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S 신호 활용 ‘선박용 내비’ 만들어 도착시간 예측 정확도 75% 높여[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2022. 12.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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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 해상 물류추적 서비스 ‘씨벤티지’… 항로-기상조건 등 해상 변수 많아
화물 도착시간 예측에 큰 어려움… 송형진대표, 위성 데이터에 주목
실시간 위치정보 활용 사업 눈떠… 30만척 배-4000여 항구까지 커버
12시간 오차범위내 도착시간 예측… 기업들 합리적 물류계획 수립 기여
송형진 씨벤티지 대표이사가 자사의 해상운송 가시화 솔루션으로 표출한 실시간 선박 정보를 보며 해상 물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씨벤티지는 30만 척의 배를 실시간으로 추적 분석하며 목적지 도착 시간을 선사보다 더 정확하게 제공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세계 화물의 90%가량이 해상으로 운송되지만 해상 구간의 화물 이동 정보는 이제야 ‘깜깜이’ 상태를 벗어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화물선은 10여 곳의 항구를 들르고, 운항 기간은 40일가량이나 된다. 출발할 때 선사가 유럽에 있는 항구 도착 예정 시간을 알리기는 하지만 길게는 일주일이나 틀리곤 한다. 항로상의 기상 조건, 항구에 도착해서 대기하는 시간 등 변수가 많아서다. 실시간으로 추적되는 육지와 비교하면 해상 구간은 정보가 비어 있는 구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화물을 유럽으로 보내는 물류 회사들은 해운 선사가 제공하는 수일 간격의 업데이트 정보로 정확한 도착 시간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다면 배를 빌리는 기간과 항구에 도착했을 때 연계 운항할 화물기차나 화물트럭 대여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씨벤티지(대표이사 송형진)는 선박이 의무적으로 송출토록 돼 있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의 신호를 활용해 전 세계 대양에 떠 있는 약 30만 척의 배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목적지 도착 예상 정보까지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단순히 선박의 현재 위치를 표출해주는 회사는 종종 있어 왔지만 목적지 도착 시간 정보까지 예측해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인류는 최근에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해양 화물추적 내비게이션을 가지게 된 셈이다.
○저궤도 위성이 만드는 새 데이터에 주목

홍콩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던 송형진 대표이사(64)는 1997년 한국으로 돌아와 2000년경부터 코리아오브컴을 운영해 오고 있다. 씨벤티지는 60세에 추가로 창업한 기업이다. 본사인 미국 오브컴은 저궤도(LEO) 위성을 활용한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테러 방지를 위해 해양에 떠 있는 선박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 정부는 이전까지는 수집할 수 없었던 대양에 떠 있는 선박의 AIS 신호를 저궤도 위성을 활용해 모으기로 하고 오브컴과 손을 잡았다. AIS 신호는 각 배들이 주변으로 무조건 송출토록 돼 있는데, 기상 악화 등으로 주변이 보이지 않을 때 다른 배들의 위치와 속도 등을 서로 인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브컴은 2004년부터 저궤도 위성을 활용한 선박 위치 데이터를 생산하기 시작해 시험 검증 등을 거쳐 2014년부터는 상업적인 판매에도 나섰다. 송 대표는 새로 나오기 시작한 대양에 떠 있는 선박의 위치 정보에 주목했다. 추가 창업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송 대표는 “펀드매너저로 활동하던 당시 인맥을 활용해 유럽과 미국 현황을 파악해 봐도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활용해 사업을 시작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국내 대형 물류회사와 접촉해 보니 수요가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씨벤티지는 오브컴을 포함해 저궤도 위성 데이터 2개를 구입해, 선박의 실시간 위치를 가시화한 지리정보시스템을 만들었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선박의 도착 시간까지 예측하고 있다.

