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잇따르는 전세 사기, 세입자의 ‘알 권리’ 강화부터 서둘러야
인천시 등에서 주택 2700채를 차명으로 보유한 건축업자와 일당이 260억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 건축업자를 포함해 공범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명의를 빌려준 ‘바지 임대업자’, 세입자를 끌어들인 공인중개사 등 공범 4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23일 영장은 기각됐지만 경찰은 보강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 건축업자가 보유한 주택은 빌라 1139채를 보유하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숨진 이른바 ‘빌라왕’보다 2배 이상 많다.
10여 년 전부터 주택을 사들이기 시작한 이 건축업자는 지인 등에게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새로 지은 뒤 전세 보증금과 주택 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자금 사정 악화로 빌라 등이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데도 무리하게 전세 계약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인중개사나 중개 보조인들도 건축업자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주인이 돈이 많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주거 불안에 몰린 경제적 약자를 먹잇감으로 반복적으로 범행한 것이다.
전세 사기는 보통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받아 돌려막기식으로 빌라를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임차인들은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피해 사실을 알게 돼 돈을 돌려받기도 어렵다. 심각한 것은 피해자 중에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 등 20~30대와 취약 계층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전세금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어 이마저 날리면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건이 잇따르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피해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세입자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발의됐는데도 국회는 법안 심사에 손을 놓고 있다. 주거 약자층을 벼랑으로 몰아가는 악질 전세 사기 차단에 국회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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