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먹는 건 예의가 아니지… 엎치락뒤치락 익어가는 붕어빵 현대사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는 배달 음식의 편리함과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외국산 디저트의 공세를 비집고 ‘고전 간식’ 붕어빵이 약진하고 있다. 그 시절의 양과 가격은 아니지만 뉴트로 열풍과 함께 구르메 마니아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부 붕어빵 매장은 ‘오픈런’ 못지않은 대기 행렬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색 붕어빵을 대표 디저트로 내세운 카페 역시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엎치락뒤치락 흥망성쇠를 겪으며 뜨겁게 익어가는 ‘붕어빵의 현대사’를 짚어봤다.
■ 주머니 얄팍할수록 빛나는 전 국민 솔푸드
붕어빵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다양한 ‘설’ 중 가장 신빙성이 있는 붕어빵의 기원은 19세기 말, 일본인 고베 세이지로가 개발한 ‘다이야키’다. 일본어로 다이야키는 도미를 불에 익혔다는 뜻인데 생선이 귀했던 시대, 도미를 빵으로라도 대신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알려진다.
1930년대, 도미는 동해를 건너며 붕어로 둔갑했다. 도미보다 친숙한 민물고기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예상은 틀렸다. 형태가 무엇이든 그 인기는 쉽사리 타오르지 않았다. 붕어빵이 ‘국민 간식’ 대열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50년대, 밀가루의 확산과 함께이다. 당시 붕어빵은 저렴하면서도 배가 부른 음식으로 여겨졌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에서 윤덕노 작가는 “붕어빵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형제가 겪어야 했던 수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깝게는 1960~70년대 산업개발 시대에 공돌이·공순이로 불리던 우리 부모, 형제들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밥 대신 끼니를 때웠던 것이 붕어빵”이라고 기술했다. 가난과 맥을 같이해온 붕어빵의 인기는 1980년대 고급 간식들이 늘어나며 시들었다. 다시 붕어빵 기계가 뜨거워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이즈음 언론에는 ‘붕어빵 경제지표’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이 대거 노점상에 뛰어들면서 붕어빵 판매가 급격히 증가했다.
산전수전을 경험한 붕어빵의 위상은 2000년대 들어서며 달라졌다. 눈에 띄는 변화는 주재료의 가격이 오르며 붕어빵의 몸값 또한 올라 ‘서민 간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고물가 시대를 거치며 수지가 맞지 않아 문을 닫는 상점들이 늘어나며 희귀해져서 ‘붕세권’(붕어빵을 파는 가게 인근에 자리 잡은 주거지역 또는 권역)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영국 런던 중심가에 있는 CJ푸드빌의 비비고 소호점에서는 고급 디저트로 개당 9000원에 육박하는 붕어빵을 팔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두육미?…붕어빵을 향한 갑론을박
바삭함을 좌우하는 화구의 불길처럼 붕어빵을 향한 관심 또한 언제나 뜨거웠다. 이름부터 팽팽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붕어빵은 “붕어 모양의 틀에 묽은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 만든 풀빵”이다. ‘라이벌’ 잉어빵과는 무엇이 다를까. 업계 관계자들은 “반죽과 팥의 분포도 차이”를 꼽았다. 잉어빵은 1998년 황금어장식품의 김승수씨가 특허를 내며 탄생했다. 반죽에 버터나 기름을 넣어 촉촉함을 배가시켰고 앙금이 꼬리까지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붕어빵의 인기가 치솟을 때는 머리나 꼬리, 지느러미 등 어느 부위부터 먹느냐를 두고 알아보는 성격 테스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재미를 목적으로 한 만큼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붕어빵을 나눠 먹으며 소소하게 나눌 수 있는 화두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큰 논쟁거리는 가격이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겨울 붕어빵 가격은 기본 두 마리에 1000원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한 마리에 1000원인 곳도 있다. ‘금붕어빵’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서울 종로구에서 붕어빵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이철씨는 “간혹 비싸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분들이 있지만 밀가루, 가스비 등이 모두 올라 이렇게 받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붉은 팥은 800g 평균 가격이 6000원으로, 5년 전보다 100%나 올랐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서울 성북구의 한 유명 붕어빵 매장에서 만난 김혜영씨는 “색다른 맛을 경험해보고 싶어 찾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재방문 여부는 미지수”라며 “서비스로 한 마리 더 넣어주던 예전의 후한 인심이 그립다”고 추억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붕어빵 가격의 상한선은 얼마일까.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진행한 ‘가장 적절한 붕어빵 가격’ 조사에 따르면 ‘3개에 1000원’이란 답변이 70%로 가장 많았다. 이는 33만명이 참여했을 정도로 뜨거운 설문이었다.
