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위태로운 야생동물의 똥이 우리에게 하는 말 [반려인의 오후]

김영글 2022. 12. 24. 07:3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겨울이 완연해진 11월 중순, 예정에 없던 태백행 버스를 탔다.

녹색연합에서 진행하는 야생동물 탐사를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야생동물 탐사는 이 동물들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일이다.

야생동물이 남기는 가장 뚜렷한 흔적은 똥이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트레일캠 영상에 찍힌 야생 삵의 모습. ⓒ녹색연합 제공

겨울이 완연해진 11월 중순, 예정에 없던 태백행 버스를 탔다. 녹색연합에서 진행하는 야생동물 탐사를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삼척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의 자취를 추적하는 1박2일의 일정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만만하지 않았다. 사람을 위해 만든 길이 아니라 동물들이 다니는 길로만 가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절로 사족보행이 나왔다.

울진 삼척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이 집단 서식하는 지역으로, 산양 외에도 담비와 수달 등이 사는 생태계의 보고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녹색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울진에서 로드킬 당하거나 아사한 산양이 58마리에 이른다. 올해 발생한 두 차례의 큰 산불로 서식지가 훼손되어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하다. 울진에 살던 산양들은 대부분 삼척으로 피난을 갔다. 야생동물 탐사는 이 동물들이 보이지는 않더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일이다.

야생동물이 남기는 가장 뚜렷한 흔적은 똥이었다. 활동가분들께 한 차례 교육을 받았지만, 산양이나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은 똥의 형태가 비슷해 분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삵의 똥도 봤다. 삵은 육식동물이라 똥에 다른 작은 동물의 뼈나 털 같은 것이 섞여 있곤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집 고양이들의 똥과 생김새가 똑같아서 신기했는데, 같은 식육목 고양잇과의 동물이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똥을 그토록 자세히 들여다본 건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집 고양이가 아팠을 때도 똥의 상태를 관찰한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했던 이야기들도 하나둘 떠올랐다. 혼자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존재에게 똥은 단순한 똥이 아니다. 타인이 읽어주어야 할 소중한 생명의 정보이자 메시지다.

몇 해 전부터 활동가들은 여기저기 트레일캠을 설치해 야생동물의 모습을 시각 자료로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나는 트레일캠에 찍힌 야생동물의 이미지들을 오래 들여다봤다. 어둠 속에서 나뭇잎을 야금야금 먹는 모습. 인적 없는 시간에 천진하게 뛰어노는 모습. 터전을 찾아 이동할 때 새로 생긴 국도에 가로막혀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 밤에는 텐트 속에서 집에 남겨두고 온 고양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설치해둔 웹캠을 켰다. 스마트폰 화면에 내 방 풍경이 떴다. 나의 고양이들은 벽과 지붕이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서식지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안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을 주었다.

재난은 언제나 가장 힘없는 존재에게 가장 가혹하다. 올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피란을 떠나는 모습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와중에, 짐 보따리와 함께 개와 고양이를 들쳐 업고 가는 장면들이 이목을 끌었다.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대피소에 함께 머무를 수 없는 국내 현행법에 대해서도 질문이 제기되었다. 반려동물의 경우도 그러한데, 농장 동물이나 한발 더 나아가 야생동물은 삶의 유지와 복구가 더욱 어렵다.  

숲속의 야생동물들은 산불이 나면 피할 수도, 대응할 수도 없다. 한편에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큰돈을 들이는 국립공원이 있고, 한편에는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이제는 사각지대에 더 많은 시선을 보내야 한다.

김영글 (미술작가)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