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대화를 가로채 약으로 만든다

이창욱 기자 2022. 12.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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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훈 시프트바이오 최고과학책임자
남기훈 시프트바이오 최고과학책임자(CSO). 과학동아 DB

세포 엑소좀은 제약계의 차세대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치료 방식이다. 단어부터 어려워 보이는 엑소좀 치료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엑소좀 치료제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엑소좀 치료제 기술을 개발하는 시프트바이오의 남기훈 최고과학책임자(CSO)를 만났다.

우리 몸은 약 3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매일 3300억 개의 세포가 새로 태어나고 죽는다. 이렇게 많은 세포가 몸이라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생존하려면 서로 잘 협업해야 한다. 이때 세포들이 정보 교환을 위해 외부로 분비하는 물질이 ‘세포 밖 소포체’이다. 이 중에서도 지름 40~160nm 사이의 작은 입자를 ‘엑소좀’이라 부른다. doi: 10.1126/science.aau6977

엑소좀은 최근에야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처음 발견된 1980년대 초만 해도 엑소좀은 세포가 버린 노폐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연구를 통해 엑소좀이 암은 물론 면역 반응,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생리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대화 수단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특정 세포가 만든 엑소좀이 다른 세포에 들어가 세포를 변화시키는 현상이 관찰되었는데, 예를 들어 암세포의 엑소좀이 주변 세포를 암세포로 만드는 현상이 밝혀지기도 했다. 세포 사이 신호를 보내는 주인공은 엑소좀의 지질 이중층막 내부에 들어있는 단백질, DNA, RNA 등의 물질이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인줄 알았던 엑소좀이 알고 보니 세포 사이를 잇는 택배 서비스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엑소좀에 치료제를 넣는다

“그렇다면 엑소좀에 치료제를 넣어서 전달하면 어떨까요. 세포 사이를 오가는 택배를 가로채 자연스럽게 세포 내부로 치료제를 전달하는 겁니다.”

남기훈 CSO는 엑소좀 치료제의 개념을 이렇게 요약했다. 약물 전달 효율은 신약의 약효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아무리 치료 성능이 좋아도 치료가 필요한 대상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엑소좀은 원래 세포끼리 대화에 사용하는 전달 체계인 만큼, 세포 내부로 약물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니 의학자들이 엑소좀을 ‘트로이의 목마’처럼 활용해 세포 내부에 약물 분자를 집어넣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엑소좀을 치료제로 이용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약물 전달 능력이 뛰어나다. 현재 대세로 여겨지는 3세대 신약인 유전자 치료제의 경우 특정 DNA를 외부에서 세포 내로 주입해 치료 능력을 발휘한다. 이때 DNA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주입하는 단계가 문제였는데, 엑소좀을 이용하면 약물 전달 효율을 훨씬 끌어올릴 수 있다.

엑소좀은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 또 다른 3세대 신약인 세포 치료제는 세포를 직접 키워 치료에 이용한다. 당연히 환자에게서 세포를 채취한 후 대량 배양을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데, 엑소좀은 대량 생산이 훨씬 간편하다. 생체 유래 분자라 거부 반응이 없고 안전하다는 이점은 덤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바이오·제약 기업에서 엑소좀 연구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DBMR 리서치에서 엑소좀 시장이 2021년 117억 7400만 달러(약 14조 원)에서 2026년 316 억 9200만 달러(약 38조 원)로, 연평균 약 21.9%씩 성장할 것으로 평가할 정도다.

엑소좀의 구조. 단백질이나 DNA, RNA 같은 생체 물질을 세포막 구성 성분인 지질 이중층이 둘러싼 형태로,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동아 DB

엑소좀 치료제 기반 기술에서 난치병 치료제로

“대학원에서 다양한 약물 전달 방식을 실험하면서 엑소좀 치료제가 가장 잠재력이 높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생각이 시프트바이오 창업으로 이어졌죠.”