한편 소셜미디어에는 붕어빵 시즌을 알리는 문구로 ‘가슴 속에 3000원을 품고 다녀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는 밈이 번지기도 했다. 과연 언제가 ‘시즌’의 시작일까. 서울 서대문구에서 5년간 붕어빵 장사를 해온 최준성씨는 “추석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벚꽃이 피기 전까지라고들 하지만 최근에는 붕어빵이 다양하게 진화하는 추세라 이를 정의할 만한 근거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붕세권이 아니라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서 ‘붕어빵 맛집’을 검색하면 발품으로 찾아낸 숨은 붕어빵 매장들이 쏟아진다. 최근에는 붕어빵 판매 위치를 알려주는 앱도 출시됐다. 집단지성의 힘에 기대어 만들어진 ‘가슴 속 3000원’은 매장 관계자 외에도 누구나 자신이 아는 붕어빵 가게를 올리면 다른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제작됐다. 대표 메뉴, 가격, 이미지 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 어디에 있나요? 요즘 뜨는 ‘제철’ 붕어빵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은 붕어빵 시장, 포인트는 ‘무엇을 넣느냐’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줄서기’와 ‘품절사태’를 끌어내는 붕어빵 매장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와 차별화된 소로 경쟁력을 높인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총각네 붕어빵’에는 평일에도 손님들이 직원보다 먼저 ‘출근’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팥과 호두, 슈크림, 피자, 고구마와 크림치즈, 팥과 호두와 크림치즈 등 총 5가지 메뉴로 구성됐는데 1인당 총 4개까지만 살 수 있다. 피자, 고구마크림치즈, 팥호두크림치즈는 1인당 1개로 제한된다. 좋은 재료로 가득 채운 ‘겉바속촉’의 매력 덕에 이곳의 붕어빵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서울 이수역 근처에 있는 분식점 앞에서 출발한 ‘떡붕’은 사장님의 작업화 지비츠에서도 붕어빵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대표 메뉴는 블루베리크림치즈 붕어빵과 애플시나몬 붕어빵, 뿌링콘치즈 붕어빵 등이다. 대기표를 받은 다음 차례가 되면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때 제작 과정을 ‘1열’에서 관람할 수 있어 보는 재미까지 더한다. 하루 평균 700~800개에 맞춰 준비한 반죽이 소진되면 판매도 마감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 상황을 확인하고 방문하기를 권한다.
광주광역시 충장로의 ‘꾸꾸붕어빵’은 지역신문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하루 250개의 한정 판매가 이뤄지는데 평소에는 피자, 팥크림, 고구마크림치즈 붕어빵을 주력으로 팔지만, 주말에는 복숭아크림치즈 붕어빵 등 이색 메뉴를 오픈하기도 한다. 이곳의 붕어빵을 맛본 이들의 후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꼬리까지 재료를 아낌없이 쓰는 곳”이다. 자체 개발한 피자 소스가 감칠맛을 더한다.
음식업계에서는 여대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 성공한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성신여대 앞 ‘뿡어당’이 이를 증명한다. 재학생들 사이에는 ‘오뿡열’(오늘 뿡어당 열었나요)이라는 해시태그가 사용될 정도로 이곳은 붕어빵의 성지라 불린다. 팥과 슈크림의 클래식한 붕어빵은 이곳에선 ‘비주류’다. 앙버터, 초코와 말차 등 이색적인 재료들로 채워진 붕어빵과 이곳의 대표 메뉴인 미니 붕어빵을 맛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여러 가지 토핑을 뿌려 먹는 아이스크림 붕어빵도 즐길 수 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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