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경찰국·李 지역화폐 예산 절반씩 나눴지만… 與野, 국회선진화법 이후 최장 지각 불명예

민영빈 기자 2022. 12.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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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 내 통과한 건 총 9건 중 단 2건에 불과
전문가들 “예산안 처리 제때 못할 시 ‘페널티’ 도입도 고려해야”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여야의 끝장 대치 끝에 줄 파행됐던 내년도 예산안은 ‘윤석열표 예산’인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경비와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화폐 예산에서 각각 절반씩 깎인 채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이 법정 처리 기한인 12월 2일로부터 22일을 초과하면서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역대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를 떠안는 모양새다.

여야의 ‘예산안 늑장 처리’를 제대로 뿌리 뽑기 위해 심사 착수 시점이라도 앞당길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뉴스1

◇ 與野, 각각 한발씩 물러나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막판까지 대치했던 ‘윤석열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으로부터 각자 한발씩 물러나면서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행안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운영 예산은 50% 감액으로 합의됐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만큼 민주당은 전액 삭감을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정부 원안을 고수했다. 이후 정부안 대비 반값으로 편성된 예산에 대해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사업인 핵심 기구를 본예산에 넣어 합법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에 의미를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검찰의 직접 수사 관련 예산 13억원(30%)을 감액했다고 자평했다.

정부안에는 없었던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사랑상품권도 여야의 ‘끝장 대치’ 항목이었다. 민주당은 협상 초반 해당 예산으로 7000억원 증액을 요구했다가 이후 여야 협상 과정에서 5000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발표한 여야 합의문에는 3525억원으로 편성됐다. 이외에 ▲공공임대주택 관련 전세임대융자사업 예산 6600억원 ▲쌀값 안정화를 위한 전략작물직불사업 예산 400억원 등이 증액됐다. 결국 여야 모두 예산안에서 당초 주장한 것과는 달리 ‘반값’밖에 챙기지 못했지만, 여야가 원했던 해당 예산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여야 모두 내년도 예산안에서 명분과 실리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 尹 정부서도 ‘늑장 처리’ 관행은 여전

다만, 여야의 상습적인 예산안 늑장 처리를 막기 위해 2014년 국회법을 개정했음에도 늑장 처리 관행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은 여야 의견 차이로 인한 파행의 연속이었다. 국회 상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부터 파행을 거듭했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법정 기한(11월 30일)도 지키지 못했다. 이후 ▲예산안 처리 법정 기한(12월 2일) ▲정기국회 종료일(12월 9일) ▲김진표 의장이 제시한 두 차례의 처리 시한(12월 15일·19일)까지 네 차례나 데드라인을 넘겼다. 이에 김 의장은 지난 21일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오는 23일 오후 2시에 열 예정”이라며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교섭단체 간 합의가 이뤄지면 합의안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본회의에 부의된 정부안 또는 민주당 수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최후통첩까지 했다.

이후 양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오후 김 의장의 의원실에서 만나 김 의장이 제시한 마지막 데드라인 만큼은 넘기지 말고 합의하자는 공감대를 확인한 뒤 예산안 합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 결과, 여야 원내대표는 내년 예산안과 세법을 일괄 합의한다고 밝혔고, 각 합의문에 서명을 한 뒤 합의문을 낭독했다.

또 이들은 국민들을 향해 내년도 예산안을 이제야 합의해 죄송하다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극적 합의 직후였던 만큼, 여야 모두 협상 지연의 책임을 상대 진영에 넘기는 발언은 극도로 삼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법정 기한인 2일을 지나고 많이 초조해졌고, 정기국회 종료일인 9일을 넘기고는 정말 안절부절하지 못했다”며 “늦었지만 내일(23일)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기국회 회기 내에, 그리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정한 시한 내에 예산안 처리를 하지 못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하다”고 했다.

그래픽=이은현

다만 이러한 여야의 예산안 늑장 처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를 막기 위해 2014년 국회법을 수정해 ‘정부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늑장 처리 관행은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해당 법이 시행된 이후 2014년과 2020년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한을 어겼기 때문이다. 2015년과 2016년은 12월 3일에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됐고, 2017년은 12월 6일, 2018년은 12월 8일에 각각 통과됐다. 2021년에는 법정 기한인 12월 2일 심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여야의 막바지 협상과 기획재정부 시트 작업(계수조정 작업)이 늦어지면서 하루 초과했다. 하지만 여야가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임시국회까지 별도로 열어서 예산안을 처리하고 그 기간이 3주가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전문가들 “법정 처리 기한 넘길 시 페널티 제도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예산안 늑장 처리’를 제대로 막기 위해 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을 넘길 시의 책임에 따른 ‘페널티’를 제도에 도입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의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안 처리 기한을 제때 맞춰 ‘늑장 처리’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정치인 스스로 자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 처리 기한 내에 통과하지 못했을 경우 각 당에 들어가는 예산을 감액하는 식의 ‘페널티’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여야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날짜를 넘기는 것에 대한 책임을 ‘예산’으로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각 정당에 들어가는 국고보조금 등 지원금을 일정 비율 삭감하는 식으로 경고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남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제도를 통한 발본색원도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 더 앞서서 정치인 스스로가 예산안이 민생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바탕이 되고, 국가적으로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과 관련된 것을 스스로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치인 스스로가 당의 세력이나 이익을 우선하는 것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의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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