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떠나볼까?” 기지개 켜는 여행업 새 트렌드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 여행업계가 모처럼 활력을 띠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여행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코로나19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는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3년여 만에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서 벗어나 엔데믹(주기적 유행)으로 바뀌어 가는 상황에서 그동안 억눌러 왔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모처럼 활기를 띤 분위기에 업체들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등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을 거치는 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의 모습 또한 달라지고 있고 여행사들 또한 이와 같은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발굴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이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여행 트렌드를 중심으로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한국 여행업계의 움직임을 담았다.
트렌드 1 – 떠나고 싶은데 경비가 부담 된다면…대세는 ‘실속 여행’
여행업계의 실적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지표는 속속 나오고 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한 달 동안 예약된 패키지 여행 건수는 2021년과 비교해 353%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1월보다 오히려 1% 웃도는 실적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해외 여행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하늘길’이 막히며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막혔던 하늘길이 뚫리며 해외여행 수요가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은 77만3480명으로, 2021년 11월과 비교해 52.8%나 늘어났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요소는 바로 ‘고물가’다. 항공권을 비롯해 호텔 등 대부분의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의 시선은 조금이라도 더 싸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실속 이벤트’로 쏠리고 있다. 한국 여행 업체들 또한 항공권과 숙소를 결합해 ‘최저가’로 선보이는 등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이며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실속 여행 트렌드를 가장 먼저 선점하고 나선 것은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다. 2022년 10월 항공권과 숙소를 결합형으로 묶어 최저가로 선보이는 ‘국내가듯 해외어때’를 론칭했다. 2022년 11월 ‘최저가 챌린지’를 선보였다. 여기어때에서 판매하는 해외여행 상품이 업계 최저가가 아니라면 차액을 200%까지 포인트로 보상해 준다.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최저가 보상제’를 도입한 곳은 여기어때가 처음이다.
모두투어는 여행 수요가 몰리는 연말을 겨냥해 ‘메가 세일’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2022년 12월 30일까지 여행 상품을 최대 50%까지 할인이 적용된 가격에 판매하는 등 역대급 이벤트를 내걸었다. 이와 함께 2023년 설 연휴를 맞아 최대 9일에 이르는 실속형 패키지 상품도 선보였다. 에어부산·티웨이 등 항공사와 전세 계약을 하고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트렌드 2 – 연말 여행은 ‘아주 가볍게’ 혹은 ‘아주 느긋하게’
인크루트가 회원 944명을 대상으로 ‘2022년 연말 휴가 여행 계획’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해 12월 1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연말 여행 계획’이 있다고 응답(61.2%)했다. 그중 해외여행을 계획한 이들은 총 40.7%로, 이들 중 해외여행 계획만 밝힌 이들이 25.8%, 국내와 해외여행을 모두 준비 중이라고 밝힌 이들이 14.9%였다. 인크루트는 이보다 앞서 2022년 5월에도 ‘여름휴가 계획’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해외여행 계획을 밝힌 응답자들은 23.6%였다. 6개월여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겠다는 응답자들의 수가 크게 많아졌다.
해외여행지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인크루트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여행 목적지를 묻는 질문에 일본(46.4%)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베트남(13.2%), 태국(9.8%) 등이 뒤를 이었다. 여행 경비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인근의 동남아 지역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실질적인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G마켓이 2022년 10월 28일부터 11월 27일까지 해외 항공권 판매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여행지의 순위를 발표했는데,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일본이 차지했다. 일본이 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데다 엔저 현상으로 인해 ‘가심비’가 좋은 여행지로 정평이 나 있다. 관광·미식·쇼핑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에 G마켓 등은 ‘일본 여행 전용관’을 오픈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과 함께 동남아 지역이 인기 해외여행지로 떠오르면서 눈에 띄는 트렌드는 짧은 여행이다. ‘여행 기간’이 3일 이내로 짧아졌다. 인크루트의 설문 조사 결과 또한 여행지에서의 체류 기간을 묻는 질문에 ‘3일 이하’라는 응답이 54.8%로 가장 많았다. 주말 동안 국내 여행을 즐기듯이 ‘가벼운 여행’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다.
반면 국내나 해외나 여행지와 상관없이 ‘열흘 이상’ 길게 여행을 즐기려는 수요 또한 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해외여행에 보다 신중해지면서 ‘짧게 자주’보다는 ‘한 번에 길게’를 선호하는 경향이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최근 바뀌고 있는 대기업의 휴가 문화 또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말에 남은 연차를 몰아 사용하는 휴가 문화가 정착되면서 ‘열흘 혹은 2주일’ 정도 기간 동안의 롱 스테이 여행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투어의 하이엔드 여행 브랜드 ‘제우스월드’는 이와 같은 롱 스테이 여행 트렌드에 발맞춰 ‘나를 위한 특별한 한 달 살기’를 주제로 튀르키예·태국·하와이 등의 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또한 제주도와 태국 치앙마이 지역에 롱 스테이 여행 상품을 선보이고 있고 향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외에 한국에서도 강원도·남해·여수 등의 여행지를 추가할 계획이다.
트렌드3- “평범함은 거부한다”…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여행
글로벌 여행 플랫폼인 익스피디아와 호텔스닷컴을 운영 중인 익스피디아그룹은 최근 ‘2023년 여행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노 노멀(no normal)’을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꼽았다. 한국인 여행객 1000명을 포함해 17개국 수천여 명의 여행 소비자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여행객일수록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경험’이나 ‘테마’가 있는 여행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팬데믹을 거치며 특히 주목받는 여행의 키워드는 ‘웰니스’와 ‘친환경’이다. 빽빽하게 짜여진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보다는 조용히 명상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웰니스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익스피디아그룹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객의 절반 이상(59%)이 ‘이전에 비해 웰니스 여행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스닷컴에 따르면 실제로도 숲을 통해 힐링하는 실보테라피(sylvotherapy)·삼림욕·과일 수확 체험 등의 이색 프로그램들이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쿠킹 클래스, 골프 및 기타 스포츠 등의 액티비티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친환경 여행은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하나투어는 2022년 11월 친환경 여행 상품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프트한자그룹과 손잡고 친환경 항공 연료인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를 사용한 항공 노선을 포함한 여행 상품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종합 여행사 노랑풍선은 최근 자전거 여행 스타트업 ‘비르투컴퍼니’와 함께 라이딩 테마 여행 패키지를 론칭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탄소 배출 없이 해외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 일본 오키나와를 시작으로 괌·태국·싱가포르·대만·이탈리아·카자흐스탄·스페인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 중 오키나와는 약 404km의 거리를 5일에 걸쳐 라이딩하는 코스다. 노랑풍선은 이후에도 ‘자전거로 떠나는 월드투어’ 여행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