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성탄절 전 헌혈카페 우르르…"벌써 200번째" 따뜻한 마음
"환자들을 보면 내 피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 김모씨(여·26))
23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시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헌혈 카페에 남성 한 명이 들어왔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정민규씨(31)는 익숙하다는 듯이 전자 문진을 쓰고 혈압을 측정했다. 정씨는 오늘 107번째 헌혈을 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다고 했다. 채혈실에 들어서 날카로운 주사 바늘이 왼쪽 팔 깊숙이 찔러도 정씨의 표정에는 잠깐의 찡그림조차 없었다.
통계상 겨울철인 12~2월은 헌혈이 줄지만 유독 12월만큼은 연중 최고를 기록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느는 탓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연간 헌혈자는 계속 줄고 있어 신규 헌혈 인구를 늘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최저기온이 -13.7℃까지 떨어진 이날 오후 5시까지 홍대입구역 인근 헌혈 카페에만 17명의 헌혈자가 찾아왔다. 전국에서는 오후 3시 기준 전국에서 총 304명의 사람들이 헌혈카페를 찾았다.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이미 헌혈을 최소 수십번은 해본 베테랑 헌혈자들인 것. 휴가날에 맞춰 헌혈을 하러온 직장인 김미숙씨(58)는 이번이 10번째 헌혈이라고 했다. 직장인 김정수씨(40)는 이번이 90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헌혈을 시작하게 됐냐고 묻자 그들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유가 어디있어요.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거죠." 처음에는 지인 소개로 시작했다가 그 이후에는 꾸준하게 방문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헌혈 인증도 적지 않다. 세종시에서 헌혈을 완료한 박민석씨(48)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명예대장 헌혈 200회" 펫말을 들고 인증샷을 올렸다. 박씨는 "10년 넘게 꾸준히 헌혈을 해서 오늘 200번째를 달성했다"며 "특히 이번 주말은 크리스마니까 이렇게 한파를 뚫고 헌혈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12월이 되면 헌혈 건수는 반짝 증가한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12월 헌혈자는 전월 대비 각각 4%, 3.8% 증가했다. 한지혜 홍대 헌혈 카페 선임과장은 "12월에는 보통 헌혈자가 많은 편"이라며 "여름에 비해서 하루 7~8건 정도 더 많이 오는 것 같다. 평일에는 20명, 주말에는 30명까지도 온다"고 말했다. 헌혈카페는 대한산업보건협회 한마음혈액원에서 운영하는 헌혈기관이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헌혈의집을 운영한다.
하지만 12월에 늘어난 헌혈자는 1~2월에는 다시 감소 추세로 돌아선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헌혈자는 월별 21만8935명, 17만5710명, 16만7062명이다. 2020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역시 내리막길을 보였다. 한 과장은 "헌혈은 한 번 했던 분들이 지속적으로 하는 편"이라며 "한번 헌혈을 하면 최소 2주에서 최대 2개월 휴지기에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12월에 비해 1~2월은 감소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일반헌혈량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1년 헌혈 현황에 따르면 일반 헌혈량은 2018년 285만7115유닛, 2019년 273만9994유닛, 2020년 253만2149유닛, 2021년 246만279유닛으로 해마다 꾸준히 줄어 3년간 16% 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같은 기간 지정 헌혈량은 약 636% 폭증했다. 2018년 1만9344유닛에서 2019년 4만5557유닛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0년에는 7만7334유닛으로 전년 대비 1.7배 늘었고, 2021년에는 14만2355유닛으로 전년 대비 1.8배 증가했다. 지정헌혈이 많다는 뜻은 결국 병원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 혈액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혈액 수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날 홍대 혈액카페를 방문한 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 김모씨(여·26)는 "응급실에서 일하다보면 너무 혈액이 부족해서 소아암, 혈액암 환자는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지정헌혈하는 사람도 부쩍 많아져서 우리끼리는 '내 피 뽑아서 주고 싶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신규 헌혈자를 계속해서 유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헌혈자들은 아무리 주기적으로 헌혈을 해도, 일정 기간 휴지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혈액을 다 뽑는 전혈의 경우에는, 1년에 최대 5번 정도 헌혈을 할 수 있다.
김호 보건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 사무관은 "신규 헌혈자 유입은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지난해에는 6월14일 '헌혈자의 날'을 만들어서 헌혈을 장려하기도 하고 헌혈 증서 재발급 제도를 만들어서 수혈 비용 부담을 감면해주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김 사무관은 앞으로도 인구 감소와 맞물려 어떻게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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