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개의 알람으로 나뉜 세계…“존재하는 모든 것이 작품”[尹대통령이 반한 화가③]

2022. 12. 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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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정교한 작업, 오후에는 실험적인 ‘신작업’
커피와 산책을 좋아하는 작가…작업과 영감의 반복
작품을 넘어 공간과 행위까지 모든 것이 ‘예술 활동’
픽셀과 수학으로 쌓아가는 기억 “파편과 확장의 연속”
픽셀 드로잉 아티스트 김현우 작가 ‘픽셀의 기억’ 전시
'픽셀드로잉 아티스트' 김현우 작가가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픽셀 드로잉 아티스트 김현우 작가의 휴대전화에는 46개의 알람이 맞춰져 있다. 오전 4시50분~6시10분 사이에 일어나 오후 11시29분 잠들 때까지 그의 하루가 46개의 단위로 쪼개져 있는 것이다.

김 작가는 오전 7시 세계를 ‘오픈’한다. 주로 픽셀 작업과 같이 정교하고 고도로 집중을 해야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김 작가는 티타임과 산책 일과가 알람에 자주 등장한다.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하고, 작업 중간에 산책을 하며 또다시 외부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오후 6시40분에는 ‘신작업’을 시작한다. 활동반경이 큰 작업을 주로 하는 시간이다.

김 작가에게 작품은 캔버스에 그려진 최종 ‘결과물’만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페인팅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십 개의 물감통도 그에게는 또 다른 작품이다. 형형색색의 물감통을 버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둔 김 작가는 어느 날 따가운 햇살이 스며든 곳에 펼쳐놓았다. 햇빛이 물감에 반사되며 또 다른 색감을 만들어냈다.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되는 순간이다.

수학드로잉 공식을 그리는 마카가 일정한 굵기로 배어 나올 수 있도록 휴지에 찍어내면서 다양한 색감이 물들자 이 역시 또 하나의 조형물이 된다. 김 작가가 2017년 입주했던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스튜디오 인근에서 수집했던 나무는 또 다른 오브제로 탄생해 그의 기억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밤 11시까지 스튜디오에서 창작을 하고 집에 가는 길 창밖으로 보았던 반짝이는 롯데월드는 정교한 픽셀 작업으로 재현됐다.

이처럼 작가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과 실체들은 형체가 사라지든, 사라지지 않든 김 작가의 작품 안에 기억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자신이 한 작업을 자신이 있는 공간에 전부 배치하기 때문에 김 작가의 작업실은 작가의 수많은 기억들로 가득 찬다. 김 작가의 어머니이자 전시 기획자인 김성원씨는 “공간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것 같다”며 “공간도 본인이 예술적으로 해석하고 구현하고 싶어 하기에 본인의 영역에 (부모님도)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기억이 쌓이고 파편화돼 조용히 쌓여가고, 확장돼 가는 것이 본인에게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며 “그래서 하루라도 픽셀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괴로워한다”고 밝혔다. 외국에 나갈 때도 알람 시간에 맞춰 픽셀 그림을 그리는 김 작가 덕분에 가방 한가득 미술 도구를 챙긴다.

‘픽셀드로잉 아티스트’ 김현우 작가의 명함. 왼쪽이 김 작가이고 아빠, 동생, 엄마 순이다. [작가 제공]

김 작가에게 픽셀드로잉과 수학드로잉은 ‘기억’을 쌓아가는 일이다. 다양한 크기의 네모를 쌓아 색을 넣어 기억을 담는 픽셀 작업과 숫자와 도형, 기호를 쌓아 공식을 만드는 수학드로잉 작업은 모두 기억의 유닛이다. 이를 계속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쌓아가고 있다. 살면서 수많은 기억을 쌓아가는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김 작가는 “나의 픽셀은 확장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작품들을 어떤 순서로 선보일지 2027년까지의 계획이 이미 김 작가는 정해놓았다. 김 작가의 계획을 현실화하는 것이 기획자인 엄마의 역할이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수줍어하던 김 작가와 인터뷰를 마치고 전시를 둘러보았다. 그때 김 작가가 한 그림으로 기자를 안내하며 “아까 그 기억입니다”이라고 말했다. 도록을 찾아보니 ‘므네모시네 수학드로잉’이라는 작품이다. 기자가 인터뷰에서 ‘므네모시네’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작품을 소개한 것이다. 김 작가가 보여준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이름이 행렬을 맞춰 적혀있었고, 그중에 기자의 이름이 포함됐다. 이번 인터뷰가 김 작가에게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작가의 명함 뒤편에는 ‘패밀리 그래프’라는 작품이 그려져 있다. 김 작가가 그린 가족 그림이다. 부모님의 관심이 치우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알면서도 속상했을 김 작가의 동생이 눈에 띈다. 아빠는 마음에 단단한 중심을 잡고 있고, 동생을 걱정하는 엄마와 동생이 같은 배경에 놓여 있다. 김 작가에게 있어 가족의 의미를 엿볼 수 있기에 한동안 명함을 바라보았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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