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돈이 되는기가?”만 묻는 세상,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보려면···‘올해의 책 10권’[책과 삶]

이영경·김종목 기자 2022. 12. 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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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갈등·차별·빅테크···
책을 열면 펼쳐지는 ‘통찰의 시간’
올해는 누구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봤을까
경향신문 문화부 선정 ‘올해의 책’ 10권
치열한 현실이 한 눈에
경향신문이 선정한 2022년 올해의 책 10권. 이준헌 기자·촬영협조 교보문고

2022년 출판계는 시대와 사회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책이 매주 빠지질 않았다. 대선을 거치면서 격화된 갈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심화되는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책들이 쏟아졌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부와 미래에 대한 희망찬 꿈 이면에 도사린 위험을 분석하기 위한 책도 많았다.

책을 쓰고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이어보는 안락한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현실의 문제를 차분히 진단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통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경향신문 ‘책과 삶’ 지면에 소개된 책들 가운데 특별히 되새겨보면 좋을 책 10권을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선정했다.

<시스템 에러>는 ‘인간을 위한 기술’의 사용 가능성을 논한 책이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어떻게 ‘일베적 혐오’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는지 분석한다. <공감의 반경>은 갈등과 차별의 근간에 ‘공감의 부족’이 아닌 ‘공감의 과잉’이 있음을 지적한다. <편향의 종말>은 우리 의식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암묵적 편향을 구체적 행동 설계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정상은 없다>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대한 의문을 역사적·문화인류학적으로 통찰한 결과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2세 질환 문제를 제기하며, <야생 쪽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답변을 내놓는다. 정지아는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빨치산 아버지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도 따스하게 전했다. 진은영이 10년 만에 펴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또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는 공감과 유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에겐 어깨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기 위한 단 한 명의 거인이 아니라 수만 명의 거인이 필요하다. 여기 그 어깨의 일부가 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시스템 에러

롭 라이히·메흐란 사하미·제러미 M 와인스타인 지음 |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막강한기술기업의 논리가 훼손해온 ‘인간적 가치’들을 질문하며 제시하는 ‘빅테크 윤리학’이다. 빠르게 세상을 바꿔나가는 기술과는 대조적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민주주의야말로 빅테크에 내재된 위험에서 인간을 구할 ‘방호벽’이자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철학·컴퓨터과학·정치학을 가르치는 세 명의 저자는 학생들이 기술의 부정적 영향에는 무관심한 채 성과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기술의 ‘인문학적 논점’을 다루는 강의를 개설했다. 강의는 폭발적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그 내용이 책으로 출간됐다.

기술 전문가가 추구하는 ‘최적화 사고방식’은 효율적이지만 기술 적용 대상의 ‘적절성’은 고려하지 않으며 민주사회의 건전성을 해쳤다.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지배력이 갈수록 커지는 현재, 기술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기본을 되새기게끔 한다.

일베는 한물갔지만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

김학준 지음 | 오월의 봄

혐오와 차별 발언을 쏟아내던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는 한물간 과거일까. ‘일베’는 한물갔을지 모르나, 일베적 혐오는 더 이상 일베만의 것이 아니다.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은 “일베의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두고 ‘역차별’을 말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요구한 ‘20대 남성들’, 의료계 파업에서 ‘전교 1등’만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아집을 드러낸 ‘젊은 의사들’, 일베식 혐오를 주류 정치 담론으로 만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그렇다.

저자는 일베의 가치관 중 ‘평범 내러티브’에 주목한다. ‘평범 내러티브’는 시스템에 순응해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평범한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다. 자신의 고통은 자기계발에 실패한 개인의 책임이며, 순응을 거부한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권리 요구는 ‘약자임을 자인’하는 ‘징징’대는 태도라고 받아들인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을 다변화하는 데서 대안을 찾는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인정되는 세상으로의 초대

정상은 없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 지음·정해영 옮김|메멘토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정상은 없다>는 그 질문에 대해 역사적·문화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깊이 있게 파고들며 정신질환에 찍힌 낙인을 지워낸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문화인류학자다. 저자의 딸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오가며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연구한 저자는 “정상성은 허구”일 뿐이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한 끗 차이”라고 말한다.

정신질환은 근대 자본주의가 발명해낸 역사적 산물이며 ‘노동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아닌 존재를 모두 비정상으로 만들었다. 여성, 흑인, 성소수자에게 찍힌 ‘비정상’ 낙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파헤친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공고한 현실에서 이 책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인정되는 세계로 안내하는 초대장과 같다.

사람 손길을 멈출 때가 가장 ‘자연’스러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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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쪽으로

이저벨라 트리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

땅을 그저 내버려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영국 동부의 넵 캐슬은 경이로운 답변을 보여준다.

축축한 진흙의 땅 넵 캐슬은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현대식 집약농업을 도입해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살포하며 생산성을 높인다. 하지만 이곳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넵의 주인인 저자 부부는 땅을 그만 놓아주기로 한다. 사람의 손길을 멈추고 자연에 맡기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국에서 사라진 나이팅게일의 아리아 소리가 돌아오고, 멸종위기인 멧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다. 60종의 무척추동물이 모여들었고, 찾아오는 새들도 늘었다. 넵은 ‘재야생화’의 상징이 되었다.

‘자연’다운 땅의 모습은 빽빽한 산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관목과 평지, 나무들이 어우러진 ‘황무지’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넵은 환경과 생산성 양면에서 모두 좋은 결과를 얻었다. 기후변화의 시대, 넵은 자연과 인간·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영감을 제공한다.

