죠. 우리 교육은 그런데 더 역행을 하고 있습니다. 요새 초등학교 2,3학년부터 '수학의 정석'을 푸는 게 유행입니다. "수학은 이제 암기과목이다. 다양한 패턴의 문제를 외워야 한다"는 이유를 댑니다.
그런데요, 잠깐 뺑뺑이 돌던 거 멈추고 생각을 해봅시다. 왜 초등학생이 정석을 풀어야 하는 거죠? 왜 영국인도 못 푸는 영어 문제를 연습해야 하는 건가요. 좋은 대학 가야 돼서요? 이런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또 성인이 되면, 인생이 정말로 풍요로워지는 건가요?
3.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수능을 없애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영유아와 초등 아이들이 지금의 수능을 그대로 치는 것, 그런 상황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 "지금 어린아이들이 대학 갈 때는 수능이 없을 거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말한 거죠. 지금의 수시가 그 대안인지는 또 많은 분들이 생각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과연 현재와 같은 식의 교육을 유지할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경제 코너 성격에 맞게 몇 가지 제안을 해보려고 합니다. '당장 일터에 나가서 명령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을 키워내는 걸 넘어서, '내가 내 능력으로 돈을 벌고 생활하는 생활 경제인'으로 설 수 있도록 경제 교육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이런 사기 저런 사기, 각종 '눈퉁이'를 맞아가면서 경험치를 쌓으면서 알게 되는 일들을, 학교에서부터 알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4. 기초 부동산 상식 : 이건 제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저도 철들고 처음 얻은 전세 때문에 호되게 고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계약이 끝나서 이사 갈 집까지 정해 놓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못 주겠다고,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줄 수 있다고 버텼습니다. 계약 종료 넉 달 전부터 말로도 하고 내용증명도 보내고 할 건 다 했는데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집주인은 부동산에 시세보다 몇천만 원 비싸게 전세를 올려놓고는, "지금 세입자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까지 시켜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앞에 세입자한테도 똑같은 일이 있었던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라는 게 적혀 있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보증금을 못 받은 세입자가, "여차하면 이 집 경매로 넘겨버리겠다" 같은 증거로 남겨뒀던 건데, 저는 그걸 허투루 봤던 거죠. 등기부등본이란 것 자체를 그전에는 아예 본 적이 없었고, 안에 적힌 내용이 무슨 뜻인지는 더더군다나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지금 전세 사기 주 대상이 20대 30대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봐도 그럴 만합니다. 등본이 뭔지도 모르고 중개업소를 찾아가서는, 정신없이 도장 찍고 뭐 해서 계약서 받고 들어가서 사는 게 보통 사회 초년병들 경웁니다. 좋은 사람들 만나서 별 탈 없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인생이 처음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실전으로 배우게 되는 겁니다.
부동산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누군가 가르쳐 주질 않죠. 학교에서부터 등기부등본이 뭔지, 어떻게 보는 건지, 세입자의 권리는 뭔지, 어떻게 위험한 경우를 피할 수 있는지 등등을 사례를 들어가면서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지난 30년간 흐름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 청약 통장은 뭔지, 청약은 어떻게 하는지, 젊은 사람들이 사회 초년생 때 얻을 수 있는 임대주택 등은 어떤 게 있는지, 어디서 알아볼 수 있는지 등등도 더하면 좋겠고요.
5. 금융과 투자 상식 : 해외 주식 투자, 많이 하죠. 지난 한 달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산 외국 주식은 뭘까요.
가장 많이 산 주식은 테슬라였습니다. 그런데 2-5위는 모두 지수가 오르고 내리는 데 따라서 3배로 수익과 손해가 나는 상품들입니다. 먹으면 왕창, 털려도 왕창, '모 아니면 도' 투자에 빠져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저런 거 샀다가 빈털터리 됐다, 혹은 몇천 손해봤다 이런 글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허락한 도박'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투자라는 게 안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공부해도 결과 못 맞춥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걸 알고 덤벼드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있습니다. 잘못 밟았다가 터질 수 있다는 걸 알고 피할지 건드릴지 선택하는 것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수준으로 덤벼드는 건 다른 이야기라는 거죠. 건전하게 시작해서 오래 하는 투자가 되는 게 모두에게 좋습니다. 한 번 털리고, 물 탔다가 또 털리고, 에이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시장을 떠나버리는 경험을 했던 기성세대들 경험을 반복할 필요는 없겠죠.
주먹으로 돈 뺏아가는 실제 불량배보다, 말로 구슬려서 돈 털어가는 '경제 불량배'들이 훨씬 숫자도 많고 위험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제 호신술'부터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기관은 뭐 하는 곳이고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내 소득과 대출은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은지, 종잣돈은 어떻게 모으고, 어떤 위험들을 피해야 하는지 등등 말이죠.
그리고 나서 투자란 무엇인가, 투자할 때 기업과 경제의 어떤 면을 봐야 하는가, 모험적 투자는 어떤 이익과 위험을 낳는가 등등도, 심화 과정으로 알려줄 수도 있을 겁니다.
6. 근로기준법과 각종 세금 : 근로기준법, 하면 머리에 빨간 띠 둘러야, 파업 같은 거라도 해야 읽는 것 같은 느낌 가진 분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편의점, 배달, 사무직 알바로 사회생활 시작했다가 엄한 데서 돈 뜯기고 무리한 요구받고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손해보지 말라고 기준을 정해 놓은 법이 '근로기준법'입니다. 근로계약서 쓰고, 정해진 대로 일하고 돈 받고 등등 기본적인 내용들이 여기에 규정돼 있습니다.
반대로 가게나 사업을 본인이 열어서 사람 뽑고 일하려고 해도 기본적인 내용을 또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너와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법', 근로기준법은 그래서 기본적인 내용은 배워둘 가치가 있습니다.
또 세금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일한 소득에 따른 세금과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등등 실생활에 필요한 세금 내용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보러가기' 버튼이 눌리지 않으면 해당 주소를 주소창에 옮겨 붙여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7n3oYBo2pV ]
김범주 기자news4u@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월급 350에 숙식까지 가능…“그런데도 사람이 없어요”
- 일본 뜨려던 한국인 가방에 '꿈틀'…멸종위기 6마리 있었다
- “꺼내주세요”…인형 뽑으려다 갇힌 4살 소녀의 '뼈아픈 교훈'
- 쌓인 눈 무게 이기지 못하고…무너져내린 카페 지붕
- 졸업 파티 중 갑자기 '바닥 폭삭'…땅속으로 추락한 학생들
- “저 아시죠” 올해도 찾아왔다…5천만 원 기부자의 쪽지
- 마트는 가성비, 호텔은 초고가…케이크 속 소비 양극화
- 폭설에 끊긴 항공편·배편…제주서 3만 명 발 동동
- “이게 전세사기? 몰랐다”…명의만 넘긴 '바지사장' 정체
- 미사일 2발 쏜 북한…'고화질·컬러' 평양사진에 발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