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연극무대에 오른 북한 소설 '벗'

이상현 입력 2022. 12. 2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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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성탄절을 맞아 공연보러 가시는 분들 많죠?

통일전망대도 특별한 공연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1980년대에 출판된 이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북한 소설 '벗'이 처음으로 서울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졌다는데요.

◀ 김필국 앵커 ▶

사랑 결혼 그리고 이혼 같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다룬 내용이라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그 무대로 이상현 기자가 안내해드립니다.

◀ 리포트 ▶

2001년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방영돼 선풍적 인기와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가정'입니다.

"판사 동지, 부디 간청해요! 제발 저 이혼시켜주세요. 네?"

북한에서 터부시되던 이혼 문제를 파격적으로 다뤘던 이 드라마의 원작은 1988년 북한 백남룡 작가가 펴낸 소설 '벗'.

남북 해빙기던 1992년 남한에서도 출간됐고, 2001년 프랑스에선 남북한 작품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됐습니다.

또 재작년 영문 번역판이 출간된 미국에선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의 일상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한 점이 인정돼 그 해 최고의 세계문학 10편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이 북한의 장편소설 '벗' 이야기가 이곳 서울 대학로에 펼쳐졌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올려졌다는데요. 그 공연 현장으로 함께 가보시죠."

서울 한복판 소극장에 처음으로 내걸린 북한 이야기 '벗'.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이혼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뤘던 원작의 내용 때문일까요?

일찌감치 극장 로비는 관객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이해성/각색-연출] "북과 우리가 너무 알지도 못하는 무의식 속에 어떤 벽에 가로막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게 깨지면서 놀랐거든요.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고 그들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고 그들의 말은 우리의 말과 똑같고 이런 동질성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반도네온의 구슬픈 선율로 그 시작을 알린 연극 '벗'.

"더 이상은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저는 리혼을 간청합니다."

공장 선반공인 석춘과 성악 배우 순희, 두 남녀는 서로 사랑해 가정을 이루고 딸까지 낳았지만, 남편 직업에 대한 아내의 불만과 성격 차이 등으로 갈등이 쌓이게 됩니다.

"그만하자요. 난 인젠 당신과 더 못 살겠어요." "그만두라! 살자고 빌지 않는다. 너절한 것,썩 물러가!"

[김봄희/탈북 배우(해설 역)] "북한에서의 부부생활은 굉장히 토론적이면서 전투적이거든요. 서로 자기의 주장과 자기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굉장히 투쟁하는 부부관계인데, 그런 부분이 되게 잘 드러나서 많이 인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가정에 대한 국가적 통제 탓에 협의이혼은 불가하고 재판장 이혼만 가능하다는 북한.

이에 순희는 재판소를 찾아가 판사 정진우에게 이혼을 간청하게 됩니다.

"전 그 사람하고는 생활리듬이 통 맞지 않아요." "무슨 불만이 있었겠는데 그걸 말해보시오."

[이송이/배우(채순희 역)] "북한은 좀 일상적인 모습들이 굉장히 감춰져 있는 부분들이 많다보니까 그런 것들을 조금 북한에서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구나 그래서 생각보다는 굉장히 따뜻한 곳이구나라는걸 좀 느꼈던 것 같아요."

판사 정진우는 이혼의 근거를 조사해나가면서 순희네 가정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생기게 되고, 한편으론 냉랭해진 자신의 결혼생활도 되돌아보게 되는데요.

"젊었을땐 당신이 사랑스러워서 뒷바라지를 했고 다음엔 그저 남편이니 안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섰더랬소. 그러다보니 남들의 아늑한 가정생활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소."

그 과정에서 순희 부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서서히 그 가족과 친구, 벗이 되어갑니다.

[정나진/배우(판사 정진우 역)] "서로에 대한 존중 없이 본인의 처우를 인정받을 순 없겠더라고요. 그게 제일 중요한 핵심이지 않을까 싶어서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너무 진지한 것 보다는 가끔은 가볍게 판사가 아니라 동네 형처럼 벗으로 친구로 얘기를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판사로서가 아닌 친구, 벗의 도움에 힘입어 결국 이혼 위기 극복에 나서는 북한의 30대 부부 이야기.

"호남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끼여들어 손을 잡았다. 부모의 손을 동시에 잡아보는 것이 무척 그리웠던 모양이다."

1970~80년대, 오래 전의 북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남북 그리고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고,

[김나영/관객] "배경이 북한이라 그래가지고 되게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근데 그냥 똑같은 사람이구나 되게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홍은숙/관객] "오늘 저희 결혼기념일인데 너무 그 의미에 딱 맞는..진짜 감명깊게 봤어요."

[김웅철/관객] "우리가 그런 과정들을 쭉 거쳤잖아요? 애틋함부터..약간 식어지는데 (그런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원작엔 없던 질문 하나를 던지며 그 특별했던 연극은 마무리됐습니다.

"판사님, 이혼하고 다시 어딘가 다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여기서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439100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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