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썰] 짜고 치는 이태원 망언, 대반전 노리는 혐오 정치

안영춘 2022. 12. 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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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이태원 참사]정부·여당의 막말 릴레이와 방조, 실수일 확률 0%
약자 향한 혐오 공격은 탈진실 시대의 정치적 기획
[논썰] 짜고 치는 이태원 망언, 대반전 노리는 혐오 정치. 한겨레TV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 대해 혐오를 부추기는 말과 행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4대 종단 종교인들은 최근 시민분향소를 지키며 고통을 삼키고 있는 어느 희생자 어머니가 면전에 쏟아지는 조롱에 충격을 받아 실신하는 사건까지 있었다고 지난 21일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장삼이사들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이들을 말려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군불을 때고 있습니다. 참사를 예방하지 못했고,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서기는커녕 외려 발목을 잡고 있는 정부와 여당 쪽 인물들입니다. 한두번이면 실수라고 애써 치부하기라도 할 텐데, 대단히 지속적입니다. 주기적이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여당 안에서 누구 하나 나무라는 이도 없습니다.

도대체 왜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이렇게 두번 세번 죽이려는 걸까요. 무의식이나 본능, 습관일까요. 나름 치밀한 노림수가 있는 건 아닐까요. ‘논썰’이 분석해보겠습니다.

공감능력 부재 증명한 한덕수 총리

먼저 누가 어떤 혐오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부터 정리해보죠.

윤석열 정부 최고위 직책에 앉아 있는 한덕수 국무총리. 한 총리는 지난 19일 오후에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사전 연락도 없었습니다. 유족들이 분향소에 온 이유와 윤 대통령의 공식 사과 계획이 있는지 물어도 묵묵부답. 헌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합동 분향소 바로 앞에서 혐오 구호를 내걸고 맞불집회 중인 극우·보수 성향 단체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습니다. 방문 목적이 유족들에게 절망감과 모욕감을 안기려는 거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총리의 이런 언행은 그날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11월1일 외신 기자회견에서는 웃으면서 이런 농담을 했죠.

외신 기자 “한국 정부의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시는지 질문했습니다.”
한덕수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

참사 직후입니다. 온 사회가 충격에 깊이 빠져 있을 때입니다.

지난 1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는 이태원 참사 생존 고등학생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학생의 책임을 지적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고인이 이미 서울시교육청과 신경정신과에서 상담과 치료를 몇차례 받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몰라도, 참사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면 감히 하기 어려운 발언입니다. 그의 언행이 전형적인 혐오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혐오의 원형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바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 부재입니다.

김미나를 징계할 수 없는 이유

혐오 발언으로 일약 전국구 인물로 떠오른 이가 있죠.

김미나 창원시의회 의원입니다. 국민의힘 소속 초선입니다. “꽃같이 젊디젊은 나이에 하늘로 간 영혼들을 두번 죽이는 유족들!!!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

그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한 총리의 언행에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거나 의뭉스러운 면이 있다면, 김미나 의원의 경우는 혐오 감정을 거리낌없이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망언의 끝판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유족들이 희생자를 두번 죽인다, 자식 팔아 장사한다…. 희생자를 두번 죽인다는 말로 정작 희생자를 거듭 죽이는 아이러니의 극치입니다. 저 짧은 몇마디가 세상을 온통 지옥도로 덮어버립니다.

창원하고 바로 붙어 있는 경남 김해의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인 이미애라는 이는 “미나 의원 힘내요. 화이팅! 유족 외엔 사과하지 말기…”라며, 김미나 의원을 응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악의 연대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잠자코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창원시의원 전원이 김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시의회에 제출했는데, 국민의힘 소속 의원 27명 가운데는 단 한명도 징계요구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경남도당도, 중앙당도 여태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유족들을 만난 20일, 유족들이 김미나 의원의 징계를 요구한 데 대해 ‘비대위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힌 게 다입니다. 침묵의 집단 방조입니다.

방조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김미나 의원의 발언은 그의 창작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했던 말들을 좀 더 단순하게 옮겼을 뿐입니다. 김미나 의원을 징계한다면 그 한사람으로 꼬리를 자를 수 없습니다.

지난 10일 대표적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한 날입니다.

“지금처럼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세월호 사고 이후 수많은 추모사업과 추모공간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까? 심지어 시민단체가 정치적·금전적으로 사고를 이용하는 사례까지 속출했습니다.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와 ‘어버이 수령님’, 그리고 프레임 씌우기

같은 날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 비서관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했다가 물러난 이죠.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 자식들이 날 때부터 국가에 징병되었나요?? 다 큰 자식들이 놀러가는 것을 부모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깁니까?! 언제부터 자유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버이 수령님’이 되었나요??”

