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미국에서 두들겨 맞기 시작한 이유

조재희 기자 2022. 12. 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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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 사이 전 세계를 휩쓸던 넷제로(Net Zero),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같은 탄소 감축 붐이 에너지 위기로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은 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블랙록과 함께 ESG 투자를 이끌었던 세계 양대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넷제로 동맹 탈퇴를 선언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에너지 정책과 투자를 이끄는 기준이 ‘탄소 감축’에서 ‘에너지 안보’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설정했던 과도한 ‘탄소 중립’ 목표를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료=국제에너지기구

◇ 러·우크라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 차질, 에너지 위기에 ‘탄소제로’ 후퇴… 올해 세계 석탄소비 80억t 이상 사상 최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올해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이 지난해보다 1.2% 늘어난 80억2500만t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석탄 바람을 주도해온 EU(유럽연합)는 10억6000만t으로 석탄 소비 1위인 인도(11억7000만t)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됐다. 석탄은 그동안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며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수급이 어려워지자 탄소 중립에 가장 앞장서온 유럽에서 석탄 발전이 작년보다 1.8% 증가했다. 특히 탈석탄을 추진해온 독일은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석탄화력발전 10GW(기가와트)를 당분간 재가동하기로 했고, 영국은 30여 년 만에 신규 탄광을 허가했다. IEA는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석탄 소비량은 80억3800만t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탄 소비가 늘면서 석탄 발전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도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과학자그룹인 ‘글로벌카본프로젝트(GCP)’가 발간한 ‘2022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석탄화력발전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지난해보다 1% 늘어난 15.1Gt(기가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GCP는 2022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2019년의 40.9Gt에 육박하는 40.5Gt으로 예상했다.

◇미국에선 공화당 중심으로 ESG 비판 커져

미국에선 야당인 공화당을 중심으로 ESG 투자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ESG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 2020년 연례 서한에서 “앞으로 ESG를 투자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힌 이후 글로벌 투자의 트렌드가 됐다. 하지만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ESG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보수 유권자 사이에서 확산하며 20억달러(약 2조5000억원)를 빼기로 한 플로리다를 비롯해 텍사스·미주리·웨스트버지니아 등 이른바 ‘공화당 주’를 중심으로 수십억달러의 연기금을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로부터 회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이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도록 기업에 부당하게 압력을 넣는다는 게 이유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아예 세계 220곳이 참여한 ‘넷제로 자산운용사 동맹(NGAM)’에서 이달 초 탈퇴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 자산운용사들이 ESG를 내세워 주가를 올려 이익을 얻었다는 담합 의혹도 나오고 있다”며 “경기 위축 국면에서 ESG가 기업들의 비용을 늘리고 고용 감소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이 크다”고 말했다.

ESG,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 글로벌 친환경 움직임에 대해 우리나라도 산업에 끼치는 영향을 자세히 따져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입법이나 목표 설정은 필요하겠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글로벌 시장에서 선진국 구호를 무조건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친환경에서 가장 앞서간다던 독일도 에너지 위기에 처하자 바다 생물에 치명적이라는 환경 단체 비판에도 해상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을 운용하기 시작했다”며 “국내 산업 경쟁력까지 훼손해가며 해외 기업·단체의 구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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