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한복만 떼쓰는 게 아니야…中 "땅·바다도 다 내 것" [김지산의 '군맹무中']
[편집자주]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들이 코끼리를 더듬고는 나름대로 판단한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잘 보이지 않고, 보여도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국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그려보는 코너입니다.
베트남이 중국에 한 방 먹이는 일이 최근 드러났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영유권 확장에 베트남이 똑같은 방법으로 맞선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베트남이 올 하반기 스프래틀리 군도의 여러 전초기지에서 준설과 매립 작업으로 420에이커(약 170만㎡)의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10년 동안 일군 땅을 다 더하면 540에이커(약 220만㎡)정도다.
스프래틀리 군도는 중국에서는 난사, 베트남에선 쯔엉사 군도라고 부르는 곳이다. 흔히들 말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이 각자 자기네 바다라고 우기는 그곳이다.
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가 위성 이미지로 베트남이 스프래틀리 군도 4개 지점에서 매립 작업을 확장하는 걸 확인했다. 베트남은 다른 5개 지점에서도 새로운 준설 작업을 수행했다고 한다.
AMTI는 남이트(Namyit), 피어슨 리프(Pearson Reef), 샌드케이(Sand Cay), 테넌트 리프(Tennent Reef) 섬에 위치한 베트남의 중형 전초 기지가 대규모 확장 공사 중이라고 주장했다. 남이트, 피어슨 리프 섬의 경우에는 이미 대형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항구가 만들어졌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매립지 규모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이 만든 3200에이커(약 1295만㎡) 이상의 토지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지만 베트남의 이전 노력보다 더 크다"며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주요 움직임"이라고 밝혔다.
중국도 가만히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스프래틀리 군도 4개 무인도에서 개발 사업을 착공해, 사주(砂洲) 규모가 몇 년 사이 10배 커졌다고 전했다. 만조 때 부분적으로 노출되던 사주에 굴착기 흔적까지 보였다는데 블룸버그는 중국의 건설 활동이 현상 유지를 변경하려는 것인지, 군사화하려는 것이지 판단하기 이르다고 부연했다.
스프래틀리 군도를 비롯해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샤·베트남명 호앙사 군도)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베트남은 스프래틀리나 파라셀 모두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자기 영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을 U자 형태로 9개의 선을 그은 구단선을 근거로 전체의 90%가 중국 영해라고 한다.
그림을 보자.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모두 크고 작은 '오버'들을 하고 있는데 중국의 주장은 황당한 면이 없지 않다. 중국이 주장하는 남해구단선의 근거는 뭘까.
1947년 중국을 대표하던 중화민국 정부, 즉 국민당 정부가 남중국해 4개 군도 모두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기 위해 만든 11단선에서 비롯됐다. 1949년 지금의 중국이 11단선을 남해구단선으로 변경하고 남중국해 4개 군도를 광둥성 하이난 행정구에 편입시켰다.
남중국해는 동사군도 중사군도 서사군도 남사군도 이렇게 4개 군도로 이뤄졌다. 이중 대만과 중국이 실효적 지배하고 있는 동사군도와 중사군도에서는 영유권 분쟁이 없다. 중국이 베트남으로부터 무력으로 빼앗아 실효적 지배를 하는 서사군도는 두 나라 사이 분쟁이 있긴 해도 군사적 긴장은 없는 편이다.
문제는 남사군도다.
이 바다가 원래부터 시끄럽던 곳은 아니다. 미국이 필리핀에서 철수를 결정한 1992년 분쟁지역이 됐다. 중국이 해양법을 만들더니 남사군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표지석을 설치했다. 1995년에는 필리핀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던 팡가니방 산호초(Mischief Reef)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1998년에는 배타적경제수역 및 대륙붕법을 제정해 해저자원 관할권을 확대했다. 호랑이가 떠나자 늑대가 판을 치는 겪이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 주변 5개국이 반발했다. 그중에서도 영해와 영해가 크게 겹치는 베트남과 필리핀 반발이 극심하다. 베트남의 경우 1974년 서사군도를 중국에 빼앗긴 경험이 있는 데다 남사군도에서 가장 많은 해양 지형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중국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다.
중국 등이 남중국해를 손에 넣으려는 이유는 뭘까. 50억~20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 매장량은 베네수엘라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여기에 연안국 국민들은 남중국해에서 연간 2600만톤 이상 어류를 얻는다. 단백질 섭취의 22.3%를 이 바다에 의존한다.
그들만의 다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미국까지 개입했다. 해상 교통 관점에서 남의 일이 아니어서다. 세계 원유무역의 3분의 1, 천연액화가스(LNG) 수송의 2분의 1이 이 바다를 지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의 에너지 수입의 80~90%가 남중국해를 통과한다. 만약 어느 한 국가가 남중국해를 봉쇄하면 세계 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미국은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뿐이라고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교통정리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 필리핀이 2013년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중국을 제소하자 PCA가 2016년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중국이 필리핀 주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중국은 귀를 막았다. '원래' 중국 바다이며 섬이었다는 식이다.
중국은 동남아시아에 외교적으로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그러나 남중국해 문제로 주변국 국민에게 원한을 사게 된다면 중국의 동남아 전략은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흔드는 통에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반감이 깊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베이징(중국)=김지산 특파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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