물음표를 두개씩 쳐가며 희생자의 ‘자격’을 따져 묻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순수한 애도’가 뭔지도 역설적으로 드러납니다. ‘개인적 불행’에 대해 다만 안쓰러워 하라는, 참사에 대해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묻지 말라는 국민에 대한 지상명령입니다.

한 총리가 합동 분향소에 가서 사진만 찍고 돌아온 19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인 김상훈 의원은 공식석상인 비대위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참사 영업상’이 활개치는 비극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들은 참사가 생업입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태원 시민대책회의 또한 참여단체 면면을 보니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통진당 후신정당인 진보당과 극좌친북단체는 물론 민노총, 전장연, 정의연 등 국민 민폐 단체도 끼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대단한 ‘시혜’가 됩니다. 시혜는 의무가 아니라 얼마든지 철회할 수 있는 옵션입니다. 원조 윤핵관이라는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애초 합의해 줘서는 안 될 사안이었다”며 국정조사에 재를 뿌리는 글을 올립니다. 야3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날이죠. 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박수영 의원도 이튿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해놓고 야당 단독으로 이상민 장관 해임안을 통과시키는 건 약속 위반이고 몰염치”라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국정조사를 보이콧해온 국민의힘은 21일 유족들을 만난 뒤에야 겨우 국정조사에 복귀합니다. 45일 일정으로 시작된 국정조사 특위가 이미 27일이나 흘러가고 난 다음입니다. 복귀는 다행이지만 앞으로 또 어떤 궤변으로 국정조사를 무력화하려 할지 걱정입니다.

“술 좋아한다고 술잔 샀다고 그러겠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메시지를 내보냈습니다. 참사 49재 시민 추모제가 16일 오후 6시 참사 현장 인근에서 열렸습니다. 정부 주요 책임자 누구도 추모제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윤 대통령 부부는 1㎞ 남짓 거리인 추모제 현장이 아니라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열린 중소·소상공인 판촉행사에 참가해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등을 하고 술잔을 샀습니다.

윤 대통령은 “술 좋아한다고 술잔 샀다고 그러겠네”라고 농담도 합니다. 대통령의 말은 농담조차 국민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대통령의 침묵도 국민에 대한 강한 메시지입니다. 윤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이미 투명인간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은 윤 대통령의 농담과 침묵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태원 참사 관련 혐오 발언에는 몇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유가족들을 한사코 수동적인 타자로 묶어두려고 합니다. 모여서도 안 되고 행동해서도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이를 강제하기 위해 유가족들에 대한 혐오도 서슴지 않습니다.

둘째, 유가족들을 시민사회와 어떻게든 분리시키려 합니다.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단체들에 ‘색깔론’을 비롯한 너저분한 딱지를 갖다 붙이고, 음모론을 펼칩니다. 이리하여 가족을 잃은 고통으로 가슴을 쥐어뜯는 유가족들에게 손을 내밀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면 반체제 활동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그들과 연대했던 시민사회의 활동에 대해 ‘낙인’을 찍어 지속적으로 이태원 참사와 연결시킵니다. 지금 저들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가 아니라 역사적 죄인입니다. 왜 그런지 설명은 필요없습니다. 집단적 색칠로 충분합니다.

이들 세가지는 철저히 피해자를 배제한 시선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러니 희생자 가운데 마약과 관련된 이는 얼마나 되는지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피해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재구성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월호가 가는 길이 대체 어떤 길입니까?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식을 잃고 그 슬픔과 비통함 때문에 정부에 수많은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요구를 했었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저희한테 손을 내밀어 줬습니까? 저희가 처음부터 이렇게 했습니까?”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12월10일)

위기를 기회로, 괴벨스식 반복 선동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차례입니다. 저들의 혐오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0%라고 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저 지속성과 반복성, 점입가경, 집단적 방조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을 표현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걸 차마 생각의 과정을 거친 ‘사유’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혐오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의 부재입니다. 생각이 없어야 혐오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다고 혐오 발언이 무의식이나 조건반사에 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혐오의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다분히 의도를 갖고 만듭니다. 혐오 발언의 반복도 우연이라 볼 수 없습니다. 독일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가 말했듯이 선동의 효과는 진실성이 아니라 반복에서 나옵니다.

