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호박벌·日나비·伊쇠똥구리… 곤충들이 사라진다
곤충이 없어지면 인간의 식탁은 밀·쌀·옥수수로만 채워지게 돼
인섹타겟돈
올리버 밀먼 지음|황선영 옮김|블랙피쉬|416쪽|2만1000원
“만약 이 세상에서 곤충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환영받지 못하는 외모 때문에 큰 관심을 얻지 못하지만, 사실 곤충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존재일 수 있다. 책은 곤충이 사라진 뒤 인간이 마주할 현실을 그리며 시작한다.
지구에서 벌의 비행 소리가, 귀뚜라미의 울음이 사라지면 먼저 새들이 곤경에 처한다. 참새와 딱따구리는 먹이인 나방과 진딧물을 찾지 못한다. 이렇게 지구상에 있는 새 약 1만종 중 절반이 멸종된다. 식물 정원은 사막으로 변하고, 딸기·자두·복숭아 같은 과일은 자취를 감춘다. 꽃이 피는 식물의 약 90%, 전 세계 식량 작물 3분의 1 이상이 벌과 나비를 비롯한 곤충의 수분(受粉∙꽃가루받이) 매개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초콜릿과 유제품은 사치품이 된다. 인간의 식탁은 빈곤해지고, 개발도상국을 시작으로 영양 결핍으로 건강과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어난다.
‘지구 멸망’을 소재로 하는 공상 시나리오 같지만, 사실 세계 각지에선 이미 곤충 멸종의 전조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저자는 2017년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실린 논문 한 편을 소개하며 세계적으로 곤충들이 급격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유럽 과학자 십 수 명이 내린 결론은 ‘’최근 27년 동안 동물 보호 구역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이 75%이상 감소했다”는 것. 독일의 자연 보호 구역 63곳에서 채집된 곤충들의 연간 평균 무게는 1989년에 비해 4분의 3이 줄어들었다. 지역마다 기후와 서식 환경의 차이가 있지만, 이 밖에도 곤충학자들의 관찰과 경고는 계속된다. 미국에선 호박벌이 사라지고 있고, 일본에선 나비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쇠똥구리가, 핀란드에선 잠자리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잇따른다. 호주의 한 생태학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곤충 총량이 매년 2.5%씩 감소하고 있는데, 이 속도는 포유동물의 멸종 속도보다 8배 빠르다. 곤충에 한정해선, 아포칼립스(종말) 장르는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됐다.
책 제목 ‘인섹타겟돈’은 곤충을 뜻하는 인섹트(insect)와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의 합성어로,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이 곤충 개체 감소를 밝히자 등장한 용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환경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의 환경 문제를 취재해온 저자는 전 세계 곤충학자들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유례없이 가속화하는 곤충의 멸종 현상을 추적한다. 이 책은 곤충이 어떻게 사라져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자, 곤충 멸종을 막고자 인류 사회에 던지는 경고장이다.
곤충들은 왜 사라지는가? 기후변화·집약적 토지 이용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저자는 그중에서도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을 유력한 원인으로 제시한다. 인류는 해충에게서 농작물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점점 강력한 살충제를 만들어왔다. 저자는 최근 30년 동안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니코틴과 비슷한 성분의 살충제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고 말한다. 이 살충제는 농부들이 원하지 않는 딱정벌레를 없앤다. 문제는 이러한 살충제가 특정 곤충뿐 아니라 지역 내 곤충 생태계를 초토화한다는 것. 2008년 봄 유럽에선 꿀벌 수백만 마리가 죽었고, 2018년 브라질에선 벌 5억 마리가 몇 달 만에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통된 사인(死因)은 살충제 성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곤충이 없어지면 우리의 식탁은 바람이 수분을 매개하는 농작물로만 가득차게 된다. 밀, 쌀, 옥수수 등의 음식만 먹게 된다는 뜻이다. “곤충의 위기는 곧 인류의 위기”라고 말하는 저자는 곤충 보호를 위한 각국의 노력과 해법을 소개한다. 프랑스는 네오니코티노이드가 함유된 살충제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노르웨이는 오슬로 중심부에 벌을 위한 피난처를 마련했다. 영국 남동부의 한 농장에선 농작물 생산을 위해 다듬어진 농경지 일부를 ‘맨땅’으로 돌려놓자, 2000년대 초반 멸종했던 솜털호박벌이 되돌아왔다. 저자는 이 ‘재야생화(化)’ 실험을 언급하며 “농경지에 곤충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면, 해충을 잡아먹는 포식성 곤충이 들어와 화학물질을 다량으로 투여할 필요도 낮아진다”고 주장한다.
곤충 멸종 현상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겨울엔 전국적인 꿀벌 집단 실종·폐사가 일어나 꿀벌 약 78억마리가 사라졌다. “모든 곤충이 종말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라는 곤충학계 내부의 반론도 존재하지만, 이 반론을 인정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모기, 빈대와 같이 적응력이 뛰어나지만 인간이 싫어하는 종들 위주로 곤충 세계가 재편되고 있으니까. “곤충은 종의 구성만 달라질 뿐 삶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 남은 생명체 대부분은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곤충의 위기를 감당해야 할 존재는 곤충이 아니라 인간이다. 원제 The Insect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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