남기훈 CSO는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고려대-한국 과학기술연구원(KU-KIST) 융합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신약개발을 연구하던 김인산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창업을 계획했다. 물론 연구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연구 생활 첫 3년 동안 실험 하나를 제대로 수행한 적이 없었어요. 연구를 그만둘까도 많이 고민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실험이 손에 익으면서 실적이 나오기 시작했지요.”

3년간의 실험 실패 경험은 결국 시프트바이오의 주력 기반 기술 개발에 밑거름이 되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2020년 11월 창업하여 현재 약 스무 명의 직원이 일하는 시프트바이오의 엑소좀 관련 기술은 ‘맥시좀’, ‘인프로델’, ‘퓨소좀’ 의 세 가지로, 엑소좀을 조작하여 약물 효능을 향상한다.

맥시좀 기술은 엑소좀의 막 표면에 있는 치료용 단백질의 발현을 극대화한다. 인프로델은 엑소좀 내에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를 넣어 약물 전달 확률을 기존의 30%에서 70~80% 정도로 두 배 이상 끌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 퓨소좀은 세포막에 엑소좀을 융합시켜 원하는 막단백질을 이식하는 기술이다. 막단백질이 이식된 종양 세포에만 반응하는 치료제를 만들 수 있어서 잠재능력이 무궁무진하다.

시프트바이오는 이 기술들을 기반으로 난치병 치료제도 만들고 있다. 미국의 엑소좀 전문 생산 공정 개발 업체인 루스터바이오와 함께 급성 간부전 치료제 개발을 전임상 단계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시프트바이오의 직원중 70%는 생명과학과 관련된 박사 학위 소지자로 이루어져있다. 실험 데이터를 확인하는 직원들. 시프트바이오 제공

그 기술력 덕분인지, 시프트바이오는 짧은 기간에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신용보증기금이 주관하는 2022년도 퍼스트 펭귄에 선정되어 3년 동안 최대 20억 원의 보증과 각종 혜택을 지원받는다.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사와의 기술이전을 마치기도 했다. 창업 후 지금까지 받은 투자액만 약 60억 원에 달할 정도다.

이른 실패를 디딤돌 삼아 다시 창업에 도전하다

“사실 시프트바이오는 제가 두번째로 창업한 회사입니다. 첫번째 창업은 10년 전이었어요."

남기훈 CSO는 대학교 4학년 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첫 번째 회사를 세운 적이 있다. 이전에 여러 영상 콘텐츠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와 영상을 융합한 서비스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물론 실패했어요. 자신의 사업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도 그때 한 일을 간결히 설명하기 힘들어요. 목표와 대상이 불분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남기훈 CSO는 25살 즈음에 겪은 이른 실패가 시프트바이오 창업에 있어 큰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연구는 실험 10~20번에 한 번 결과가 좋을 정도로 매 순간이 실패인데, 첫 창업을 통해 실패 대응 능력이 길러졌다는 것이다. 물론 두 번째 창업도 혼자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절대 아니다. 지도 교수, 공동 창업자이자 약물 전달 분야의 권위자인 김인산 교수와 연구의 방향을 잡았다.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이원용 의학 교수는 남기훈 CSO가 전국의대생대표를 맡은 시절 알게 된 인연으로, 대외 업무와 투자를 담당했다. 세 명이 함께 약 3년 동안 서로 호흡을 맞춰본 후 만들어진 회사가 시프트바이오다. 오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창업이다.

앞으로 엑소좀 분야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남기훈 CSO 는 “수백만 명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 신약개발의 의미”라 밝혔다. 현장에서 직접 환자를 진찰하는 임상 의사도 의미 있지만, 신약개발을 통해 의료 현장에서 해결되지 않는 의료수요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 연구와 사업을 별개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학동아 독자들 에게 언제든지 연구의 사업화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결국에는 본인의 연구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지 고민하는게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몸담은 곳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프트바이오 제공

※관련기사

과학동아 12월, [사업가가 된 연구자] 세포의 대화를 가로채 약으로 만든다

[이창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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