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물의 길, 자연의 도

기자 2022. 12.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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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설렘을 안고 <아바타 2: 물의 길>을 보러 극장에 갔다. 상영관 입구에서 받은 3D 안경을 끼고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192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탁월했다. 주인공 제이크·네이티리 가족과 함께, 높은 산과 깊은 바다를 짜릿한 속도로 날아다녔고 다양한 감정을 대리 경험했다. 실사와 그래픽을 혼합한 촬영기술도 그렇지만, 서사 역시 동원할 수 있는 클리셰를 충실하게도 모았다. 식민지배, 인종갈등, 혼혈, 이민, 차남의 방황, 출생의 비밀, 구원자로서의 여성까지 온갖 서사가 망라돼 있었다. “세상에서 믿을 건 우리 가족뿐”이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만 빼면 투철한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부제인 ‘물의 길(The Way of Water)’에 주목하고 싶어서이다. ‘way’는 ‘길’로 번역됐지만, 식민자의 복수를 피해 산에서 바다로 이주한 주인공 가족이 헤엄치는 물길이 아니라 물의 도(道)에 가깝다. 바다에서 살려면 바다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백인 남성 식민자들이 인간의 친구이자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어족인 툴쿤을 사냥하는 과정은 불법 고래잡이와 비슷한데, 사냥꾼들은 첨단 도구와 무기로 무장했음에도 결국 처참하게 죽는다. 성난 자연을 피해갈 길은 없다. 전투 과정에서 배가 뒤집혀 격실에 갇혔던 주인공 가족이 살아난 방법 역시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 생명의 근원임을 믿고, 작은 물살이들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비로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자연의 도를 따르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기후생태위기의 근원적 해결책이라는 메시지를 영화는 전달한다. 그런데 자연의 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통사회에서는 종교가 도를 추구했고 현대에는 과학이 도를 밝히고자 한다. 신과 진리는 세계를 알고자 하는 목표에 부여된 다른 이름이다. 과학이 조건을 설정하고 실험을 거쳐 밝혀낸 사실은 분명 진리이지만, 진리의 전부가 아니라 다른 진리가 나타나면 부분적 진리는 더 큰 진리에 통합된다는 것이 현대과학의 깨달음이다. 따라서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비과학적 태도가 아니라, 과학적이면서도 자연에 대해 겸손하고 조심스레 접근하는 태도이다.

기후위기에 압도돼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꿀벌 실종사건’이 종종 보도되지만 실종된 것은 꿀벌만이 아니다. 인간으로 인한 제6의 멸종이 예고돼 있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최고 포식자이면서 최대 개체 수인 인간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화석연료 덕분이라고 한다.

요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많은 부분 인간의 관점을 투사한다. 과도한 펫문화가 그렇다. 가수 이효리가 나오는 <캐나다 체크인>이란 프로그램은 해외 입양아의 자리에 해외 입양견을 넣었다. 우리 동네의 개 미용실에는 다양한 커트 스타일과 함께 개 스파도 갖췄다.

캣맘에게 길양이는 지극한 연민의 대상이지만, 고양이는 유희로 새를 사냥하며 이는 유리창 충돌과 함께 새의 주요 멸종 원인이다.

요컨대 인간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 자연의 도는 영겁의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고, 다시 영겁의 세월 동안 복구될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은 지구에 인간만 가득한 지금을 ‘고독한 시대’라 불렀고, 인간이 지구의 절반만 사용하는 반구제를 제안했다. 절반은 아니지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12월8~20일)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30%를 보호하자는 획기적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탄소중립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크게 불리한 형편(육지 17.3%, 바다 2.46%)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냥 놓아두는 것, 지켜보는 것, 믿고 기다리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빈 시간과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마음가짐은 현대성의 가장 큰 폐해이다. 무엇이든 통제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 자신도 계획, 속도, 효율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돌봄과 연대의 요청에 취약하다. 지난해 이맘때를 돌아보니, 때때로 현실을 잊은 채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린아이처럼 명랑하게 살 것을 다짐했다. 올해는 조바심을 버리고 느리게 살기를 생각해본다. 생명을 살리는 깊고 고른 호흡처럼, 천천히 가되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도’를 찾아가는 새해를 맞고 싶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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