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과 임재현, 명불허전 1, 2순위

김종수 2022. 12. 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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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돌아보기③] 2000년 드래프트

 

‘잘 뽑은 신인은 우승의 핵심 퍼즐’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포지션이나 역할을 맡아줄 선수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있던 상황에서 거기에 딱 맞는 선수가 추가될 경우 화룡점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우승을 차지할 당시의 SK가 그랬다. 당시 SK의 결정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그해 전체 1순위 조상현을 데려오기 위해 1998년 드래프트 당시 1순위로 지명했던 현주엽을 내어주는 트레이드를 감행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역대급 슈퍼 트레이드로 회자되고 있다. 일찌감치 국가대표로도 선발되는 등 유망한 슈터로 평가받던 조상현이었지만 현주엽은 서장훈과 더불어 몬스터급 거물로 평가받던 스타였다. 이런저런 사정을 떠나 이름값에서부터 차이가 컸다. 하지만 SK는 팀 밸런스상 조상현이 맞는 조각이라고 판단했고 거기에 더해 본인들이 3순위로 뽑은 황성인까지 주전으로 밀어주며 창단 첫 우승을 만들어냈다.


이는 2000년 드래프트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고려대 포워드 이규섭과 중앙대 가드 임재현은 강력한 전체 1순위 후보였다. 이규섭이 살짝 앞서 있는 듯 했으나 임재현이 1순위로 지명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였다. 지명은 팀 상황에 따라 갈렸다. 1순위 지명권을 보유중이던 삼성은 이미 주희정, 강혁이라는 확실한 가드자원이 팀에 있었다. 반면 골밑에서 힘을 보태줄 존재감있는 파워포워드가 아쉬웠던지라 망설임없이 이규섭을 선택했고 결과는 프로 첫 우승으로 이어졌다.


임재현은 여려보이는 외모와 달리 데뷔전부터 넘치는 파이팅을 보여줬다.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록 1순위는 놓쳤지만 프로에서의 활약에서는 뒤질 생각이 없다”는 말로 이규섭에게 공개 도전장을 던질 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도 강해보였다. SK 역시 중앙대 전성시대를 이끈 임재현의 기량을 높게 평가했던지라 황성인의 군복무로 인해 공백이 생긴 주전 1번자리를 바로 그에게 맡겼다.
 

 

삼성의 마지막 퍼즐 이규섭, 1순위 위용 뽐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KBL에서는 잘 뽑은 신인이 기대만큼 활약해줄 경우 해당팀은 곧바로 전력을 재정비해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조상현을 시작으로 이규섭, 김승현, 김주성, 하승진, 강병현, 오세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규섭(45‧198cm)은 고려대 재학시절부터 내외곽을 오가며 위력적인 포스트 플레이와 슈팅게임이 모두 가능한 전천후 빅맨으로 꼽혔다.


역대급 트윈타워로 꼽히는 중앙대 김주성, 송영진을 홀로 상대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만큼 다각도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당시 흔치 않은 파워와 사이즈를 겸비한 묵직한 토종 빅맨이면서도 어느 정도 스윙맨스러운 움직임까지 가능한 토탈 패키치 자원이었다.


이렇듯 많은 쓰임새를 가진 이규섭의 존재로 인해 삼성 입장에서도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수월했다. 당시 삼성은 모처럼 만에 외국인 농사에서 성공한 상태였다. 묵직한 파워에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갖춘 아티머스 맥클래리(49‧191cm)와 성실하고 안정적인 빅맨 무스타파 호프(50‧201cm) 조합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앞선의 주희정, 강혁에 외곽에는 리그 최고의 슈터 문경은이 버티고 있었다. 어지간한 팀에 가면 주전급이라는 김희선이 제대로 된 출장시간을 받지 못하고 벤치를 달굴 정도였다. 기존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던 상황에서 사이즈와 파워를 겸비하고 수비에 능한 장신포워드 자원이 그나마 아쉬웠는데 그 역할을 이규섭이 완벽하게 해줬다.


신인 이규섭은 알짜 블루워커 자원이었다. 기록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어지간한 상대 단신 외국인선수 수비를 혼자서 맡을 정도로 궂은 일을 많이 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다른 팀원들이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외곽슛 능력도 있지만 기회가 나면 끊임없이 자신보다 작은 선수들을 상대로 포스트업을 시도하며 많은 숫자의 파울을 유발하기도 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 도중 입은 부상으로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하지는 못했으나 삼성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 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인왕 역시 그의 차지였다. 이후 이규섭은 3점슛을 갈고닦아 장신슈터로 이름을 떨쳤으나 많은 이들은 “살림꾼 역할이 돋보였던 신인 시절이 가장 무서웠다’고 입을 모았다.

