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 나만 외로운가요?
엄마의 크리스마스
쥬느비에브 브리삭 지음|조현실 옮김|열림원|276쪽|1만4000원
무교와 불교 신자의 비율이 반반인 집안에서 자란 아이에게도 크리스마스는 남다른 날이었다. 성탄 이브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산타를 기다리다 늦게야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맡엔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꾸러미를 풀면 옷이나 신발, 학용품처럼 부모님이 마침 장만해줄 시기가 된 실용적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때 감정은 기쁨이라기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산타는 다 알고 계시다지 않는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울고 싶은 순간 필사적으로 참은 보람이 있었다. 산타 명부의 끝자락에 어쨌든 내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실은 ‘나만’ 빠져 있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후로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지나왔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아직도 잠깐씩 멍해진다.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계획 있으세요?”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니 그건 또 한 해가, 어느새, 벌써,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곧이어 크리스마스에 아무런 계획도, 약속도 세우지 못했다는 자각이 밀려들어 조급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나만’이다. 온 세상이 즐겁고 들뜨고 흥성거리는 크리스마스에 오직 나 혼자만 특별하지 않게, 심심하고 쓸쓸하게 지내게 되리라는 불안감 말이다.
프랑스 소설 ‘엄마의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크리스마스에) 어디 갈 거야?”라고 묻는 소년이 나온다. 소년이 묻는 상대는 자신의 엄마다. 이 가족의 구성원은 엄마와 아이 단둘이다. 미술 작가였지만 예술을 포기하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엄마는 늘 외롭고 고단하다. “말 좀 해봐. 설마 우리 둘이서만 멀뚱멀뚱 보내는 건 아니겠지?” 소설 속 소년의 볼멘소리에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말을 하는 아의 마음도, 듣는 엄마 마음도 다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엄마에겐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다른 사람들도 없고, 멋진 여행 계획을 세워놓지도 못했다. “우리 둘뿐이야. 트리 하나하고.” 엄마는 아들에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이가 잘못이 없는 자신을 너무 다그치는 것처럼 느껴져 심기가 점점 불편해진다.
모자는 ‘남들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반짝이는 도시의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로 한다.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크리스마스, 모두가 신나고 행복해야만 하는 크리스마스니까.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아이는 우울해보였다. (…) 우리는 새를 사러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어머니와 아들, 완벽한 행복의 순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얼굴이 어두운지 아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한바탕 해대고 싶은 것도 꾹 참아야 했다.”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원하던 새 한 쌍을 샀지만 달라진 건 없다. “우리는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가게를 나왔다. 제아무리 대단한 나들이도 늘 이런 식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실망과 씁쓸함에 젖은 채로 택시 뒷좌석에 앉아서.”
새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만 사람 두 명과 새 두 마리가 평화롭고 거룩하게 성탄의 아침을 함께 맞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현실이 대개 그렇듯이. 그러고 보면 특별하고 완벽한 크리스마스는 대체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아련한 필터로 박제해 진열해둔 사진 속에서나 훔쳐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진은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는 거짓말이다. 사진 속에는 지겨운 파티, 냉기가 도는 슈퍼마켓에서의 을씨년스러운 쇼핑, 숨 막히는 식사, 형제자매 간의 다툼, 치유할 수 없는 환멸, 이혼의 징후, 일상의 권태 같은 것이 절대로 없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어진다. 크리스마스가 또 돌아왔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서’ 속상한 사람이 올해는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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