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란 무엇인가? 냄새의 비밀 파헤친다[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노성열 기자 2022. 12. 2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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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8- 맛과 향 ③
인간이 냄새를 맡는 후각 계통의 구성도. 1. 후각 신경구 2. 승모 세포 3. 뼈 4. 콧구멍 상피 5. 사구체 6. 후각 수용 세포 자료: 위키피디아

맛과 향의 세 번째 탐험입니다. 앞서 두 차례에 걸쳐 맛의 과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냄새의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후각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떤 경로를 통해 향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맛과 향의 첫 수업에서 우리는 향이 물보다 기름에 잘 녹는 휘발성 분자라고 배웠습니다. 자연에는 수만 가지 향이 존재하며 인간의 후각 수용체 종류만도 400여 가지에 이릅니다. 맛 수용체 20~30가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향은 그래서 단조로운 맛을 보완해 요리에서 훨씬 풍부한 풍미가 나도록 도와줍니다.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는 맛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요리는 복잡한 향과 깊은 맛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자연 향은 주로 식물이 천연적으로 생산한 화합물입니다. 물론 사향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말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곤충이나 동물을 유혹하기 위해, 혹은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낸 화학 무기입니다. 동시에 식물끼리 소통하는 언어, 즉 화학 신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식물 향을 추출해 요리 재료의 악취는 줄이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나도록 요리를 합니다. 요리의 가장 중요한 2가지 공정, 가열과 발효 과정에서 향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일류 요리사의 자격 요건입니다.

고기나 생선의 단백질, 즉 아미노산이 당과 만나 섭씨 150도 이상의 고온을 만나면 ‘마이야르 반응’이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 가지 향기 물질이 생성돼 고소하고 먹음직한 냄새가 방 안에 진동하게 됩니다. 빵, 스테이크, 로스팅 원두, 군고구마, 튀김의 냄새입니다. 이 반응은 수분을 제거하고 설탕 등 당 성분이 있으면 더욱 촉진됩니다. 아미노산 없이 당류(탄수화물)만 가열하면 ‘캐러멜 반응’이 일어납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달고나 뽑기를 할 때 나는 냄새입니다. 달착지근한 동시에 기름, 꽃, 탄 내 같은 냄새가 납니다. 지방도 가열하면 특유의 고소한 향을 만듭니다. 향 분자는 또 기름에 잘 녹기 때문에 냄새 보존 재료로 기름이 요리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서양 요리의 소스가 대표적이죠. 우리나라 갈비나 불고기 양념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미용에 쓰이는 향수도 기름에 냄새를 농축한 것입니다.

요리의 발효 과정 역시 향을 바꿉니다. 때론 악취도 나지만 잊지 못할 홍어나 치즈의 구수한(!) 맛과 향을 창조합니다. 발효는 세균이나 효모 등 미생물과 효소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당으로 분해하고 결국 산과 알코올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단백질을 분해하면 글루탐산 같은 아미노산으로 쪼개집니다. 분해하면 소화하기 좋고 독특한 향이 생겨 입맛을 돋웁니다. 요리는 열과 발효를 이용해 말랑말랑, 쫄깃쫄깃하게 재료의 내부 구조를 바꾸고, 동시에 유혹적이고 자극적인 냄새를 풍겨 뇌의 기억 속에 콕 박히도록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3대 영양소를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냄새를 인식하는 경로는 맛과 향의 첫 번째 수업에서 설명했죠. 우리 세포에는 ‘GPCR(G-Protein Coupled Receptor)’이란 감각 수용체, 즉 냄새 센서가 있다고요. 향 분자와 수용체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서로 강하게 결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센서는 관문(關門· gate)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칼슘과 염소 이온이 세포막을 경계로 안팎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그 문을 이온 채널이라고도 하지요. 양이온과 음이온 간의 전위차가 신경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이 전류가 뇌에까지 전달돼 우리는 냄새를 감지하게 되는 겁니다. 특히 냄새는 다른 4개의 감각과 달리 뇌로 직행하는 별도의 통로를 갖고 있다고 했죠. 코 안쪽의 후각 망울에서 대뇌변연계로 곧장 갑니다. 인간이 아직 동물이었을 때 냄새는 보이지 않는 적과 사냥감을 먼저 포착하는 화학적 레이더 역할을 했을 겁니다. 해마, 편도체 등으로 구성된 대뇌변연계는 학습과 기억, 공포 등 감정을 관장합니다. 엄마 냄새, 어릴 적 먹던 청국장 냄새 같은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입니다. 향수가 우울한 기분을 활기차게 바꿀 정도로 강렬한 감정적 변화를 만드는 배경입니다. 후각은 원시적, 즉각적 감각으로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합니다. 시각이 분석적·이성적이라면 후각은 종합적·감성적입니다.

기분좋은 냄새를 풍기는 재료는 치료나 미용, 휴식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로마 테러피의 치유와 힐링 효과는 원시적인 후각의 감성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게티이미지

향은 1차적으로 맛과 결합해 미각의 깊이를 더하고 더 다양하면서 풍부한 스펙트럼을 형성해 줍니다. 하지만 미각과 결합하지 않고 후각 혼자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 것이 냄새 치료입니다. 고급 미용실이나 명품매장에 가면 은은한 향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이것은 무의식중에 고객을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로 만들어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화학적 마케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위당 중량이 금보다 비싼 향수는 그 결정체이지요. 아로마 테러피(aroma therapy)는 인간의 교감신경 활동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차분한 정서적 반응을 유도합니다. 라벤더 향 같은 게 대표적이죠. 이 향을 맡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관상동맥의 혈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치매의 하나인 알츠하이머병 환자도 오전에는 로즈메리·레몬 향 등으로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저녁에는 라벤더·오렌지 향 등으로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증상을 완화 시켰다는 임상 보고도 있습니다. 좋은 냄새가 나도록 자신의 향은 관리하고 다른 사물의 불쾌한 내음을 미리 차단하는 일은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이렇게나 중요한 것입니다. ‘화향백리, 인향만리(花香百里 人香萬里)’, 향기로운 주말이 되시기를.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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