◆ 이규섭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522경기 출전 평균 10.36득점, 2.61리바운드, 1.24어시스트, 0.49스틸
 


뒤늦게 자신의 장점을 깨달았던 2순위 임재현

임재현(45‧182cm)은 신인 시절 첫해 45경기에서 평균 11.13득점, 5.24어시스트, 3.11리바운드, 1.56스틸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삼성 우승에 공헌한 이규섭이 너무 인상적이었을뿐 어지간한 해였다면 신인상을 수상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이었다. 더불어 그가 향후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느냐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 커져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인 시절의 성적은 커리어하이가 되고 말았다. 정교한 슛, 빠른 스피드, 악착같은 근성 등 장점이 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점 또한 뚜렷했던지라 안좋은 쪽으로 더 부각되었고 그로인한 부담감이 선수를 위축시켰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아무 것도 의식하지않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신인 시절의 플레이가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임재현은 신장만 놓고 봤을 때는 1번에 맞는 선수다. 실제로 대학 때까지 포인트가드로 또래 중 랭킹 1, 2위를 다퉜다. 적어도 맞지 않는 옷의 영향이 아마 때는 별반 드러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프로에서는 달랐다. 스피드, 체력, 슈팅, 패싱능력 등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나쁘지 않았지만 시야, 볼간수 능력 등에서 단점이 더 두드러졌고 본의 아니게 혼자 팀 리딩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비난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잘하는 부분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임봉사’라는 치욕스런 별명까지 따라붙었다. 어찌보면 임재현은 사용법만 달리 가져가면 더 잘할 수 있는 선수였다. 볼 운반만 어느정도 분담할 수 있는 파트너가 옆에서 함께 하던지 아니면 아예 슈팅가드 역할을 줬다면 장점을 더 살릴 수 있었다. 당시 공격형 가드로 불렸던 신기성보다도 더 공격적인 선수를 이상민, 김승현처럼 쓰려고했으니 잘될 리가 없었다.


선수 생활 말년 임재현을 그렇게 쓴 지도자 있었으니 KCC 허재 감독이었다. 허감독은 임재현을 주전급 식스맨으로 보직변경을 했고 리딩보다는 단순하게 수비와 슛에 집중시켰다. 리딩부담을 벗어버린 임재현은 수비시에는 신명호, 강병현 등과 함께 KCC의 앞선 질식수비를 책임졌고 공격에서는 내외곽을 오가며 순도 높은 결정력을 보여줬다. 1번 출신 답게 보조리딩도 우수했다. 베테랑으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매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고 젊은 선수 위주였던 팀에 2% 부족했던 관록을 책임졌다. 팀도 우승을 거두었고 이래저래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잘 찍게되는 순간이었다.

◆ 임재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625경기 출전 평균 7.52득점, 2.41리바운드, 3.53어시스트, 1.33스틸
 


조금씩 아쉬웠던 나머지 픽

이규섭, 임재현이 가장 돋보이기는 했으나 김기만, 이흥배, 은희석, 이정래 등도 아마시절에는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다. 3순위 김기만(46‧192cm)은 '한국의 데니스 로드맨'으로 불렸다. 왕성한 활동량으로 코트를 종횡무진 활보했고 상대에 관계없이 거침없이 몸싸움을 벌이며 궂은일, 수비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골드뱅크 역시 그러한 부분에 기대를 걸고 3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김기만을 품에 안았다. 당시 상무에 입대한 주전포워드 변청운의 빈자리를 그가 메워주기를 기대했다. 적극적인 플레이를 통해 수비에서는 어느 정도 몫을 해주었느나 주전급으로 뛰기에는 공격력이 너무 빈약했다. 더불어 로드맨이라는 별명과 달리 리바운드에서 공헌도가 적었다. 수비시에 다소 거친 부분이 많아 팬들 사이에서 ‘킬기만’이라는 좋지않은 별명이 따라붙기도 했다.

◆ 김기만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315경기 출전 평균 3.43득점, 0.93리바운드, 0.49어시스트, 0.45스틸

이흥배(45‧180cm)는 빠른 스피드를 살린 돌파와 안정적인 경기리딩이 특징인 1번 기대주였다. 전체 4순위, 가드중 두번째로 선발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발전 가능성은 높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첫 시즌부터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여전히 주전 포인트가드에 목말랐던 오리온스가 계속해서 1번자원을 지명하게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후 드래프트에서 김승현, 박지현 등이 연달아 지명되자 이흥배가 뛸 시간은 많지않았다.

◆ 이흥배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0경기 출전 평균 0.88득점, 0.58리바운드, 0.49어시스트, 0.77스틸

은희석(45‧189cm)은 당시 흔치않은 장신가드로 주목을 받았다. 가드는 물론 사이즈를 살려 다른 포지션도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던지라 쓰임새가 다재다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가드로서의 능력치는 높지 않았던지라 이후 후배 이정석에게 밀리는 등 주전보다는 키 식스맨으로서 활약했다.


