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제2의 임영웅’을 꿈꾸며
문단에 시인과 소설가 명함을 팔 수 있는 등용문은 많다. 하지만 고수가 될 재목이 두드리는 문은 따로 있다.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은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당선하자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겨우 시인 등록이 된 셈인가 보오.’ ‘겨우’라는 겸손한 단어로 이후 펼쳐지게 될 신동엽 시대를 예고했다. 가수 임영웅에게 등용문은 TV조선의 서바이벌 트롯 오디션 ‘미스터트롯’이었다. 장민호·김호중·이찬원 등도 그 문을 지나 세상에 나갔다. 이후 재야의 노래 고수들은 ‘제2의 임영웅’을 꿈꿨다.
▶TV조선이 트로트 열풍을 일으킨 뒤 모방품이 여럿 뒤따랐다. “트로트 공해다” “또 트로트냐”는 일부 비판이 있었다.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이 22일 밤 10시 첫 전파를 탔다. 이번엔 “역시 원조는 다르다”고들 했다. 대학부 박지현의 노래를 들으며 ‘물건’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아내는 “한밤중인데 괜찮을까”라면서도 TV 볼륨을 키웠다. 1분도 안 돼 올하트가 터진 순간, 조규성의 월드컵 가나전 헤딩슛 때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박수가 터졌다.
▶화제의 영화 ‘아바타’는 상영 시간이 3시간으로 길다. “아바타 보느라 엉덩이 아팠다”는 우스개 감상평이 돈다. 미스터트롯 방송 시간도 3시간 가까웠고, 심야에 시작해 자정을 넘겼다. 하지만 노래와 볼거리, 곡진한 사연에 몰입하느라 잠들 수 없었다. 화려한 불 쇼, 온몸 관절을 꺾으며 노래하는 신기한 퍼포먼스도 시선을 붙들었다. 대학부가 단숨에 시청률을 18% 넘게 끌어올렸고 이후 20%를 넘어섰다.
▶노래만 잘해선 시청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명품이 되려면 사연이 있어야 한다. ‘장구의 신’으로 이미 성공한 박서진을 무대에서 봤을 때 의아했다.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을지문덕 장군이 보낸 시가 떠올랐다. ‘이미 많은 공을 세웠으니 그만 만족하라.’ 박서진은 만족하지 않았다. “다른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심사위원들이 앉은 마스터석(席)은 배경이 아니라 또 다른 무대였다. 마스터 김연자가 그렇게 말 잘하고 표정도 풍성한 줄 미처 몰랐다. “무조건 노래 잘해야 한다”던 그가, 모델 출신 윤준협의 골반 댄스를 보고는 “내가 노래만 보는 게 아니었어”라는 말로 좌중의 경탄을 대신 표현했다. “오디션은 앙코르 안 되나요”라는 현영의 심사평도 재치 만점이었다. 카타르 월드컵이 끝난 뒤 “이제 뭘 보나” 싶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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