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채팅창에 눈이 옵니다".. 시각장애인도 카톡 '잘'써야 한다는 이 사람
"채팅방에 눈이 와요."
수도권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21일, 카카오톡 채팅방에서도 눈이 내리자 스마트폰이 이같이 말했다. '보이스오버'·'토크백'(Talk back)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낭독기가 눈 내리는 채팅방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구현한 덕분이다. 창밖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게 소리도 냄새도 없는 눈을 시각장애인들은 카톡으로 인지하게 되는 셈이다.
중학생 때 갑자기 시력을 잃어 현재 시야가 40% 정도 남은 김혜일 카카오 DAO(디지털접근성책임자)는 "저 같은 저시력자도 밖에 눈이 오는지 잘 몰라요. 눈은 소리가 나는 게 아닌 데다, 비처럼 공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요"라며 "카톡에서 '눈이 온다'고 알려주면 그제야 주변 사람들에게 '밖에 눈이 오나 봐요'라고 얘기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실제 카카오톡은 화면낭독기로 PC·모바일 버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국내 유일 메신저다. 타 기업의 접근성 담당 직원들도 카카오톡으로 소통할 정도다.
올해 김 DAO는 카카오에 '접근성 DNA'를 심는 것에 주력했다. 기획·개발·운영·QA 전 과정에 접근성을 고려하도록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를 만든 것이다. 예컨대 멜론의 DAO 담당자가 접근성을 개선코자 할 때 △기획·개발자가 서비스를 개편하고 △링키지랩 접근성팀이 QA과정에서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상 전 사원이 접근성 업무를 하게 된 셈이다.
이용자가 1천만명 이상인 카카오 서비스 10여개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접근성을 고려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개발 일정에 쫓기는 IT업계 특성상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다. 내일이 출시예정일인데 접근성을 개선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다. 이때 접근성을 해결하고 서비스를 출시할지, 출시 후 접근성을 빠르게 개선할지 담당부서와 협의해 조율하는 게 DAO 역할이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었지만, 범용적으로 쓰이는 사례도 많다. 전화나 알림이 오면 스마트폰 카메라 플래시가 깜빡이는 기능이나 한 손으로 애플워치를 조작하는 '어시스티브 터치'는 각각 청각·지체장애인을 위해 탄생했다. 다크모드 대신 사용했던 카카오톡 고대비 테마나 ARS 인증시 숫자를 음성으로 들려주는 게 아니라 화면에 보여주는 카카오 계정인증 방식도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이지만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비장애인에겐 '티도 안 나는' 접근성 개선 업무는 늘 지난한 과정을 동반한다. 카카오는 내년 1월부터 약 50만개에 달하는 모든 카톡 이모티콘에 대체텍스트를 제공키로 했는데, 현실화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지난 11년간 2400억건을 주고받을 정도로 이모티콘이 일상적인 소통수단이 되면서 시각장애인이 대화에서 소외된다는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3년에 걸쳐 전 이모티콘에 일일이 텍스트를 입력했다.
국내엔 장애인이 게임을 즐기기 위한 접근성 가이드라인도 없다. 이에 김 DAO는 카카오게임즈와 게임 접근성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적용한 게임 개발까지 추진 중이다. 가이드라인엔 △'돋보기' 등 저시력자를 위한 화면 및 UI 확대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 조정 △지체장애인을 위한 컨트롤러 개별화 기능 등 접근성 필요성과 적용범위, 구현지침 등이 담겼다. 향후 장애 이용자 대상 테스트를 진행해 가이드라인을 고도화할 예정이다.
김 DAO의 소명은 본인에게 기회가 된 디지털 시대를 가급적 많은 사람이 누리는 것이다.
"저는 비대면 디지털 근무가 가능한 이 시대에 태어나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편한 방식으로 글자크기나 명도·대비 등을 조절해 문서를 볼 수 있으니까요.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요.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준 디지털 기술을 다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점에서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층을 위한 방안도 모색 중입니다."
윤지혜 기자 yoonj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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