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우울증엔 때로 사랑보다 자존심이 필요해
우울증은 흔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다. 흔하다는 이야기부터 하면, 3년 전 우울증 에피소드를 어느 산문에서 고백하고는 지인들에게 “나도 약 먹고 있어. 힘내” 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아니, 이 사람도?’ 하고 놀라기도 여러 번. 얼마 뒤 한국인의 우울증 유병률이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해하기 힘들다는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이 병에 왜 걸렸는지, 어떻게 나았는지 나도 모르고 의사도 모른다. ‘그게 어떤 느낌이야? 오랫동안 낙담해 있는 것과 우울 장애는 뭐가 달라?’ 하는 질문에 정확히 답하기조차 어렵다. 속은 지옥인데 밖으로는 멀쩡해 뵈는 상황이 당사자에게도 난데없다.
1028쪽에 이르는 분량에 우울증의 역사, 의학적 분석, 정치 사회 경제학적 접근, 과거와 현재의 치료법, 환자들의 투병기, 글쓴이의 경험을 담아내 이 분야의 고전이 된 책, ‘한낮의 우울’(민음사)을 읽으면 우울증을 이해하게 되느냐. 저자 앤드루 솔로몬조차 아니라고 한다. ‘암흑의 핵심’은 여전히 깜깜하다.
그러나 암흑 주변부에도 의미 있고 유용한 사실이 많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결코 현대 선진국 중산층의 질병이 아니라는 것. 우울증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났고, 그만큼 다양하게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았다. 우울증과 맞서는 데에 자존심이나 허영심이 때로 사랑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지적 역시 의미 있고 유용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암흑의 핵심’에 있는 것을 언어로 최대한 붙잡고자 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목적의식이 없는 상태, 관점 자체가 없어지는 기분, 부식되어 가는 자신에 대한 증오와 환멸, 그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
그리고 놀랍게도 암흑을 파헤치는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점점 더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서툴지만 열정적인 저글링 곡예사’(734쪽)가 되어 ‘스트레스가 많고 매혹적인 삶’을 좇아야 한다. 우울증에 관심이 없는 분께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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