송 대표는 문과 출신으로 코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지리정보시스템을 만들려고 외주를 맡겼던 곳의 전문가인 박동일 씨를 영입해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앉혔고, 해운사 HMM 출신인 정영배 씨를 영입해 최고연구책임자(CRO)로 두고 있다. 현재 기술자 16명을 포함해 20명이 일하고 있다. 송 대표는 자신이 일하던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본 뒤 필요한 기술과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추가 창업을 했다.
○배의 종류-기상조건까지 예측에 활용

6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난 송 대표는 자사의 선박 시각화 웹 화면을 보여주며 자사 서비스를 설명했다. 송 대표는 5년 가까이를 소프트웨어 개발과 선박 도착 예측 AI 시스템 개발에 매달렸다. 12년간의 AIS 정보 등을 학습시켜 작년 말부터 상업 서비스를 선보였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삼성SDS, LX판토스, 현대글로비스,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물류기업과 포스코, 한솔, 현대건설 등 대기업, KOTRA와 해양경찰청 같은 기관 등 국내외 45곳이 씨벤티지의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씨벤티지는 연 단위로 추적할 수 있는 화물 개수에 따라 사용료를 받는데 연간으로 수백만 원을 내는 기업부터 수억 원을 내는 곳이 있다. 수백∼수천 개의 화물이나 선박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씨벤티지는 전 세계 대양에 떠 있는 평균 30만 척의 배는 물론이고 4000여 개의 항구까지 커버한다. 김지구 씨벤티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기존에 선사들이 제공하는 도착 예정 시간보다 정확도를 평균 75% 이상 높였다”며 “기존 정보로는 76시간 정도의 넓은 범위로 도착 시간이 정해졌다면 우리는 12시간 범위로 도착 시간을 특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 씨벤티지는 컨테이너선, 벌크선, 탱크선 등 배의 종류와 몇 t급인지에 따른 규모별로 그 배들이 다닐 수 있는 항로를 35종류로 세분해 도착 시간 예측에 활용한다. 육지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에 있는 내비게이션 앱에 자동차와 자전거, 도보용 길이 다르듯이 선박의 종류와 규모별로 길을 구분해 예측 정확도를 높인 것이다. 다른 기업이나 기존 선사들은 단순한 1개 항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항로의 기후 조건에 따른 이용 가능 선박, 특정 구간의 일반적인 운항 속도 등도 세세하게 반영해 도착 시간을 예측한다.

기상 조건도 주요 변수다. 위도 경도로 각각 0.5도 간격으로 풍향 풍속 파고 기온 등의 기상 자료를 입력해 선박의 운항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AI가 학습해 예측 시간을 산출한다. 송 대표는 “해상 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의 60∼70%가 연료비다. 기상 조건과 항로에 따라 연료비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 이를 미리 가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씨벤티지의 서비스는 선박 임차 기간을 줄여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데도 큰 효과를 낸다. 씨벤티지에 따르면 포스코의 경우 철광석 수입을 위해 호주 포트헤들랜드시의 항구로 배를 보내는데, 그곳에는 항상 많은 배가 대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추가로 내는 추가 임차비용(체선료)이 한 해에 2000억 원이나 된다. 송 대표는 “포스코는 우리 기술을 활용해 체선료를 30% 정도 감축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바다 육지 가리지 않는 공급망 가시화 솔루션 기업 될 것”

씨벤티지는 사업 특성상 태생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뒀다. 아직 본격적인 해외 마케팅은 하지 않고, 예측 시스템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씨벤티지가 예측하는 항구 도착 시간은 배가 항구에 정박하는 때까지인데, 여기에 더해 대기하는 배들의 수 등을 고려해 배가 항구에 접안하는 시간, 화물을 내린 뒤 화물차가 항구 출입문을 나서는 시간까지도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현재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본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은 지금 현재 해외 고객사는 2곳 정도인데,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보고서 밸류에이터스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공급망 분석 시장은 2027년이면 2020조 원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지금부터 매년 연평균 17.9%의 성장이 예상된다. 경영컨설팅 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공급망 시각화 솔루션을 도입한 대기업은 작년 기준으로 2%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씨벤티지에는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송 대표는 “현재 육지 물류는 빈틈없이 실시간 관리가 가능하지만 바다와 항구에는 ‘그림자 지역’이 많다”며 “그림자 지역을 없애 글로벌 물류의 처음과 끝을 모두 실시간으로 분석 및 예측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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