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이백, 와인을 마시고 시를 노래하다
[서울=뉴시스] 후한이 멸망한 후 위진남북조 시대와 수나라를 거쳐 400여년이 지난 618년 당나라가 건국된다.
그동안 중국에서 와인은 주로 왕실이나 귀족들이 제한적으로 마시는 진귀한 사치품이었다. 중국 내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았고, 서역 제국의 조공도 끊겨 대부분 와인은 무역을 통해 수입했다.
위진(魏晋) 시대부터 상류층에서 와인을 직접 체험한 기록이나 문학작품이 나타난다. 위나라를 건국한 조비(曹丕, 187~226)는 아버지 조조, 동생 조식(曺植, 192~232)과 함께 ‘3조(曺)’로 일컬어지는 탁월한 시인이자 문학가였다. 그는 ‘조군의’(詔群醫) ‘여오지서’(與吳志書) 등 기록에서 와인에 대해 기술했다.
아버지인 조조도 애주가들에게 회자되는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를 남겼는데, “인생기하 비여조로(人生幾何 譬如朝露, 인생이 길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비유하면 아침이슬 같으니)”라 했다.
오나라가 항복한 후 서진(西晋)의 조정에서 벼슬을 한 육기(陸機, 261~303)도 ‘음주락’(飮酒樂)이란 시에서 “와인은 봄과 가을을 비롯한 4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그 당시 상류사회의 사치스런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 남북조(南北朝) 시대 북주(北周)의 유신(庾信, 513~581)은 “포도주 한잔에 천일을 취하고, 마시면 장생한다”고 시로 썼다(‘연가행’(燕歌行)). 그는 ‘춘부’(春賦)라는 시에서는 “석류는 넘치고, 포도는 발효되어 술이 된다”고 표현했다. 석류와 포도는 모두 장건이 페르가나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나라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李世民, 598~649)은 640년 후군집(候君集)과 이정(李靖)을 서역으로 보내 지금의 투루판 지역인 고창국을 정벌하고 서역에 대한 통제권을 부분적으로 되찾는다.
당 태종은 아버지 당 고조와 마찬가지로 와인을 매우 좋아했다. 당 태종은 이때 고창에서 양조법과 함께 들여온 마유포도(馬乳, mare teat grape)를 한 무제처럼 장안의 궁중에서 재배하고 직접 와인을 양조했다. 와인 담당 관청을 두고 위징(魏徵, 580~ 643) 같은 양조 기술자를 중용했다. 위징은 태종에게 직언을 마다 않은 충신이기도 했다. 수나라 말~당나라 초 사람인 왕적(王績, 585~644)도 와인 양조에 이름이 높았다. 와인 양조법은 맹선(孟詵, 621~713)이 지은 ‘식료본초’(食療本草)와 국가에서 펴낸 ‘신수본초’(新修本草)에도 기록돼 있다.
자주색이나 흰색을 띈 마유포도는 비니페라 종으로, 당도가 높아 화이트와 로제 와인을 만드는데 쓰였다. 그대로 먹거나 건포도로 만들기도 했다. 마유포도는 ‘연산군일기’ ‘선조실록’ ‘연행일기’ 등 조선시대 기록에도 나온다. 다만 그 기록은 모두 식용에 대한 것이다.
당 태종의 시대에는 전란이 거의 없었고 외국과의 무역이 융성해 태평성대로 불릴 정도였다. 특히 수도 장안은 인구 10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고, 그 중 호인(胡人)이라 불린 소그드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10만명이나 될 정도로 국제적인 도시였다. 여성의 음주에도 제약이 없었다. 당나라 말기에는 오히려 술에 취한 여인의 홍조가 매력적이라 하여 볼을 불그스름하게 화장하는 것이 유행했다. 양귀비도 그렇게 했다.
이에 따라 와인도 민간으로 전파한다. 거리에서는 서역계 웨이트리스인 호희(胡姬)가 시중을 드는 주점이 번성했다. 여기서는 수입 와인을 팔았다. 이를테면 요즘의 웨스턴 바이다. 호녀들은 호현무(胡玄武)로 불리는 이국적인 춤을 췄다. 주점에는 고관대작과 이름난 문장가들도 드나들었다. 그 중에는 술 한말에 시 백편을 지었다는 이백(李白, 701~762)도 있었다.
이백의 출생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이백 스스로 감숙성(甘肅城) 출신이라 밝힌 적도 있으나, 중국 사가들의 연구를 종합하면 지금의 키르기스스탄 토크목 근처의 수야브(쇄엽, 碎葉)에서 태어난 튀르크 계통의 소그드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전성남’(戰城南)이란 시에서 “조지해(條支海) 파도에 말을 씻는다”라는 묘사가 나오는데, 여기서 조지해는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 또는 카자흐스탄의 발하쉬 호수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그는 소그드 문화와 와인을 매우 즐겼다. 그는 술집에서 잠이 든 적도 많았다. ‘전유일준주행이수’(前有一樽酒行二首)에서는 “호희모여화 당로소춘풍(胡姬貌如花 當壚笑春風, 서역 여인은 꽃과 같이 아름답고 주점에서 봄바람처럼 미소 짓는구나)”라고 노래했다. 이백은 묘비명 하나 써주는데 5000만원을 받을 정도로 고액 연봉자였다.
당 현종과 양귀비는 여름 궁전인 침향정(沈香亭)으로 이백을 초대해 모란꽃과 음악을 감상했다. 흥에 취해 현종은 피리를 불었고 양귀비는 칠보잔에 와인을 가득 따라주며 이백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백이 인사불성으로 크게 취하자 내관이 얼굴에 물을 뿌려 이백을 깨웠다. 정신이 든 그는 즉석에서 시 3수를 지었다. ‘청평조사’(淸平調詞)다. ‘양양가’(襄陽歌)에서는 강물을 바라보며 와인이 발효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장진주(將進酒)와 “권군막거배 춘풍소인래(勸君莫拒杯,春風笑人來, 권하는 잔을 마다 말게 봄바람 웃으며 불지 않은가)”로 시작하는 ‘대주’(對酒)도 와인을 마시고 썼다. 이백이 남긴 1500수의 시문 중 술이 언급된 것이 약 16%이다. 그는 ‘주선’(酒仙)이라 불리지만 ‘와인의 신선’이라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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