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2022년에 버려야 할 것들

천남수 2022. 12. 2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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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버려야 할 것은 상대를 향한 조롱과 증오, 무자비한 공격만이 아니다. 인간성 상실로 인한 피폐해진 우리 자신이다.

2022년의 끝자락이다. 돌이켜 보면, 2022년은 암흑과도 같은 해였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컸다. 3년간 지속된 코로나 펜데믹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마스크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됐다. 맨얼굴로 다니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됐다. 이러한 일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고도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상은 가파르게 갈리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진영 간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를 향한 조롱과 배척은 금도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됐다. 최소한의 협의가 아닌 힘에 의한 협상만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느냐 때문에 이익이나 손해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국민들도 정치권 못지않게 상대를 향해 공격적 태도를 취한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을 선동한 까닭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치중립적 주장이 설 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북한의 남쪽을 향한 독설은 날이 갈수록 독해지고 있다. 이들의 독설을 듣고 있자면, 마치 전쟁중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북한의 고육책이라고 하더라도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쪽을 향한 북한의 독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70여 년 전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새김질 되는 악몽을 꾸는 요즘이다.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의 창궐보다 더 큰 근심은 기후변화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겨울 강추위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남쪽 지방에는 폭설이 쏟아졌다. ‘강베리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강원도는 연일 혹한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추위는 북극 온난화로 찬 공기가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한반도 주변에 계속 머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름철도 마찬가지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늘어나고 있다. 비가 필요한 봄철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파종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확의 계절 가을철에도 반갑지 않은 가을장마가 연이어 공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세계경제의 위기는 고스란이 우리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IMF와 금융위기에 못지 않은 경제한파가 한반도에 몰아치고 있다. 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채권시장이 데미지를 입을 정도로 취약한 경제구조에서 고물가는 서민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 대응을 위해, 그리고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면서 세상에 돈이 말라버렸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의 몫이 됐다.

▲ 가치중립이라는 주장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즘이 살아나야 살만한 세상이 된다.

2022년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2022년에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나누어진 진영 간의 절벽, 그런 인식과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고 해서 정치를 전쟁처럼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국민들은 그런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방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권이 정신을 차린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진영 간 대립처럼 극단적 주장만 펴지 말고 상황관리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에 방점을 찍는다면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보수·진보의 주장과 반발이 무서워 가치중립적 주장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2022년은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풍조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진영 간 격돌도 인간성 상실에서 비롯됐다. 경제적 양극화 문제 역시 강자독식 의식에서 기인한다. 휴머니즘이 없는 경제는 폭력일 뿐이다.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사는 남북한 이산가족을 생각하는 것도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의 원천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2022년을 잊지 못하게 하는 이태원 참사, 이를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다. 2022년에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인간성 상실의 세태’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즘의 부활을 꿈꾼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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