이후 FA먹튀 이미지 등으로 팬들 사이에서 좋지않은 얘기도 많이 들었으나 구단 내부에서는 평판이 좋았다는 후문이다. 후배들을 잘 다독이며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등 코트 밖에서의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젠가 신인 시절 모잡지에서 이규섭, 임재현, 은희석의 인터뷰가 진행된 적이 있는데, ‘셋 중에서 가장 싸움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은?’이라는 질문에 이규섭, 임재현이 말없이 은희석을 쳐다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 은희석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87경기 출전 평균 5.41득점, 2.57리바운드, 3.22어시스트, 0.94스틸

◆ 최병훈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83경기 출전 평균 1.71득점, 0.61리바운드, 0.39어시스트, 0.23스틸

7순위 이정래(45‧183cm)는 아쉬운 이름중 하나이다. 고려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당시만해도 동기중 1, 2위를 다툴만큼 기대치가 컸다. 외곽슛이 장기였는데 폭발력과 안정감을 겸비했던지라 무려 '제2의 이충희'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고질적인 부상과 가정사 등이 겹치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프로에서도 그저그런 식스맨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 이정래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16경기 출전 평균 3.97득점, 0.87리바운드, 0.76어시스트, 0.35스틸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힘이 좋았던 빅맨 박종덕(46‧198cm)은 삼보 시절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 성장에 실패했다. 당시 팀내 베테랑이었던 허재는 자신이 찍은 선수에게 관심을 몰아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박종덕 역시 허재의 시선을 받았던 선수중 하나다. 허재는 벤치에서는 물론 경기중에도 박종덕을 붙잡고 이런저런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모습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한계든 다른 외부요인이 있던지간에 자신만의 장점은 있어보였지만 4시즌만에 은퇴의 길을 걷고만다.

◆ 박종덕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1경기 출전 평균 2.05득점, 1.74리바운드, 0.3어시스트, 0.18스틸

정훈종(46‧205cm)은 WKBL 레전드 4번 정선민의 친동생으로 유명세를 탄 케이스다. 좋은 사이즈에 중거리슛 능력까지 갖췄음에도 기대치만큼 성장 하지못했다. 외려 순위만 놓고보면 10순위 이병석(45‧190cm), 2라운드 2순위 강대협(45‧188cm) 등이 알짜로 꼽힌다. 이병석은 악착같은 수비와 쏠쏠한 3점슛 능력을 앞세워 기량발전상, 우수후보선수상 등을 받은바있으며 강대협은 데뷔팀 포함 무려 8번이나 팀을 옮겨다니며 통산 2664득점, 594어시스트, 239스틸이라는 녹록치않은 누적기록을 남겼다.

◆ 정훈종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98경기 출전 평균 0.9득점, 0.59리바운드, 0.2어시스트, 0.16스틸

◆ 이병석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84경기 출전 평균 5.07득점, 1.07리바운드, 1.07어시스트, 0.61스틸

◆ 강대협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20경기 출전 평균 6.34득점, 1.11리바운드, 1.41어시스트, 0.57스틸
 


지도자로서의 성공은 선수 시절과는 다르다

‘지도자로서의 성공은 선수 시절과는 별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선수 시절 잘했어도 지도자는 또 다른 영역인지라 성공 여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도자 쪽에서 성공한 이들은 보면 잘 나갔던 스타플레이어보다는 화려한 선수 시절과 거리가 멀었던 인물들이 더많다.


한시대를 풍미한 이충희, ‘이조추트리오(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현주엽 등은 지도자로서 아쉬운 부분이 더 많았으나 주로 식스맨으로 커리어를 보낸 전창진, 김승기, 유도훈 등은 오랜시간동안 롱런에 성공하고 있다. 허재, 신선우 등 예외도 있으나 ‘스타 출신은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설은 여전히 유효한 모습이다.


2000년 드래프트 출신중에서도 지도자의 길을 걷는 이는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의외로 가장 성공한 이는 2라운드 5순위 김완수(45‧181cm)다. 선수로서는 불과 2시즌을 뛰고 은퇴한지라 기억하는 이들 조차 거의 없지만 온양여중, 온양여고, 부천 하나원큐 코치 등 여자농구 쪽에서 착실하게 지도자 경력을 쌓아나간 끝에 현재는 WKBL에서 잘나가고 있다. 청주 KB 스타즈 감독으로 부임하기 무섭게 데뷔 첫해인 2021-22시즌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2007~08시즌 인천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 2012~13시즌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에 이어 세 번째 기록이다.


선수로서는 아쉬운 커리어를 갔던 은희석 또한 모교 연세대에서 지도력을 인정받더니 올시즌 서울 삼성 감독으로 취임해 첫시즌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약체로 전락한 삼성의 체질개선을 이뤄낸 것을 비롯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중이다. 최근 KBL 젊은 감독중 가장 눈에 띄고있는 블루칩으로 꼽힌다.


물론 1, 2순위였던 이규섭, 임재현의 지도자로서의 행보도 어둡지는 않다. 현재 SPOTV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인 이규섭은 지난시즌까지 삼성의 수석코치와 감독대행으로 경험을 쌓았다.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며 각종 전략 전술에 능한지라 길지않은 시간안에 지도자 쪽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재현은 고양 오리온 코치, 배재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현재는 창원 LG에서 코치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으며 김기만 또한 마지막 소속팀 SK에서 D리그 감독, 코치를 거쳐 현재는 수석코치로 전희철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이흥배같은 경우 단대부고, 숭의여고, 대진고, 용산중 코치를 거쳐 현재는 광신방송예술고 코치로 있으며 2022 U-16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대표팀 코치를 맡는 등 아마농구에서 활약중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유용우 기자
​#이미지편집_김종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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