수면 위로 끌어올린, 반도체 노동자 2세 질환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희정 지음·반올림 기획·정택용 사진|오월의봄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났어?” 이 책은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결과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유해물질로 가득한 환경에서 쉴 틈 없이 일했던 과거를 돌아본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 탓”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입을 떼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선천성 식도폐쇄증, 선천성 거대결장, 콩팥무발생증 등 심각한 질병을 갖고 태어났다.

황유미씨의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면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삼성반도체 노동자 2세 질환 문제가 드러났다. 반도체 클린룸엔 수십종의 생식독성물질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장시간·야간 근무와 스트레스 등으로 생식 보건에 영향이 있는 유해인자에 노출됐다.

제도와 삼성반도체 공장의 구조적 문제를 촘촘히 짚으면서도 삼성반도체 노동자와 자녀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섬세하고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성차별적 노동구조,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남성 중심의 산재 서사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한다.

성·인종·민족에 대한 암묵적 편향, 방대한 해악

편향의 종말

제시카 노델 지음·김병화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하버드대생 제시카 노델이 언론사에 보낸 기획안은 번번이 무시당했지만, J D라는 이름으로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머릿속 깊은 곳에 내재된 ‘암묵적 편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성적으로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채용과 승진 과정에서 여성이 누락되고,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총격이 빈발하는 이유는 바로 ‘편향’에 있다. 편향은 성별·인종·민족 등에 광범위하게 형성돼 우리의 머릿속에서, 조직과 사회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편향의 표현과 해악의 범위는 취업 기회 박탈에서 치명적, 신체적 위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편향을 없애기 위한 ‘행동의 설계’에 답이 있다. 경찰관에게 마음챙김을 통해 총기 사용을 줄인 오리건주, 여성 종신 교수 비율을 66%로 끌어올린 MIT, 스웨덴의 성중립 유치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내재된 편향을 직시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 되는 책이다.

공감 과잉 사회, 구심력 말고 원심력을 키워라

공감의 반경

장대익 지음|바다출판사

우리는 왜 어떤 이들에게는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이들에겐 공감할까? 인간 본성과 기술 진화를 탐구해온 과학철학자 장대익은 저자는 ‘공감 부족’이 아니라 ‘공감 과잉’이 갈등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집단이 나눠지기만 하면 강력한 ‘내집단’ 선호성이 발동된다. 기준 없이 가른 보이스카우트가 그룹이 나뉘자마자 경쟁하고 싸우는 실험, 연고전-고연전에서 자기가 앉은 관중석 편을 저절로 응원한 저자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공감은 전쟁을 부르기도 한다. “전쟁은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발생하는 비극”이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 호주제 폐지, 기후위기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통해 공감 과잉을 짚어낸다.

“직관은 끄고 이성을 켜라.” 저자는 즉각적인 정서적 공감을 넘어서는 인지적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감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만들어 반경을 넓히는 일은 혐오와 차별이 심화되는 한국 사회에 절실한 과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손 내미는 ‘빨치산의 딸’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전직 빨치산이자 ‘순수한 사회주의자’인 고상욱은 이념 실현은 실패했지만 이념 가치를 포기하진 않았다. 고상욱은 진지하게 ‘사회주의’와 ‘민중’의 이름으로 차 끊긴 방물장수를 집에 재워준다. 베트남 어머니를 둔 아이와도 친구가 된다. 동네일에도 앞장섰다. 딸에게도 담배 한 대를 얻어 피우고, 아내의 첫 남편 이야기도 그저 들어주는, ‘가부장제’를 극복한 이였다.

이웃끼리 죽이고, 형제자매가 이념으로 엇갈린 비극의 현대사 공간을 압축하면서 정지아는 화해를 시도한다. 고상욱과 가장 친했던 이는 퇴역 군인이자 보수 신문을 즐겨보던 이다. 고상욱은 이념을 유지하되 그 잣대로 인간을 구별하고 판단하지 않았다.

정지아는 진영 정파 논리와 적대적 공생으로 돌아가는 한국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장례식장’에서 풀어낸다. 고상욱의 모델은 정지아 아버지 정운창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간절한 바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진은영 시집엔 혼자, 고독, 개별, 소외, 배제를 뜻하는 단어가 여럿 나온다. 시인은 이 단어들에 갇히거나 상처받은 이들을 시어로 위로하려 한다. 그는 시집을 두고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고 썼다. 죽은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항상 기억하려는 간절한 바람을 시집에 담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예은이에 관한 시에서 다시 애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시집을 두고 “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했다. 사랑의 정의를 두고 진은영은 “포기하지 않는 힘인 것 같다. 사랑의 전문가라는 게 있다면 실패의 전문가일 것이다. 그 실패에도 사랑과 치유는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시집은 치열하게 고통과 슬픔을 이야기하며 치유와 극복의 기원을 전한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건네는 12편의 ‘다정함’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 | 민음사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잃고 집단의 언어가 사적인 언어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없다”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의 말은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공적·사적 모든 영역의 언어는 오염됐다. 언어를 무기로 서로 생채기 낸다.

토카르추크는 강연록과 에세이 12편을 묶은 책에서 내내 ‘공감’ ‘교감’ ‘연결’ ‘통합’ ‘타인’ 같은 말을 강조한다. 세상을 치유하는 것도 ‘문학’이다. “타인의 시각, 그리고 개인의 고유한 정신을 통해 여과된 세계관을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에는 항상 일종의 이타심이 함께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다정함’은 “(인간들이) 겪었던 상황들과 기억들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모든 작은 조각과 파편들에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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