이태원 참사 혐오 발언 당사자들의 의도는 뭘까요? 궁지에 몰린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걸까요?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밑그림은 그보다 훨씬 클 수도 있습니다. 아예 지금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뒤집으려는 건 아닐까요?

혐오는 조건만 맞으면 상당히 강력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쪽의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윤 후보 지지율이 대반전하는 계기가 됐던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여성가족부 폐지는 정책 공약이 아니었습니다. 살제로 윤 후보는 저 일곱 글자 말고는 어떤 설명도 거두절미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적대를 선동하는 구호였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우대해서 남성들이 부당한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치밀하게 논증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투사할 대상이고, 그 대상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같은 애먼 존재들이기 마련입니다. 혐오에는 기본적으로 우생학적 상상 같은 강자 숭배, 이에 따른 차별의 속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약한 것은 악한 것입니다. 강자 숭배는 약한 존재가 능력보다 과한 자원을 누리는 바람에 자신들의 몫을 빼앗기고 있다는 현실 인식으로 나아갑니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혐오해 집단 학살까지 하는 데는 자신들이 위대한 순수 아리아 인종 혈통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주장의 신화화와 함께,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선동이 동시에 필요했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멸공 밈’의 추억

혐오의 대상이 하나가 아니라 일련의 계열체를 이루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나치의 첫번째 대량 학살 대상은 유대인에 앞서 장애인들이었습니다. 나치에게 장애인과 유대인은 하나의 계열이었습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반복적으로 공격 대상이 되는 이들이 누구인지 보십시오. 그들은 극우정치세력들에 의해 길게는 해방 이후부터 짧게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혐오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지난 대선 때 ‘여성가족부 폐지’ 단문 메시지 직후 등장한 게 ‘멸공 밈’이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반년 남짓 지난 2014년 11월26일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장에 극우 기독교 단체들이 난입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와 있던 성소수자들에게 그들이 했던 욕설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당신, 세월호 주최지?”였습니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면서 세월호 피해자들을 끌고 들어오는 것, 이것이 정치적 혐오의 속성입니다. 나아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공격은 더 많은 집단들을 묶어서 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거시적인 정치적 기획의 일부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전술을 가장 잘 이용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직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트럼프는 약자들에게 혐오 공격을 하면서 사실도, 진실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애써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꾸미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증이 나오면 간단히 ‘대안적 사실’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대선에서 한번 승리했고, 그 다음 대선에서 간발의 차로 떨어졌으며, 그 뒤로도 부정선거 주장을 계속하며 다음 대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맘껏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조건이 맞아 떨어진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조건일까요? 이른바 ‘탈진실 시대’의 ‘정치적 양극화’라는 토양입니다. 혐오 정치를 통해 사람들이 편파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하고, 의도적인 무지의 상태로 빠지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 전세계적으로 면적을 키워왔습니다. 우리나라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분단 직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는 면에서 보면 오히려 고질적이고 뿌리 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완성돼가는 ‘주술’과 ‘배설’의 폐회로

지금 정부·여당은 다시금 ‘혐오 정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태원 유가족들과 연대한 단체들을 ‘참사 영업상’이라고 공격하며, 정작 자신들이 ‘혐오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장사가 아주 쏠쏠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두달도 안 돼 정치세력의 ‘주술’과 이를 내면화한 이들의 ‘배설’이 혐오 정치의 폐회로를 이미 구성한 듯합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 바로 앞에 진을 친 극우단체는 혐오 정치의 백병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들어가 있는 단톡방, 그리고 박 구청장과 용산이 지역구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들어가 있는 단톡방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이 보도됐죠. 백병전의 온라인 버전이라 할 만합니다.

“이 따위 짓을 하러 갔다가 인파에 밀려 넘어져 밟혀 사망한 사건에 부모들 책임은 없는가? 이게 나라 지키기 위한 행위로 보이는가?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
“거기에 뭐 볼 게 있다고 끝까지 남아 재수 없게 죽었으면 부모로서 반성해야 한다.”
“우리도 뭉쳐서 데모 한번 해서 분향소 부숴버립시다.”

저 글을 올린 사람들은 박 구청장이 직접 단톡방에 초대했다고 합니다. 주술과 배설의 주체들은 그렇게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연대와 진실 추구로 맞서야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개탄만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에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가해와 피해의 문제를 넘어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사회적 자원과 역량을 소모해 고갈시킵니다. 뾰족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자와 튼튼하게 연대하고, 사실과 진실을 부단히 추구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봅니다.

<논썰>이었습니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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